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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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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3)~55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630
한문학논집
55권0호(2020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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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송호(松湖) 백진남(白振南)의 시세계(詩世界) 연구(硏究)

저자 : 권혁명 ( Kwon Hyok Myo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33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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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송호 백진남의 생애와 시세계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먼저 2장에서 백진남의 생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백진남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백진남이 부친 백광훈의 영향으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즉, 글씨는 王羲之와 鍾繇의 바로 뒤에 위치할 만하고 시는 당풍을 띤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진남은 이러한 筆法과 文才를 바탕으로 이순신의 막하에서 명나라 장수 季金, 皮承德에게 글씨와 문장으로 인정 받았으며, 1606년 황태손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사신으로 온 正使 朱之蕃의 찬사를 받았다. 3장에서는 백진남의 시세계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제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강호에서의 평온한 삶을 읊은 것이다. 이 시들은 백진남이 젊은 시절과 만년에 서울과 영암에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唐詩的 경향을 보여준다. 둘째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드러내는 주제들이다. 백진남은 임진왜란을 직접 겪었고 成天祗, 李舜臣의 막하에서 종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전란으로 인한 괴로움, 중국 장수에 대한 칭송, 문재의 자부 등 다양한 의식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셋째, 사행길의 어려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화한 것이다. 백진남은 관직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柳根의 추천으로 원접사 일행으로 참여하게 되는데, 이 때 사행길의 어려움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This paper was aimed at taking a brief look at the life and poem of Song Ho Baek jinnam. In summary, this is as follows: One of the most prominent things in Baek Jin-nam's life is that he has gained fame for calligraphy and poem since childhood under the influence of his father, Baek Kwanghoon. Baek Jinnam's writing was right behind Wang Huiji and Jongyo, and the poem was praised for its strong tendency to Tang Dynasty poetry.
Chapter 3 gives an overview of Baek jinnam's poems. Theme of the poem by Baek Jin-nam suggests that it is a common theme in the poems of literati during the Joseon Dynasty. However, in Baek Jin-nam's poem, there are three main topics that should be noted: First, it looks like living a peaceful life in Gangho. The poem is shown in Seoul and Yeongam when Baek Jin-nam was young and old. Second, they are poems that reveal consciousness in relation to the Imjin War. Baek Jinnam went through the Imjin War in person and worked in Sung cheonji and Yi Sunshin's military. Therefore, it reveals various rituals related to the Imjin War, such as the suffering caused by the war, praise for the longevity of China, and pride of literature. Third, these poems reveal the difficulties of the road to the envoy and the longing for his hometown. Although Baek Jinnam did not serve as a government official, he was encouraged by Yoo Geun to join the envoy's group. At this time, he describes difficulties on his way to an envoy his longing for his hometown in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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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리(東里) 이은상(李殷相) 한시(漢詩) 연구(硏究) -이정귀 가계문학의 특성과 차이를 중심으로-

저자 : 이명희 ( Lee Myoung-hee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35-6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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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당대 문단의 중심에 있었던 月沙 李廷龜(1564~1635) 가계의 일원인 東里 李殷相(1617~1678)의 詩文學을 고구하였다. 그의 시에 드러나는 중요한 특성들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이정귀 가계의 문학이 공유하는 것들이다. 본고는 이 점에 유의하면서 가계문학의 특성과 그만이 지녔던 차별성을 살펴보았다.
이정귀 가계는 산수 자연에 대한 갈망과 탐닉이 남달랐다. 이은상은 선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금강산 유람을 시도하였으며, 이정귀가 그랬던 것처럼 악공을 대동하여 산에 올랐다. 장문의 시 제목을 통하여 운문과 산문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가계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또한, 윗세대와 달리 다양한 詞牌를 활용하는 詞를 창작해 문학적 역량을 과시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그만의 특성이 아니라 가계문학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이정귀 가계문학은 '學唐'의 범주 안에 있었으며, 구성원의 시풍도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평어에 개별적 차이가 있지만, 이정귀의 '豪放' '飄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은상의 경우 '豪健'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이정귀의 '豪放'보다 좀 더 정제된 면모에서 나온 평가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시단은 '學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시적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은상의 시문학에서 '漢魏盛唐'을 주창한 鄭斗卿이나 金得臣처럼 적극적인 변화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계문학의 전승속에서 이은상이 詞를 창작하고 시 구성의 치밀성 등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려는 모습은 발견되었다.
