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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 in Philosopy East-West

  • : 한국동서철학회
  • : 인문과학분야  >  기타(인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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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225-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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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4)~95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517
동서철학연구
95권0호(2020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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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자 직(直) 개념의 자연주의적 함축에 관하여

저자 : 김주용 ( Kim Ju-y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2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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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인문적 전통을 복원하여 바로 세움으로써 혼란한 춘추 시대를 극복하고 질서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반면 공자는 인간의 도의 영역 밖에 있는 자연 만물의 운행을 밝히는 작업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었으며, 이런 측면으로 인해 공자는 대표적인 인문주의적인 사상가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공자 철학 내부에서 드러나는 자연적 성격에 주목하고 이를 조명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이 논문은 공자에서 도덕적 실천이 자연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 논점은 공자 철학의 자연성을 부각하는 한편 인문적 성격을 도외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논증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직(直) 개념이 지니는 양면적 성격에 주목하며, 나아가 직 개념을 매개로 하여 공자를 도덕적 자연주의의 개념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직에 관한 『논어』의 규정들은, 도덕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인간의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직 개념을 둘러싼 공자의 언급들은 우리의 도덕적 믿음과 행위가 이성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세계의 사실들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각시키며, 이 점은 공자의 도덕 철학을 자연주의로서 해석할 근거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 직만으로는 인(仁)하기 어렵다는 공자의 지적은, 규범적 성격을 지니는 도덕적 질서를 인과적 자연법칙으로 환원하는 강한 자연주의와 공자의 입장을 변별하는 지점이 된다. 주어진 소질에 대한 수양과 인격의 도야에 대한 공자의 강조로 미루어 봤을 때, 공자는 인간의 도덕적 규범들을 자연적 사실로 환원하는 데에 결코 찬동하지 않았다. 이처럼 도덕이 자연적으로 강제되는 면모를 지님을 보이면서도 도덕적 질서의 고유성을 부정하지 않는 직의 양면성은 약한 자연주의의 틀 속에서 이해했을 때 적절하게 그리고 정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Confucius aimed to overcome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achieve order by restoring the humanist tradition and putting it right. At the same time, Confucius distanced himself from discovering the order of natural things, which caused him to be regarded as a representative humanist philosopher. This interpretation could be misleading in that it overlooks the natural aspect of Confucian philosophy. To that aspect, this article asserts that a moral practice in Confucianism has a natural character.
The point emphasizing the natural character of Confucian philosophy must be argued in a way in that it does not disregard the humanist character of Confucian thought. This is possible by recognizing the dual aspect of Zhi (直), and I argue further that Confucius can be interpreted through the concept of moral naturalism. Definitions of Zhi in the Analects indicates that morality bases itself on forms of human life developed in a natural way. Confucius's references surrounding Zhi underlie the concept that our moral beliefs and actions are not solely justified by reason alone but in a sense also depend on facts in the natural world, providing grounds to interpret his moral philosophy as a naturalism. On the other hand, that Confucius thinks Zhi alone cannot make one Ren differentiates his position from strong naturalism, which reduces the normative realm of morality to causal laws of nature. From his emphasis on the cultivation of the given dispositions to personality, one can infer that Confucius did not agree with the reduction of moral norms to natural facts. The duality of Zhi showing the aspect of morality being forced by nature while not negating the proper character of morality can be properly and coherently understood from the view of soft natur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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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암사상에 나타난 장자철학적 교우론의 특성

