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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우리나라 중세 우도론(友道論)에 대한 고찰 Ⅱ -절교론(絶交論)과 우도론(友道論)의 향방(向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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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세 우도론(友道論)에 대한 고찰 Ⅱ -절교론(絶交論)과 우도론(友道論)의 향방(向方)-

A Study on the Theory of Friendship in Medieval Korea Ⅱ -The direction of the Theory of Friendship and Breaking Off Relations-

姜玟求 ( Kang Min-koo )
  • : 동방한문학회
  • : 동방한문학 79권0호
  • : 연속간행물
  • : 2019년 06월
  • : 7-43(37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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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絶交의 대두와 사회적 상황
3. 友道의 이상과 절교론 지지의 논리
4. 絶交論 비판의 논리
5. 절교의 유형과 조건에 대한 논리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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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士人들은 友道의 사회·윤리적 기능과 가치에 대한 견고한 신념이 있었으나 조선 중기부터 격화된 정쟁은 우도의 이상과 절교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였다. 趙憲은 李潑 형제에게 절교의 의사를 밝히는 두 편의 시를 보내 절교를 통보하였지만 시의 문면에서는 절교의 의미를 찾기 힘드니, 당시에 절교론이 대두되었어도 직접적인 절교의 통보를 꺼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윤리적 이상과 관계를 빠른 속도로 파괴하였으며, 그중 交友의 양상은 ‘友道’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통속화 되었다. 李德懋는 친구 사이에 욕을 하고 모욕하는 것을 친밀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교우가 통속화 되었고 친구 사이에 공갈 협박까지 하는 등 교제의 도리가 심각하게 타락하였다고 하였다.
조선 중기의 붕우론에서 윤리성이 강조된 이면에는 정치적 상황과 목적이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기에 점철된 사화는 절교론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된다.
朴淳의 「讀嵇中散絶交論, 有感.」은 시의 형식이기에 논리성이 약하지만 당대의 절교론에 대한 인식의 단초를 보여준다. 吳長의 「續絶交文」은 朱穆이 지은 「절교론」의 부연을 표방한 글로 절교에 대한 본격적 논술인데, 당대의 겉치레에 치중하고 날조하고 공허하며 객기 부리는 교제에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조선의 교우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통속화 되었으나, 절교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절교론」 비판의 논리를 형성케 하였다. 절교에 대하여 신중하게 접근하는 논리는 李瀷의 「反絶交詩」에서 볼 수 있으니, 그는 교우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申最도 「非絶交論」에서 「절교론」을 비판하였는데, 이익의 「반절교시」 보다 논리적일 뿐 아니라,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신최는 유준이 「광절교론」에서 세속적인 교제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비판하였지만, 그것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에 소위 ‘세속적 교우’는 모든 사람의 본능이라고 인정하였다.
절교의 유형과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조선 후기 사인의 절교에 대한 관념을 선명히 보여준 것은 崔漢綺의 「絶交」이다. 최한기는 절교가 다양하다고 전제하면서 유형과 원인, 결과를 대별하였다. 조선의 절교론에서 절교의 결과에 대한 분석은 최한기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Confucian scholars had a firm belief in the social and ethical functions and values of the Friendship, but the political strife which intensified from the middle of Joseon caused controversy about the Friendship’s ideals and the Breaking Off Relations. Although Jo Heon(趙憲) sent two poems to Lee Bal(李潑) brothers expressing his intention for the breaking off relations, it was difficult to find the meaning of the breaking off relations in the letter. So, at that time, even if the theory of Breaking Off Relations was developed, it can be seen that they were reluctant to give direct notice of the breaking off relations.
The political and social confus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destroyed the ethical ideals and relations at a rapid pace. Among them, the aspect of friends was so secularized and popularized that it could not be described as ‘friendship’. Lee Deok-mu(李德懋) said that the friendship became popularized that they thought it was intimate to swear and insult among friends, and the friendship was seriously corrupted by threatening between the friends.
The Theory of Friendship in the mid-Joseon Dynasty, the political situation and purpose were placed on the back of the emphasis on ethics. The massacres of Confucian scholars, which was dotted in the mid-Joseon Dynasty, widespread into a controversy over the theory of Breaking Off Relations.
Park Sun(朴淳)’s 「Reading Hyejungsan’s breaking off relations, having feeling(讀嵇中散絶交論, 有感.)」 is a form of poetry, so its logic is weak, but it shows the beginning of the perception of the theory of Breaking Off Relations. Oh Jang(吳長)’s 「Sokjeolgyomun(續絶交文)」 is a full-scale essay which claimed to stand for amplification of Joo Mok(朱穆)’s 「Jeolgyolon(絶交論)」, that represents his deep concern over the ostentatious, faked, empty and demoralizing relationship of the day.
Although the friendship of Joseon have became secularized and popularized to an irreversible extent, the belief that they should not go so far as to the extreme situation of the breaking off relations formed the logic of criticism of the breaking off relations. The logic of carefully approaching to the breaking off relations could be seen in Lee Ik(李瀷)’s 「Banjeolgyosi(反絶交詩)」, and he maintained an inclusive attitude toward companionship. Shin Choi(申最) criticized 「Jeolgyolon(絶交論)」 in 「Bijeolgyolon(非絶交論)」, not only is it logical but it has a more realistic aspect than Lee Ik(李瀷)’s 「Banjeolgyosi(反絶交詩)」. Although Yoo Joon(劉峻) criticized the secular friendship by dividing it into five ways in 「Gwangjeolgyolon(廣絶交論)」, Shin Choi acknowledged that the so-called “the secular friendship” is everyone’s instinct, because the ways were derived from the desire to pursue their own interests.
It was Choi Han-gi(崔漢綺)’s 「Jeolgyo(絶交)」 that clearly demonstrated the concept about breaking off relations of the Confucia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by presenting the type and condition of breaking off relations. Choi Han-gi presupposed that the breaking off relations were diverse, and he broadly classified types, causes, and results. The the analysis about the result of the breaking off relations in Joseon’s the theory of Breaking Off Relations doctrine is noteworthy in that it can not be found only except Choi H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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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계간
  • : 1226-668x
  • :
  • : 학술지
  • : 연속간행물
  • : 1982-2019
  • : 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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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나라 중세 우도론(友道論)에 대한 고찰 Ⅱ -절교론(絶交論)과 우도론(友道論)의 향방(向方)-