김창협은 이은상의 시문학에 대하여 “율시에 뛰어나서 입을 열면 문장이 되었다”며 천부적인 재능에서 나온 口占과 口號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것은 즉흥적 감성을 담보로 한 문학의 진정성이 기반이 된 것으로 즉 백악시단의 '眞詩 追求'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가계문학이라는 범주의 부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詩語를 통하여 자카드 분석을 시도한 결과, 그 유사성을 확인하였다. 이는 이정귀에서 이은상이 활동하던 시기까지 이정귀의 가계문학에 큰 변화가 일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題材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이은상의 시문학은 당대의 시인들과 다른 어떤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대 문단의 중심인물로 활약한 이정귀 가계문학의 성향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가 물색의 탐닉에 몰두하여 '物色分留'라는 시어를 애호한 점은 현장체험을 중시하였던 가계의 전통을 계승하고 윗세대에서 표현하지 못한 새로운 시의 창작을 추구하였다는 실례이다. 처참했던 壬丙兩亂의 고통 속에서 헤어지는 한을 시에 담았던 윗세대와 달리 이별의 순간을 '浮生聚散'의 관점으로 詩想을 써내려간 이은상에게서 세상을 대하는 세대 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내재된 감성의 표현으로 達觀의 境地를 보여주는 시가 많은 것도 그의 차별적인 지점이다.
아울러 이은상의 시문학은 김상헌 가계와의 문학적 교류와 상호 영향을 고려해 볼 때, 18세기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고자 활약한 백악시단의 탄생에 일조했으리라 가늠할 수 있다.


This paper studied the poetic literature of Dong-ri(東里) Lee Eun-sang(李殷相). He is a member of the Li Jung-gul family. The Li Jung-gu family shares literary characteristics. their literature transmits literary tradition faithfully and it should be focused that they have similar tendency.
Lee Jung-gui's family had a longing and indulgence for arithmetic. Lee attempted to tour Mt. Kumgangsan to share the experiences of his ancestors. The family tradition was inherited through the title of the long sentence, which is a combination of verse and prose. Unlike the older generation, he also created Sa(詞) that utilize various Sa(詞) to show off their literary capabilities. His behavior is fully understood in terms of inheritance of family literature.
Lee Jung-Gui's family literature has a similar style. Although there are individual differences in flatfish, they do not deviate significantly from Lee Jung-Gui's 'Ho bang(豪放)' and '飄逸(Pyoil)'. Lee Eun Sang received the reputation of '豪健(Ho geon)', which comes from a more refined aspect than Lee's free style. In the transition from the 16th to the 17th centuries, poetical circles endeavored to raise the poetic level without leaving the borders of 'Hakdang(學唐)'. In the poetry of Lee Eun-sang, it is difficult to find positive changes such as Jeong, Du-gyeong(鄭斗卿) and Kim, Deuk-sin(金得臣) which advocated 'Han-Wi-Seongdang(漢魏盛唐)'. However, even in the tradition of family literature, the movement of change to raise the level through the creation of a book and pursuing the preciseness of the composition of poetry is sensed.
Kim Chang-hyup said that Lee Sang-sang's poetry is “excellent and bizarre unless he intentions.” The authenticity of improvised sentiment was highly valued because it touched spirit of the Baekaksidan(白岳詩壇).
Compared with other members of Lee Jung-gui's family through the poetic diction, it is clear that they are in an influence relationship, but his distinctiveness can be seen in the words of his own particular favorite, 'scenery(物色)' and 'transient life(浮生)'. According to the jacquard analysis, Lee Eun-sang and Lee Myung-han are the most similar. However, there is little variation except Lee Seok-hyung, which has a big difference in time. It is clear that there is a similarity in the use of Shea. This proves that the changes in Family literature were not significant until at least Lee's time.
Lee's poetry is hardly considered to have any specificity different from the poets of his time. However, there is a clear significance in that it shows the propensity of the Lee Jung-gui family that was at the center of the passage. And his devotion to the indulgence of nature and his love of the 'mulsaegbunlyu(物色分留)' is an example of his pursuit of a new poetic attempt that the older generation did not express. Unlike the poems of the older generations, who suffered through the experience of Im Byung-ran, being optimistic even in the moment of parting from the perspective of 'busaengchwisan(浮生聚散)' reveals a difference in the gaze for the world. Many poems that show the stage of 'dalgwan(達觀)' are also different points from those of family literature.