저자 : 이종성 ( Lee Jong-su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7-47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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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암 박지원의 사상에 반영된 장자철학적 교우론의 특성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연암은 시대와 사회적 정황상 유가철학의 토대 위에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법고창신'을 제창하며 전통과 현대를 극복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자 한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는 적서차별을 부정하며, 비록 제한적일망정 평등주의에 입각한 인간관을 제창한 선각자였다. 연암은 다양한 당색을 가진 인물들과 격의 없이 교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차별받고 있던 서얼들과의 친교를 통해 시대와 현실에 맞선 교우관계를 형성한 바 있다. 특히 연암의 교우관계는 조선을 넘어 중국에까지 걸쳐있었는데, 이는 '북벌'에 맞선 '북학'의 이념으로 확장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은 이러한 연암 교우론의 한 가지 특징을 이루는 것이 도가철학 가운데 특히 장자철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 사유내용을 천착한 것이다. 장자는 진정한 교우관계를 일컬어 '막역지교'라고 표현한다. 이 글은 이 점에 주목하고 연암에게서도 만일 '막역지교'가 확인 가능한 것이라면, '막역지교'란 어떠한 교우관계를 가지는 존재들인지, 그리고 그 교우관계의 기준은 무엇인지 등을 장자철학과의 연관 맥락에서 모색해본 것이다. 이러한 검토의 결과 연암의 교우론에서 발견되는 근대지향적 인간관 제창의 의의와 더불어 그 이념의 내용이 자신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일정한 한계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writing's purpose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friendship theory of Chuang-tzu's philosophy reflected in Yeonam's thought. Yeonam had no choice but to understand humans and the world on the basis of the foundation of Confucian philosophy in his time and social circumstances, but he was a englightened man of knowledge who tried to seek a new future, proclaiming the creation of new things from the old and seeing both the traditional and the modern as objects that should be overcome and sublated. In particular, he negated the discrimination between the son of a legal wife and the son of a concubine and, though limited, he was a pioneer who advocated a human view based on egalitarianism. Also, Yeonam exchanged freely with the figures of various party colors, he had formed a friendship against the times and reality through the son of a concubine and the son born of an aristocratic man and a lower-class woman who discriminated regardless of their abilities. In particular, Yeonam's friendship extended as far as China, beyond Joseon, and this served as an opportunity for expansion and development into the idea of 'the Northern Studies' versus 'the Northern Conquest'. This writing takes note of the point which forms a characteristic of Yeonam's friendship theory and has a close relationship particularly with Chuang-tzu's philosophy in Taoist philosophy and studies the contents of his thoughts. Chuang-tzu refers to a true friendship as 'Close Acquaintances'. This writing takes note of this point and seeks to discover what kind of friendship close acquaintances have and what the standard of the friendship is from the context of Chuang-tzu's philosophy; if 'Close Acquaintances' can be confirmed in Yeonam. As a result of this examination, this writing confirms that the significance of proclaiming a modern-oriented human view and the contents of the ideology discovered in Yeonam's friendship theory have a certain limit that could not go as far as leading a new age by overcoming his own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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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광지(李光地) 역학(易學) 비판에 대한 고찰 - 정약용의 비판을 중심으로 -

저자 : 심의용 ( Sim Eui-y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9-71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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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지는 청대 역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약용을 비롯하여 이광지 역학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이다. 주희의 이학(理學)을 왜곡했다는 것과 주희의 괘변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본 논문은 이 두 가지 비판이 가진 배경과 문제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광지 역학을 청대 학술의 배경과 강희제와의 정치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사회 정치적 배경 속에서 두 가지 비판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고 왜 그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주역절중』은 강희제의 정치적 의도와 맥락 속에서 편집되었기 때문에 세밀한 독해가 요구된다. 이광지는 주희가 상(象)과 점(占)으로 구분하여 『주역』이 점서였다고 보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주석의 내용에서 보면 주희와 정이천의 의리(義理)를 모두 따르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다. 또한 괘변설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학을 몰랐다고 평가하기보다는 왜 괘변설을 취하지 않았는가를 묻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이광지는 나름대로의 역학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주역절중』보다는 『주역통론』에 잘 드러내고 있다.


Lee Kwang-ji (李光地) was a representative figure of the Qing Dynasty. There are two criticisms of Lee Kwang-ji's yixue (易學), including Jeong Yak-yong (丁若鏞): the fact that he distorted Zhu-xi (朱熹)'s theory and that he did not accept Zhu-xi's Guabian (卦變) and did not know yixue (易學). This paper attempts to discuss the background and problems of these two criticisms. To this end, I would like to understand yixue (易學) of Lee Gwang-ji through the Qing Dynasty's academic work and the political relationship with Kang Hee-je (康熙帝). In this socio-political context, I would like to reveal what the two criticisms mean. Jooyeokjeoljoong (周易折中) is edited with the political intention and context of Kang Hee-je (康熙帝), so detailed reading is required. Lee Gwang-ji agrees with Zhu-xi's assessment of the main characters by dividing them into 象 and 占. However, in terms of the actual content of the commentary, he does not follow the commentary. This involved some political agendas. Also, rather than simply evaluating that he didn't know yixue (易學) because he did not accept Zhu-xi's Guabian (卦變), I would ask why he did not accept Zhu-xi's Guabian (卦變). In this regard, it can be said that Lee Kwang-ji has his own view of yixue (易學). This is well revealed in the Jooyeoktonglon (周易通論) rather than the Jooyeokjeoljoong (周易折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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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세기 한국 유학자들의 학문방법론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과 일부一夫 김항金恒을 중심으로-