저자 : 姜玟求 ( Kang Min-koo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43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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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士人들은 友道의 사회·윤리적 기능과 가치에 대한 견고한 신념이 있었으나 조선 중기부터 격화된 정쟁은 우도의 이상과 절교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였다. 趙憲은 李潑 형제에게 절교의 의사를 밝히는 두 편의 시를 보내 절교를 통보하였지만 시의 문면에서는 절교의 의미를 찾기 힘드니, 당시에 절교론이 대두되었어도 직접적인 절교의 통보를 꺼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윤리적 이상과 관계를 빠른 속도로 파괴하였으며, 그중 交友의 양상은 '友道'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통속화 되었다. 李德懋는 친구 사이에 욕을 하고 모욕하는 것을 친밀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교우가 통속화 되었고 친구 사이에 공갈 협박까지 하는 등 교제의 도리가 심각하게 타락하였다고 하였다.
조선 중기의 붕우론에서 윤리성이 강조된 이면에는 정치적 상황과 목적이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기에 점철된 사화는 절교론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된다.
朴淳의 「讀嵇中散絶交論, 有感.」은 시의 형식이기에 논리성이 약하지만 당대의 절교론에 대한 인식의 단초를 보여준다. 吳長의 「續絶交文」은 朱穆이 지은 「절교론」의 부연을 표방한 글로 절교에 대한 본격적 논술인데, 당대의 겉치레에 치중하고 날조하고 공허하며 객기 부리는 교제에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조선의 교우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통속화 되었으나, 절교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절교론」 비판의 논리를 형성케 하였다. 절교에 대하여 신중하게 접근하는 논리는 李瀷의 「反絶交詩」에서 볼 수 있으니, 그는 교우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申最도 「非絶交論」에서 「절교론」을 비판하였는데, 이익의 「반절교시」 보다 논리적일 뿐 아니라, 현실적인 측면이 강하다. 신최는 유준이 「광절교론」에서 세속적인 교제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비판하였지만, 그것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기에 소위 '세속적 교우'는 모든 사람의 본능이라고 인정하였다.
절교의 유형과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조선 후기 사인의 절교에 대한 관념을 선명히 보여준 것은 崔漢綺의 「絶交」이다. 최한기는 절교가 다양하다고 전제하면서 유형과 원인, 결과를 대별하였다. 조선의 절교론에서 절교의 결과에 대한 분석은 최한기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2문우회(文友會)의 서강시첩(西江詩帖) 고찰