Lee's poetry is intact in the category of Lee Jung-gui's family literature. His traits are mostly influenced by family literature. However, it also reveals the attempts of differentiation, such as the creation of her own poem and poem. Lee Jung-gui's family literature favored improvisation and sincerity rather than hanging on the table. I valued the inspiration that comes directly from the landscape. This is in line with the spirit of 'jinsichugu(眞詩追求)' as mentioned earlier. The Lee Jung-Gwi family grew their literary capacity through continuous exchanges with the Kim Sang-Hun family. Lee Eun-sang's position in the two-family exchange suggests that it played a role as a medium for the birth of the Baekaksidan, which contributed to creating a new face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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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담녕(澹寧) 홍의호(洪義浩)의 연행(燕行)에 관한 연구

저자 : 김영진 ( Kim Young-j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69-99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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澹寧 洪義浩(1758~1826)는 조선후기 근기 남인 명문가 출신으로 정치, 문학(소설 포함), 문화 지리, 조청 교류 방면 등에 주목을 요하는 인물임에도 기대만큼의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여러 곳에 散在한 홍의호의 저술을 종합 정리하고, 그 선후 관계와 성격을 명료히 하였다. 아울러 그의 연행과 관련하여 의미가 큰 두 종의 새 자료인 『燕記』(1803년)와 『衍山海經』 (1820년)을 발굴 소개하였다. 전자는 그의 1차 연행시집의 選本이고, 후자는 금강산 기행시집인데 庶子 洪羲福이 여기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衍山海經證註』를 만들어 청 문단에 전파하기도 하였다. 홍의호의 풍산홍씨가는 유달리 많은 연행 기회를 통해 청 문인들과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교유를 한 사실이 기존에 알려져 있으나, 본고를 통해 홍의호가 직계 선조인 조부 洪重孝의 『燕京錄』 (1763년), 부친 洪秀輔의 『出塞錄』 (1781년)의 전통을 계승하여, 제1차 연행 때 『續出塞聲』 (약칭 『前出塞』) 1,000여 수를, 제2차 연행 때 『後出塞』 400여 수를, 제3차 연행 때는 시 230여 수가 포함된 『三入燕薊錄』을 남겼음을 밝히게 되었다(현존 연행시의 총합은 700여 수이다). 또한 세 차례 연행에서 홍의호와 費蘭墀 등 청 문인 간의 교유는 이 시기 조청 문학 교류사에 의미 있는 演變을 확인케 해주고 있다. 더욱이 홍의호가 폭넓은 교유망을 이용하여 조선의 여러 知人들의 연행 시문을 열람하고 있는 점도 연행 자료의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홍의호는 스스로 '詩癖'이라 고백할 만큼 多作을 남겼다. 對淸 인식의 深度와 變化를 포함한 그의 여러 의식들을 작품 내에서 추출하는 것은 향후 과제로 남긴다.


Tamnyŏng (澹寧) Hong Ŭi-ho (洪義浩, 1758~1826), born the exalted lineages of Namin (南人) of capital district in the late Chosŏn period, is a very importand figure, needed to be studied in politics, literature (including novels), cultural geography, international exchange between Chosŏn and Ching etc. This paper aims, first of all, to compile his literary works lie scattered and to make clear the chronicle of his works. It also introduces new materials related to his envoy to Ching, namely, Yŏngi (燕記, 1803) and Yŏnsanhaigyŏng (衍山海經, 1820). The former is an anthology of his collection of poems written during his first visit to Peking, and the latter is a collection of his poems that he wrote while he traveled Kŭmgangsan. Yŏnsanhaigyŏng chŭngju (衍山海經證註) compiled by his concubine's son Hong Hŭibok (洪羲福) with his glosses added, was introduced to the literary world of Ching.