저자 : 이현중 ( Lee Hyun-joong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94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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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세기의 유학자인 한주 이진상과 일부 김항의 학문방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한주가 성리학적 학문체계를 바탕으로 주체성을 강화하려는 것과 달리 일부는 유불도로 구분되기 이전의 도 자체의 관점에서 도역倒逆의 생성을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한주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수간竪看과 도간倒看 그리고 횡간橫看의 삼간의 학문방향과 순추順推와 역추逆推의 학문방법을 통하여 천지인의 근원인 태극, 리와의 합일을 추구한다. 그는 삼간과 양추의 학문방법을 통하여 태극을 중심으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고, 자신의 주장과 다른 사람의 주장, 성리학과 다른 학문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일부는 시간성의 도역생성과 그것을 대상화한 공간의 순역합일을 제시하고, 진손震巽으로 표상되는 인간을 통하여 천지인의 삼재가 성도하여 합덕됨을 밝히고 있다. 그는 후천의 성리가 선천의 억음존양의 심법으로 드러나는 한국사상적 도학을 제시하여 삶의 모든 순간이 반고, 화옹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믿고 맡기는 수도와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생성을 지켜보는 제도가 하나가 된 것이 일상의 삶임을 밝히고 있다.
순과 역을 구분하여 역방향에서 리, 태극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성리학적 학문방향과 방법은 순방향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의 측면을 드러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학과의 합일이 어렵다. 한국 역학적 도학은 도역의 생성을 통하여 유학과 도불道佛, 더 나아가서 서학이 모두 도 자체의 자기 전개임을 나타낸다.


This paper examines the academic methodology of Hanju, Yi Jinsang and Ilbu Kimhang in the nineteenth century. Unlike Hanju, who wished to strengthen independence based on Neo-Confucianist academic systems, Ilbu aimed to renew the world through inverted and reverse generation (Doyeoksaengsung倒逆生成) from the perspective of Tao (道) before it was separated into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Yoobuldo儒佛道).
Hanju pursued unity with Tae Geuk (太極) and RI (理), which are the source of the three functions (Sam-jae 三才) of heaven, Earth, and man (Cheonjiin天地人). He did this through the academic direction of the three viewpoints (Sam-kan三看): the horizontal (Su-kan竪看), the vertical (Do-kan倒看), and the cross viewpoints (Hoeng-kan橫看) based on the worldview of Neo-Confucianism, and the academic methodology of Sun-chu (順推) and Yeok-chu(逆推). He differentiated between the orthodox and heretical, focusing on yin-yang using the academic methodologies of Sam-kan (三看) and the two chus (兩推), and he emphasized this distinction by strictly differentiating between his argument and the arguments of others, and between Neo-Confucianism and other disciplines.
Ilbu (一夫) proposed the Doyeoksaengsung of time and the unity of Sun-yeok in the space that objectifies the Doyeoksangsung, and explains that the Samjae of Cheonjiin is achieved and reached through humans represented as the true descendants. He presented Taohak (道學), where the principles of human nature of the descendants are revealed through the methods of suppressing yin while respecting yang (Eokeumjonyang抑陰尊陽) from the ancestors, and revealed that the everyday life is when Sudo (修道), which believes and places its faith in every moment in life being created through teachers (Bango盤古) and parents (Hwaong化翁), and the system that views creation become one.
Differentiating between sun (順) and yeok (逆), the Neo-Confucianist academic direction and methodology that pursue unity with Tae Geuk(太極) and RI(理), in the reverse direction cannot reveal the aspect of practice which occurs in the forward direction or be integrated with Western academics. Through Doyeoksaeungsung, Taohak shows that Confucianism, Taoism, Buddhism, and even Western learning are all self-unfolding of Tao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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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니시 아마네와 최한기의 '학역(學域)'과 근대학문의 구상