저자 : 金美善 ( Kim Mi-seo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5-7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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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文友會 西江詩帖의 考察이다. 청주 서강지역 문우회는 淸州의 西面 즉, 江西·江內·江外의 문사들이 溪山의 아름다운 곳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作詩 활동을 한 詩壇이었다. 문우회의 결성 취지는 바로 '以文會友以友輔仁'의 정신으로 지역의 문사들이 情誼를 돈독히하며 지역 산천을 아껴 때마다 모여 정분을 나눈 흔적을 詩會에서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문우회의 시첩 내용을 고찰함에 그 意義를 밝히자면, 지역의 문인들이 모여 '禮'와 '義'를 잘 순행하고 문우간의 수양과 화목을 아주 중요시 하였다는 점과 이를 토대로 內谷 書堂의 지역 후학양성에 적극적 기여를 했다는 것을 고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 또한 그 의의가 있다. 문우회시회에 기록된 시첩의 작품들이 우리 문학사에 거론될 수 있거나 학술적 가치에 무관하다 하더라도 궁벽진 西江에서 선비의 풍격을 흠모하고 다가가려는 노력을 실천한 결과물이 있다는 것은 문학작품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것이라 사료되기에 그 고찰의 意義가 있다 하겠다.
또한 이 문우회의 터전이 되었던 西江지역이 현대의 산업단지조성에 수용되어 상전벽해가 되었으니 420년의 세거지에서 失鄕이 되어 진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기록해 두고 싶은 소중한 자료일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과학문명의 발달은 유추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는데 우리 고전인문학은 화석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현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고전인문학으로 거듭 태어나 책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할 때이다.

3『동경일기(東京日記)』의 필사본 현황 재고

저자 : 朴惠珉 ( Park Hea-mi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3-92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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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동경일기』 필사본을 조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동경일기』의 필사본 현황을 보고하고 그 계열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경일기』필사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가람문고·규장각·고려대학교·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국회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선행연구는 개항기 조선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에 대해 어떠한 관점과 태도를 취하였는지 분석하기 위해 『동경일기』를 언급하고 주로 규장각본을 인용하는 것은 그것이 1975년 처음 영인되고 2000년 허동현의 조사시찰단관계자료집에도 재차 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도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장서각본과 가람문고본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선행연구들이 다수의 필사본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논의의 초점은 『동경일기』의 정고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사 이원회와 그의 수행원이었던 송헌빈은 1881년 일본 방문 이후 출세가도를 걸었다. 그것은 그들이 일본 방문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들이 그들의 관운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동경일기』는 송헌빈이 일본 방문 이후 출세가도를 걷는 계기가 된 경험과 지식들을 기록하고 있다. 송헌빈은 메이지 시기 일본 지식인들에게 화두였던 '화학'에 관심을 갖고 일기에 기록한다. 그것은 그가 이원회의 담당 시찰업무인 육군조련과 관련된 방문 외에 김용원과 함께한 일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곧 송헌빈이 화학이 지닌 시대적 위상을 짐작하였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동경일기』에서 기록하는 근대 문물과 제도를 부분 발췌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일기의 기록 전체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4황여일(黃汝一)의 「주효자전(朱孝子傳)」 일고(一考) -효(孝)의 확장과 충(忠)의 실천-

저자 : 李君善 ( Lee Goon-seon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3-11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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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인간관계 속에 작용하는 윤리이다. 옛날에는 효가 모든 행실의 근본이라고 하여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중시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그러나 효는 인간만이 지닌 윤리로서 아직도 그 의미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황여일이 지은 효자 주경안을 입전한 「주효자전」을 분석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황여일과 주효자의 관계에 대하여 확인하고 주효자의 정려과정을 문헌을 통해 정리한 다음 「주효자전」을 분석하여 향당에서의 효의 실천과 그 효가 국가에 대한 충으로 확장되는데 여기에는 지극한 효는 천지와 귀신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개념이 작용한 것임을 추론할 수 있었다. 이처럼 효의 실천 윤리는 사회적으로 확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잘 실현될 때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없는 시대에서 어른이 어른 역할을 하려면 사회적으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있어야 한다. 이는 갑작스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부터 집안 어른을 공경하는 효에 대한 가르침이 있어야 밖에 나가 이러한 마음이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본고가 효에 대하여 주목한 이유이고 「주효자전」이 지니는 현대적인 의미일 것이다.