This paper also clarifies that Hong Ŭi-ho wrote Sokch'ulsaisŏng (續出塞聲, abbr., 前出塞) during his first visit to Ching, Huch'ulsai (後出塞) during his second visit and Samipyŏngyelok (三入燕薊錄) during his third visit, inheriting the works of his grandfather and his father, namely Yŏngŏngnok (燕京錄, 1763) written by Hong Chung-hyo (洪重孝) and Chulsailok (出塞錄, 1781) written by Hong Su-bo (洪秀輔) while it is widely known that the members of P'ungsan Hong Clan had a steady relationship with many Ching literati. The exchages between literati of Chosŏn and Ching, including the exchange between Hong Ŭi-ho and Fei lanchi (費蘭墀) on three occasions shows a significant development in history of literary exchange between Chosŏn and Ching. It is also important fact that Hong Ŭi-ho was reading various poems of many Chosŏn literati composed while envoying to Ching whom he had intimate relationship with. Hong Ŭi-ho wrote prolifically naming himself as 詩癖 (craze for writing Chinese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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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둔헌(遯軒) 임병찬(林炳瓚)의 불굴(不屈)의 의기(義氣)와 낙관(樂觀)의 시세계(詩世界)

저자 : 김창호 ( Kim Cha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1-12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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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에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인 遯軒 林炳瓚의 시세계를 고찰한 것이다. 임병찬은 1906년 勉菴 崔益鉉과 함께 泰仁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제의 한국강제병합 이후에는 대한독립의군부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일찍부터 사학계에서 그의 구국활동에 주목해 왔으나 한시 작품은 연구의 사각 지대에 있었다. 현재 그의 문집 『돈헌유고』에 남아있는 시는 모두 149제 175수로 태인창의 이후 수감되었을 때부터 대한독립의 군부 활동 이후 거문도에 유배되어 생을 마칠 때까지 쓴 것들이다.
임병찬의 시에는 음풍농월류의 작품이 거의 없다. 憂國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眞情이 작품을 일관하고 있다. 진정은 유약한 감정이나 체념적 정서와는 다르다. 절망의 상황에서도 반등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긍정적인 미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태인의병 시기~대마도 유배기, 환국 이후~독립의군부 활동기, 거문도 유배기 세 시기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째 시기의 작품에는 태인의병의 목표인 大義의 선양이 강조되며, 일제에 압박에 굴하지 않는 義氣가 작품의 저변에 흐른다. 이러한 의기는 면암의 殉國에 대한 슬픔을 밝은 미래상으로 대치하기도 한다. 둘째 시기는 일제의 한국강제병합이 이루어진 무렵이다. 병합에 대한 다양한 감정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항일 운동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以文制武'와 관련한 여러 형상이 등장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셋째 시기에는 거문도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다. 접하는 물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하고 정신 자세를 가다듬기도 하지만, 사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公的인 차원에서 국가와 백성을 염려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임병찬의 삶은 우국과 애민으로 요약되며, 의기로 무장된 到底한 신념의 실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항일의 방법에 있어서는 상황을 고려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復卦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어느 날엔가는 다시 광명이 찾아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병찬의 시를 일관하는 핵심은 불굴의 의기와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라 할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poetic world of Dunheon Yim Byeong-chan, a bureaucrat and head of Uibyeong (civil army) who worked in the lat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Yim Byeong-chan(林炳瓚) started Uibyeong with Choi Ik-hyeon(崔益鉉) in Taein(泰仁) in 1906, and he worked at the Headquarter of Korean Independence Righteous Civil Army after Imperial Japan's forced merger of Korea.
The poems of Yim Byeong-chan rarely include works of Eumpungnongwolryu (category of poetry enjoying leisurely nature/吟風弄月類). The sincerity coming from the life of patriotism is consistent with his works. Sincerity is different from weak feelings and somatic feelings. It has the power to rebound even in times of despair and never gives up on a positive future. His poems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such as Taein Uibyeong period ~ sushima(對馬島) exile period; after returning home ~ Headquarter of Korean Independence Righteous Civil Army period; and Geomundo(巨文島) exile period. The works of the first period emphasize the enhancement of good cause, which is Taein Uibyeong's goal, and the righteousness not yielding to the pressure of Imperial Japan flows to the bottom of his works. In the second period, there are various emotional reactions to Imperial Japan's forced merge of Korea appearing in his works, but it can be seen that he was not buried by such feelings and worried about the direction of the new anti-Japan movement. The characteristic is the appearance of various forms related to “Yimunjemu (forestalling a sword with a pen/以文制武).” In the third period, although Geomundo's natural objects confirm his values and refine his mental attitude, he overcame private feelings and in a public dimension his concerns are seen in the state and people. The life of Yim Byeong-chan is summarized in patriotism and love of the people, and it is a process of realizing his beliefs armed with righteousness. However, he knew how to handle the situation and coped flexibly in terms of anti-Japan methods. As seen in the name of Bugwae(復卦) that often appears in his works, he had a conviction that light would come again there one day. The core of Yim Byeong-chan's poems can be the indomitable righteousness and the optimistic attitude towar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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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다산 정약용의 '영명지체(靈明之體)' 개념에 대한 논의 -정약용의 『심경밀험』과 롱고바르디의 『영혼도체설』을 중심으로-

저자 : 최정연 ( Choi Jeong-yeo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7-145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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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심학에서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심의 어원을 추적하여 그것이 가차어임을 입증하고, 그동안 심으로 정의된 인간 정신을 靈明之體로 지칭한 사실이다. 필자는 여기에 주목하여 그가 유교 전통에서 정신을 가리키던 심을 굳이 가차어로 재규정하고, 정신을 표현하는 용어로 영명지체나 靈體를 끌어들인 이유를 추적해 보았다.