저자 : 김성근 ( Kim Sung-khun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95-11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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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세기 한일 양국의 두 사상가 니시 아마네와 최한기의 '학역' 과 근대학문의 구상을 비교 검토한 것이다. 니시와 최한기는 역사상 학문이 진보해왔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상가는 서양의 자연과학을 자신들의 학문 체계 안에 수용하고, 새로운 근대학문을 구상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니시의 근대학문 구상에 나타난 두 가지 특징은 학문 제영역의 구분과, 학문의 연쇄를 통한 통합학문의 구축이었다. 즉 니시는 학문을 보통학, 심리상학, 물리상학이라는 큰 범주로 구분하고, 그 안에 세부적인 학문들을 배치시켰다. 특히 심리상학과 물리상학은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것으로, 니시는 성리학의 리를 심리와 물리로 구분함으로써 그 같은 학문 영역의 분류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나아가 니시는 일단 그렇게 구분한 학문들을 다시 상호 연쇄시킴으로써 '백교일치의 학'으로서의 철학을 완성하고자 했다. 이 같은 니시의 학문 방법론은 자연과학의 연구를 통해 사회학(인간학)을 밝히려는 콩트 철학의 영향이 잘 드러난 것이다.
최한기도 학문 영역의 구분과 학문의 상호 연쇄를 통한 통합학문의 구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한기는 학문 영역의 구분에 있어서 니시보다는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학문을 이른바 '기학'으로 총칭하고, 그 아래에 오늘날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학문들을 배치시켰다. 그런데 니시가 성리학적 리의 구분을 통해 학문을 물리상학과 심리상학이라는 큰 범주로 나누었다면, 최한기는 기학의 모든 학문들이 이른바 운화기의 보편적 법칙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시는 학역을 통해 분류한 근대학문의 제 영역을 다시 하나로 통합시킴으로써 백학의 통일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니시에 따르면, 그것은 결국 물리와 심리를 재차 연결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 같은 학문 방법론은 그가 리의 연결에 좌절하면서 사실상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니시 이후, 일본에는 물리와 심리,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이라는 이항대립적 사유구조가 정착했으며, 그것은 곧 니시를 통해 근대 서양학문의 인식적 난제들이 일본에 이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들을 운화기라는 보편적 법칙과 관련짓는 최한기의 학문관은 니시보다 비약적이고 모호했다. 그 같은 경향은 기학의 보편성을 다소 직관적으로 주장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은 비록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었지만, 학문의 근저에 기라는 통일적 관점을 유지시킴으로써, 이원적 인식의 난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아울러 학문의 연쇄와 통합의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compares Nishi Amane and Choi Han-gi's designs of modern learning in 19th century. Nishi and Choi had a strong belief that human learning had advanced in history. Nishi had gained such an idea of academic progress through Comte's empirical philosophy and Western natural science, on the other hand Choi Han-gi came to the idea of such academic progress through studying Western natural science which was translated to Chinese. However, Nishi and Choi were very different in their acceptance of Western natural science into their academic systems and in designing new modern learning.
Two goals of Nishi's modern learning were the division of academic disciplines, and the design of integrated academics by an interconnection of academic disciplines. Nishi divided all disciplines into three larger frameworks of Intellectual Science, Physical Science, and Common Science, and placed detailed subjects within them. In particular, Intellectual Science and Physical Science correspond to today's Humanities and Natural Science. Nishi could effectively achieve the classification of such learning by dividing the Ri (principle) of Confucianism to the laws of the human world and the laws of the physical world. Nishi tried to pursue Philosophy by again linking these divided disciplines together. In Nishi's academic methodology, the influence of Comte's philosophy of revealing sociology through the study of the natural sciences was well represented.
Choi Han-gi also paid attention to the establishment of integrated learning through the distinction of academic studies and reunion of such disciplines. Choi was not as elaborate as Nishi in terms of division of studies. Whereas Nishi divided the learning into Intellectual Science and Physical Science by the distinction of the law of the physical world and the law of human world, Choi Han-Gi thought that all subjects shared the so-called law of Ki (vital force).
Nishi thought that the reunification of all learning could be achieved by reconnecting the law of the physical world and the law of the human world. As a result, however, Nishi's academic chain, and his philosophy were not successful. After Nishi's thinking, Japanese academic society was dominated by Dualistic concepts such as natural sciences and humanities, subjectivity and objectivity, and Nature and humans.
Choi's view of dividing all disciplines with the universal law of Ki was vaguer than Nishi's. However, Choi's Ki-science, although lacking concreteness, was able to escape the dual cognitive structure that East Asians had maintained since Nishi. It is worth noting that Choe's philosophy leaves possibilities for new modern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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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논쟁의 정치적 성격은 병자호란을 거치며 강하게 제기되었던 화이론(華夷論)과 연관이 깊었다. 남당(南唐) 한원진(韓元震)과 호론(湖論)의 선비들은 인성(人性)을 '중화(中華)'로 물성(物性)을 '오랑캐(夷)'로 나누어 결코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항로를 중심으로 하는 화서학파의 심주리론(心主理論)은 정치사상적 관점에서 송시열의 화이론에 중심이 되는 대의론(大義論)과 명분론(名分論)을 리(理)로 표상하고 이 대의명분을 구분점으로 인간과 금수, 중화와 오랑캐, 인성과 물성을 나누어 규정하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것은 호론계의 입장에 상당 동의하는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화서학파는 호론계의 학통의식을 부정하고 율곡의 심성론에 비판적이었다.
최익현 등은 율곡의 심즉기론(心卽氣論)을 계승한 우암의 이론까지도 의심과 부정의 입장을 표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화서학파의 학문적 입장에 비해, 남당의 인물성 이론(異論)은 철저하게 율곡의 심즉기(心卽氣)의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비록 당시 동일한 시대의식에 의한 위정척사의 의거(義擧)라 할지라도 함께 항일 의병운동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은 매우 열악하였던 것이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19세기 조선유학의 노론계 위정척사운동의 갈등이 사상적 대립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분석하고, 홍주의병의 의병장이던 민종식이 당시 기호지역 노론의 학문적 갈등을 수습하고 화이론에 근거한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의병(義兵) 창의(倡義)에 기여한 사실을 고찰하였다.