5이익(李瀷)의 『백언해(百諺解)』 연구 -새로 발견된 자료를 중심(中心)으로 원형(原形) 복원(復元)을 시도하며-

저자 : 張豪晟 ( Chang Ho-sung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9-164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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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湖 李瀷이 편찬한 漢譯俗談集 『百諺解』는 우리나라의 속담을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星湖全書』에 수록되어 있는 필사본이 유일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성호는 민간에 유행하던 우리 속담을 기록하고 해설을 붙여 『백언해』를 편찬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는데, 『백언해』라는 제목과는 달리 우리나라 속담을 한문으로 옮겨 놓은 것만 있고, 수록된 속담의 수도 389개나 된다. 따라서 지금 전하는 『백언해』에는 원래 존재하던 해설 부분이 누락되어 있고, 속담도 원래의 것보다 다수가 추가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백언해』의 原形을 復元해 보고자 하였다. 자료 조사를 통해 3종의 異本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 3종 가운데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閒中記聞』과 하버드대학교 연경 도서관의 『螢雪記聞』에 실려 있는 『백언해』에는 각각 389, 390개의 속담만 있을 뿐 '해설'부분이 없었다. 반면 성호기념관의 『隨錄』에 실려 있는 『백언해』에는 66개의 속담과 그 '해설' 부분이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것이 『백언해』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善本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전하지 않았던 『백언해』의 '해설' 부분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종의 異本에 실려 있는 속담의 數는 총 391개이다. 그런데 茶山 丁若鏞은 星湖의 『백언해』는 원래 백여 句라 말한 바 있어 상호간에 200여 개나 차이가 난다. 이 391개의 속담을 茶山의 俗談集과 대조 분석해 본 결과, 그중 105개가 『백언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茶山이 『백언해』에 수록된 속담 중 韻을 달 수 있는 것만 취해서 만든 것이므로 『백언해』에 실려 있던 속담의 수는 최소 105개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이 105개 속담 중 35개는 『백언해』의 異本 3종에 모두 실려 있고, 나머지 70개는 해설 부분이 없는 2종의 이본에만 실려 있다. 茶山은 해설 부분이 있는 『백언해』에 수록된 66개 속담 중 35개 속담을 자신의 속담집에 반영하였는데, 나머지 31개의 속담은 韻을 맞추기 여의치 않아 취하지 않았을 뿐 원래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해설 부분이 없는 2종에만 실려 있는 325개 속담 중에서 茶山이 취한 속담은 70개인데, 나머지 255개 속담 중에서 韻을 맞추기 여의치 않아 취하지 않은 속담이 몇 개인지는 현재로서는 추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백언해』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속담의 수는 최소 136개라 할 수 있다. 최대치는 150개 남짓인 것으로 추정되는바 현재 전하는 391개의 속담 중 상당 부분은 星湖가 수집한 것이 아니라 후인들이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본고를 통해 『백언해』에 원래 실려 있던 것이 확실한 136개의 속담 및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해설' 부분 66개를 복원할 수 있었다. 현재 발견된 66개 이외에 적어도 70개의 '해설' 부분이 더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차후 새로운 자료가 계속 발견되어 『백언해』의 原形을 復元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漢譯俗談을 연구하는 데 一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6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 『산사(山史)』의 창작시기·제목·서문 재검토

저자 : 朴熙秀 ( Pak Hui-s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5-19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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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丹陵 李胤永(1714~1759)의 단양 산수유기집 『山史』의 창작시기와 제목·서문 문제를 재검토한 글이다. 본고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행연구에서 『山史』의 창작시기를 추정한 것은 사실관계에 어긋나므로, 그러한 추정에 의거하여 '원전 『山史』'를 상정하는 일 역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山史』는 1751년 한 해 동안에 창작된 글이 실린책이며 『단릉유고』에 실린 작품들 중 일부를 작품과 무관한 것으로 보아 제외시켜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즉 현전 문집에 실린 대로의 『山史』를 완결성 있는 하나의 작품집으로 보았다.
둘째, '山史'라는 제목이 산수유기에 대한 일반명사로도 흔히 쓰이는 말이었음을 밝혔다. 이어서 '五郡山水紀'는 『山史』의 異稱이 될 수 없지만 '丹陵外史'는 『山史』의 異稱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셋째, 『山史』의 서문으로서 참고 되어야 할 글은 「李胤之丹陵外史序」이며 선행연구에서 「五郡山水紀序」를 『山史』의 서문으로 상정하였던 것은 잘못이었음을 밝혔다. 『山史』를 화이론과 관련된 엄숙한 내용을 담은 텍스트로 봐 온 것은 「五郡山水紀序」를 『山史』의 서문으로 간주한 데에서 연유한 바가 크므로, 이를 바로잡는 일은 『山史』의 객관적 실체를 규명하는 데에 중요하게 작용하리라 본다.