The political character of the Horak argument was deeply related to Hui (華夷) theory, which had been strongly raised through the Byeongjahoran. The Namdang Han Wonjin and Seonbis of Horon schools separated the nature of humans into Junghwa (中華) and the nature of things into I (夷). They argued that they could never be the same.
Hwaseo School's simjuri (心主理) theory, centered on Li Hanglo (李恒老), presented the theory of great cause and the theory of right name, which are central to Song Siyoel's (宋時烈) Hui theory in terms of political thought, as Li(理), and developed a theory to define in this good cause by dividing man and beast, Junghwa(中華) and I(夷), the nature of human and things by distinguishing certain points. This has a characteristic of considerable agreement with the position of the Horon system.
However, the Hwaseo School denied the consciousness of the Horon line's scholastic lineage and was critical of Yulgok(栗谷)'s shimseongron(心性論). Choi Ikhyun and others expressed doubts and negations about even the theory of Uam, which succeeded the Yulgok's theory of mind and vigor(心卽氣). Compared to the academic position of Hwaseo School, Namdang's nature of human and things theory is thoroughly based on the Yulgok's theory of mind and vigor. Thus, even though it was a patriotic deed of Wijeongchucksa based on the same awareness at the time, the practical conditions for promoting the anti-Japanese military movement together were very poor.
This paper analyzed that the conflicts on the Noron-lined Wijeongchucksa Movement of Joseon Confucian in the 19th century originating from ideological confrontation. Also, Min Jongsik who was a leader of the righteous army in Hongju, reviewed the fact that he helped solve the academic conflicts of Noron in Giho area and contributed to the movement of raise an army based on Hui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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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화기 지식인의 주체와 타자 인식-최익현과 유길준을 중심으로

저자 : 박태옥 ( Park Tae-ok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3-166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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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개화기는 주체와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국면을 맞은 시기였다. 이에 위정척사파의 최익현과 개화파의 유길준의 사상을 중심으로 주체와 타자에 대한 인식 양상을 고찰하였다.
최익현 철학에서 주체와 타자 문제를 '벽이단(闢異端)'과 '존화양이(尊華攘夷)'의 두 측면을 통해 살펴보았는데, 먼저 그에게 있어 중국은 타자가 아니라 소중화 의식으로 내면화된 타자, 다시 말해 주체 조선과 동일한 주체가 된다. 이와 달리 서구 열강과 일본이라는 타자는 내면화할 수 없는 적대적 타자이자 주체를 타자화하며 소외시키는 대상이다. 결국 소중화로서의 조선이 정고한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근거를 성리학적 세계관과 신념에서 찾았으며, 그것은 도덕적 주체의 주체성을 극대화하고 문명의 담지자로서 정도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를 실제 현실에 발현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면서도 만국공법과 동양평화론에서는 타자의 타자성에 대한 이해와 교섭 측면에서 다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편 유길준이 지향한 개화 세상은 단순히 무비판적으로 서구문물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개화는 주체적 각성과 자기 책임으로 타자를 수용할 줄 알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자를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주체가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성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길준은 서구사회의 법과 규칙이 가지는 문명화의 기능은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는 조건이라고 보았다. 유길준에게 보편과 문명이라는 시대과제는 단순히 주체의 열등성과 우월한 타자에의 전향성을 가지고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주체와 타자가 서로 우월한 힘이나 자본으로 억압하고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를 맺을 때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early 20th century, the enlightenment period was a time of new perceptions about the Subject and the Others. In response, recognition patterns of the Subject and the Others were studied with the ideas of Choi Ik-Hyun and Yu Gil-Jun.
In Choi Ik-Hyun's philosophy, we look at the Subject and the Others problem through two aspects: 'Excluding Heterodoxy[闢異端] and Respect for China and Driving out the Barbarians [尊華攘夷]'. For him, first of all, China becomes the same person as Joseon, which is internalized not as Other but as a sense of 'Minor Sinocentrism [小中華]'. On the other hand, the Western powers and the Japanese Others are the ones that can't be internalized and the ones that can be typed out. In the end, Joseon as a 'Minor Sinocentrism' found the basis for restoring its hard subjectivity from its Neo-Confucian world view and beliefs. It has evolved to manifest the will to maximize the subjectivity of the moral Subject, and to keep the degree as a defender of civilization to the actual reality. At the same time, he showed multiple attitudes in terms of understanding and negotiating the essence of the Others in the universal law and theory of peace in the Orient.
Meanwhile, Yu Gil-Jun's 'enlightenment' world is not just about accepting Western culture uncritically. The real enlightenment is when one knows how to accommodate the Others with self-awareness and self-responsibility. While accepting the Others, they can use them as a way to make their identity own more complete, not while the Subject is ruined. Yu Gil-Jun saw that the function of civilized society's laws and rules is a condition for practicing human morals. For Yu Gil-Jun, the task of the era of universal and civilized development was not simply developed with the inferiority of the Subject and the forwardness of the superior batter. The Subject and the Others were aware that communication was possible when they had an equal relationship, rather than oppressing and disciplining each other with superior power or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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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플라톤의 완벽한 소피스트: 규정의 추론 가능성

저자 : 이윤철 ( Lee Yoon-cheol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7-200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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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소피스트를 규정하려는 플라톤의 분할 방법을 검토하여 (전통적으로 이해되어온 바와 같은 부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철학의 실천에서 긍정적 역할을 책임지는 완벽한 소피스트가 추론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소피스트에 대한 플라톤의 적대적 표현들은 다양한 대화편에서, 특히 초기와 중기의 대화편들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소피스트』편에서 분할 방법을 통하여 소피스트를 보다 체계적으로 규정하고자 재차 시도한다. 소피스트를 규정하면서 플라톤은 다양한 소피스트의 모습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최종 규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분할을 진행한다. 우선 모상(eidōlon)을 제작하는 모상제작술(eidōlopoiikē)을 각각 닮은꼴(영상: eikon)을 제작하는 닮은꼴(영상)제작술(eikastikē)과 환영(환상: phantasma)을 제작하는 환영(환상)제작술(phantastikē)로 나눈 후(235b-236c), 환영(환상)제작술을 앎과 함께한 경우와 앎 없이 믿음과 함께 한 경우로 다시 나누고(267a-e), 이어서 앎 없이 믿음과 함께 하는 환영(환상)제작술을 앎이 없음에도 안다고 믿으며 환영(환상)을 제작하는 순진한 경우와 앎이 없음을 알아차리되 아는 양 행세하며 환영(환상)을 제작하는 시치미 떼는 경우로 나눈다(266e-268a). 마지막으로 플라톤은 후자의 경우를 공공의 장소에서 긴 연설로 이루는 경우와 사적 장소에서 짧은 말로 이루는 경우로 나눈 후, 마지막의 것이 다름 아닌 소피스트라고 규정한다(268a-c). 이상 분할 방법의 내용을 종합하여 플라톤은 소피스트란 모방하는 자이니, '믿음에 기반하여 시치미를 떼며 반대되는 것들을 만드는 것 가운데, 신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과 관련해 말 안에다 경탄할 만한 부분을 만드는 모상제작술 중 환영(환상)제작술의 종류에 속하는 것을 하는 자가 진짜 소피스트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참되게 말하는 것 같다'고 하며(268c-d), 소피스트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마친다. 플라톤의 분할 방법은 비-배타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소피스트가 앎을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적으로 배제되고 있지는 않다. 더군다나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모방하는 자로 밝히고 있으니, 앎을 지닌 채로 사적 장소에서 짧은 말을 제공하고자 닮은꼴(영상)을 제작하는 기술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 아는 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닮은꼴(영상)로 만들어 내는 경우, 이러한 자는, 앞서 분할 방법들을 통해 제공된 소피스트에 대한 규정들을 위반하지 않는 채, 혼 안에 옳은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의 거짓을 제공하는 완벽한 소피스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소피스트는, 앎을 지니는 것이 최상이겠으나 혼의 본성에 따라 그럴 수 없는 경우에서도 가능한 한 앎에 가까운 혹은 앎과 같은 비율을 지닌 믿음을 사람들이 갖추도록 도움을 주어, 공동체의 공공선을 도모하는 철학의 실천에서 긍정적으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examining the languages and the methods of division to clarify a sophist by Plato, suggests that a possible clarification of the perfect sophist in a positive sense can be inferred from the divisions, and that such a sophist would be necessary for Plato's project of practicality of philosophy. In clarifying a sophist Plato presents various forms of the sophist in the Sophist. In the final division of the sophist, Plato divides apparition-making and likeness-making in image-making (Soph. 235b-236c); apparition-making with knowledge and that with a belief (but without knowledge) in imitating (267a-e); again, believing to know (sincere) and pretending to know while believing not to know (insincere) in imitating with a belief (266e-268a); finally, words-giving publicly and words-giving privately in pretending to know while imitating with a belief (268a-c). When one who, as an imitator, practices 'words-giving privately' is suggested as the sophist, Plato concludes that 'it seems likely to be true if the real sophist is said to be one who, being insincere, performs the imitative kind of the contrary-word-making on the basis of a belief, of the apparition-making in image-making to produce a marvelous part in words concerning human matters' (268c-d). Since the methods of division to clarify the sophist run in a non-exclusive way, however, it does not seem impossible for the sophist to be one with knowledge. Imitating by words-giving privately with knowledge thus can be inferred to lie under likeness-making. Here, one who knows, if making likeness in words from imitating what one knows, is considered the perfect sophist who produces images to form a correct belief in the soul, without violating the clarifications of the sophist. Such a perfect sophist is not only working positively but also necessary in the practicality of philosophy to establish the common good in a community, as the sophist surely aids people to equip their souls with the knowledge-like beliefs or the beliefs that bear the correct proportions same as knowledge, when they are by the nature of soul incapable of reaching and acquiring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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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자기의식 문제와 지성적 직관 - 피히테의 『지식론의 새로운 서술 시도』(1997) 연구