7홍대용(洪大容)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저자 : 崔植 ( Choi Sik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9-22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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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최근 홍대용을 둘러싼 몇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첫째, 이덕무의 『선귤당농소』 사건이다. 이덕무는 『회성원집』과 「담원팔영」의 시문 창작에 참여하면서 홍대용과 교유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실제로 「담원팔영」 이후 홍대용이 소장한 육비와 반정균의 서화에 글을 남기고, 또한 홍대용의 「乾坤一草亭題詠」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덕무 연보의 내용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이덕무의 『선귤당농소』 사건은 홍대용 관련 문헌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이덕무에 대한 홍대용의 이중적 태도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둘째, 홍대용의 필담으로 『간정동회우록』·『간정필담』·『간정동필담』이 대상이다. 『간정동회우록』의 일부인 『간정록』 2가 학계에 소개된 이후로도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간정동필담』은 『담헌서』 이전에는 어디에도 그 흔적이 보이지 않고, 18세기 3대 연행록으로 불리는 『연행일기』·『담헌연기』·『열하일기』를 수록하여 널리 유통되고 전승된 『燕彙』에도 수록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유득공의 『중주십일가시선』에는 홍대용이 귀국 후 『간정필담』 2권과 『회우록』 3권을 저술하여 집에 보관하고 있는 상황이 보인다. 이는 1777년 무렵에도 홍대용은 『간정동회우록』 3권을 수정하여 『간정필담』을 완성한 이후로도 『간정동회우록』 3권을 폐기하지 않고 보존한 셈이다. 따라서 홍대용의 필담 연구는 텍스트에 대한 보다 실증적인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홍대용 관련 문헌군이 학계에 알려지면서 새롭게 대두된 사안이다. 유일하게 필사기가 전하는 자료를 소개한 바, 바로 『간정후편』 2의 '戊子三月初三日始書. 乾淨後編.'이다. '戊子'를 언제로 확정하느냐가 상당한 관심사로, 무자년은 1768년이 아닌 60년 후에 해당하는 1828년이 타당할 듯하다. 이는 홍대용 집안에서 『을병연행록』을 필사한 정황과도 관련이 깊다. 홍대용 사후에 중국 문인들이 홍대용의 시문을 정리하여 보내고, 그 후손이 홍대용의 시문을 수집·정리하여 『간정후편』과 『간정부편』을 필사했다고 추측된다.
지금까지 학계는 『담헌서』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연구해 왔으나 『담헌서』는 원문의 오류나 누락된 작품이 적지 않고 체제와 편성이 매우 혼란스럽다. 정인보의 기록에 따르더라도 완벽한 텍스트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하다. 따라서 홍대용 관련 문헌군을 망라한 종합적이고 정밀한 텍스트 연구를 바탕으로 『담헌서』 정본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는 홍대용 연구의 일대전환점이자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8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의 관료적 삶과 한시

저자 : 金美壽 ( Kim Mi-su )

발행기관 : 동방한문학회 간행물 : 동방한문학 79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3-26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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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92년(정조 16)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1871년(고종 8)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19세기를 살다간 19세기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 중 한사람이었던 凝窩 李源祚에 대한 연구가 대단히 소홀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응와는 1809년(순조 9) 18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영남 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경주부윤·공조판서·판의금부사 등 고위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20대 초반부터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60여년을 관직에 종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말 성리학계의 대표적 학자 한주 이진상(1818∼1886)의 숙부로 한주의 학자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원조의 삶과 성취는 물론, 19세기 영남을 대표하는 관료로 주목하면서도 관료로서의 구체적 삶에 대한 연구 역시 아직 소략한 실정이다.
응와가 영남 남인 출신으로 노론집권기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관료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그의 관료적 삶을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순조 대에서 고종 대에 걸쳐 벼슬하며, 만년에는 품계가 종1품에 이르렀지만 관직의 명예만 따랐을 뿐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조정에서 발휘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였다. 다만 다섯 차례에 걸쳐 지방의 수령으로 재직하면서 경륜의 포부를 펼칠 수 있었던 바, 60평생을 조적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위정자의 한사람으로서 민생의 안정에 대한 책임을 자임하였으며, 당시 사회의 병폐를 해부하여 적폐세력의 반성적 성찰을 유도하였던 것을 그의 문학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남다른 재주와 평생에 걸친 노력에도 권력의 중심에서 비껴 있던 그의 출신 성분은 시대적인 한계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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