저자 : 안윤기 ( An Yoon-ki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01-22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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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간의 자기의식'을 다루되, 그것의 주요 특징을 피히테의 초기 저작인 『지식론의 새로운 서술 시도』(1797)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자기의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가치와 중요성이 널리 인정되었고, 특히 근대에 와서는 우리가 가진 일체 지식을 설명할 철학의 원리로 손꼽혀서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칸트 등에 의해 중용되었지만, 정작 그것의 가능 조건을 논의해 보면 매우 심각한 내적 문제를 가진 주제였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 해결책을 제시한 최초의 철학자는 피히테였다. 피히테는 만일 우리가 자기의식을 일종의 반성이라고 보고, 내가 나 자신과 주체와 객체 관계를 맺어 그 결과로 나 자신을 통찰하려 한다면, 우리는 '무한소급' 같은 심각한 오류에 빠지고, 결국 자기의식을 설명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피히테가 보기에 자기의식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할 한 가지 조건은 '의식하는 자아와 의식되는 자아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아가 의식의 주체와 객체의 두 항으로 분리되면, 의식 주체에 대한 확인을 위해 제2의 의식, 제3의 의식 등으로 무한소급해야 하며, 의식 주체와 객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도 없이 그저 둘의 동일성을 주장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피히테는 자기의식에서 자아의 비분리와 직접적 내적 관계가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자아는 자기 정립이지만(존재), 그때 정립되는 나는 내가 정립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인식). 그리고 이런 비대상적이고 선반 성적인 직접적 자기인식 관계를 표현할 적절한 용어로 피히테는 '지성적 직관'을 제안 하였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의식이 전제해야 하는 자기의식은 지성적 자기직관으로서, 사유 주체의 직접적 자기 친숙성, 곧 명증성을 의미했다.


This paper deals with human self-consciousness, the main characteristics of which will be examined through Fichte's early work: Versuch einer neuen Darstellung der Wissenschaftslehre (1797). Self-consciousness has long been widely recognized for its value and importance, especially in modern times, when it was used by Descartes, Leibniz and Kant as the principle of philosophy to explain all our knowledge. But when we discuss the possible conditions of it, it is revealed as a subject with serious internal problems.
It was Fichte who first recognized the seriousness of its problems and tried to find a solution. He believes that if we take self-consciousness for a kind of reflection, and if we try to make a subject-object relationship with ourselves, we will fall into serious error.
In Fichte's view, one of the conditions that must be met in order to properly describe self-consciousness is that the thinking-self and the thought-self must not be separated. If the self were divided into two terms, the subject of consciousness and the object, we would have to regress to the second consciousness in order to identify the subject of the first, and then to the third consciousness in order to identify the subject of the second, etc. (infinite regression) and we would merely claim the identity of the thinking and the thought self, without proving that they are really the same.
To avoid these problems, Fichte emphasizes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I put myself, and I am simultaneously conscious of myself as such. Fichte proposes 'intellectual intuition' as an appropriate term to express this sort of direct self-awareness. Self-consciousness presupposed by all our consciousness is an intellectual self-intuition, meaning the self-familiarity or evidence of the th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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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동·서양의 근원존재 : 메를로-퐁티의 '살(chair)'개념과 동양의 '기(氣)'론

저자 : 한우섭 ( Han Woo-sub )

발행기관 : 한국동서철학회 간행물 : 동서철학연구 9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5-25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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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은 각각의 문화적 특이성을 간직한 채 고유한 영역으로부터 발전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인간, 정신, 세계를 구성하는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요소란 근본부터 다른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세계란 근원적으로 동서양의 간극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동서양의 차이란 동서양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영원히 통합 불가능한 세계로서 유지시킬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러한가?
본 논문은 동서양 철학의 상이한 발전 양상에도 불구하고 그 양자의 근저에는 유사한 형이상학적 사유의 맥, 특히 세계의 존재론적 요소에 대한 유사한 사유의 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시작된다. 이러한 전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나름의 정당성을 갖게 된다. 첫째, 인간은 자연과 상호소통하는 존재이며, 거시적인 의미에서의 동일한 자연에 거주하는 인간, 즉 인종·문화를 아우르는 인간의 유기체적 유사성은 '세계-에로의-존재(être-au-monde)'인 인간존재의 특성에 따라 자연에 대한 유사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둘째, 제일철학으로서의 존재론은 세계의 존재론적 구성요소에 대한 관심으로 탄생하였고, 인간의 유기체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기능하는 세계에 대한 감각의 유사성은 따라서 대(對)자연적 관점에서 세계의 존재론적 요소를 질료적인 관점에서 유사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동, 서양의 존재론적 관점을 온전히 동일하게 볼 수도 없는데, 이는 양자의 존재론적 발전 과정의 차이가 또한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논고에서의 현상학적 '살'이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전제를 만족시키는 존재론적 요소로 파악되며, 이는 서양 고대철학에서의 '원소(élément)', 동양 고대철학에서의 '기(氣)'의 질료현상학적 변형으로 파악된다.
본 논문의 목적은 왜 살을 기의 '변형', 혹은 그 역으로 볼 수밖에 없는지, 다시 말해 '살'을 '기'로서 해석할 수 있는 동기는 무엇이고, 동시에 '살'이 온전히 '기'로서 해석될 수 없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있다.


Have the ontology or metaphysics of the East and the West developed from their own field, retaining their cultural specificity? If so, is the metaphysical and ontological element of the human being, of spirits and of the world, fundamentally different? If the answer is yes, the world would be fundamentally in the distance between West and East, so the difference between the two will maintain its metaphysics forever intact. But is that really the current situation?
This article starts from the presupposition that, despite the different developments of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y, there is a similar root of metaphysical thought in the background of the two worlds, ontological similarities called 'Qi' and 'flesh'. Our presupposition takes its own justification for two reasons: on the one hand, man is a being who communicates with nature. The organic similarity of human beings, who live in the same nature in the macrocosmic sense, going beyond racial and cultural differences will allow similar metaphysical reflections on nature, through the originality of the man who is 'être-au-monde'. On the other hand, as the ontology was born from the interest for the fundamental components of the world, the similarities of the feelings towards the world, functioning on the basis of human organic similarity would therefore have no other choice than to grasp the ontological elements of the world from a material point of view. At the same time, however, we cannot completely see the same vision of Eastern and Western ontology, because there is also a clear difference in the process of ontological development between the two.
In this article phenomenological 'flesh' is considered an ontology element, which satisfies our presupposition, and it is a phenomenological variation of 'element' in ancient Western philosophy and 'Qi' in ancient Eastern philosoph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plain why we must consider the flesh as a transformation of Qi, that is to say, to verify in detail which motivates the interpretation of flesh as Qi, and at the same time why flesh cannot be interpreted as Qi i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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