본문은 총 세 장으로 기획되었다. 2장에서는 정약용이 제시한 심이나 영명지체가 당대 조선의 유교 지식인 사이에서 이해되던 방식과 달랐음을 논의하였다. 3장에서는 정약용이 이들 개념을 기존과 달리 정의할 수 있던 이론적 토대를 조선에 전래된 롱고바르디(Nicholas Longobardi,龍華民, 1559~1654)의 『靈魂道體說』에서 찾아보았다. 4장에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정약용이 롱고바르디의 영명지체를 접촉했을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One of the intriguing points in Dasan Jeong Yagyong's scholarship of mind is that he etymologically demonstrated “sim” 心 (mind-heart) as a loanword and designated human mind by an alternative term, yeongmyeong ji che 靈明之體, instead of the conventional term, sim. With a special attention to this change, my research traces the reason why Dasan found it necessary to reidentify sim and referred to the same subject of human mind by alternative words, such as yeongmyeong ji che or yeong che 靈體.
In the first of the three main chapters (Chapters 2 to 4), I argued that the concept of sim or yeongmyeong ji che presented in Dasan's work was aberrant from the way the majority of Joseon intellectuals understood sim. In Chapter 3, I attempted to trace a theoretical basis of Dasan's unconventional conceptualization of human mind to Longobardi's Linghun daoti shuo 靈魂道體說 (On Human Soul and the Ultimate Dao). In Chapter 4―though not conclusive―I examined possibilities that Dasan may have come across Longobardi's concept of yeongmyeong ji 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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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호사설』의 생물지식 재편 시도

저자 : 심경호 ( Sim Kyung-ho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7-189 (4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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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은 성호 李瀷(1681~1763)이 천, 지, 인, 만물의 각 개념들에 관하여 탐색한 내용을 그때그때 작성한 箚記들을 집성한 유설이다, 조선후기의 유서ㆍ유설과는 달리 天地門-人事門 사이에 萬物門을 설정했다. 物譜를 독립시키지는 않았지만, 物의 본질, 형태, 기능에 관해 특별한 인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호 이익은 저연계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자연계 생물과 향촌 물품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관찰의 경험을 독서 지식과 연관시켜 自說을 이루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문헌 지식의 참-거짓-불명확성을 검토하고 경험 관찰의 결과와 대조하고 추론하여 그 지식을 보다 명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생물의 생성이나 본질, 세계내 위치에 관해서도 사색했다. 다만 이 생성론, 본질론, 위치론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관찰의 도구나 원리의 설정에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18세기 한국 지식인의 生物 인식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하고 있었다. 이익은 化生과 妖邪, 災變과 祥瑞에 대해 의문을 지니면서도 일정부분 진실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생물의 種과 생성에 관해서 독자적인 설을 수립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생물의 이름과 실상을 부합시키고, 생물의 속성을 심도 있게 관찰했으며, 기존 문헌정보의 오류나 상호모순을 철저히 검토했다. 『성호사설』 만물문 가운데 생물 관련 항목은 생물에 관한 명징한 인식에 도달하려고 고투한 중요한 산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Sŏnghosasŏl (星湖僿說) is a Yusŏl (a compilation of categorized theories) that Sŏngho Yi Ik (李瀷, 1681-1763) collected his academical notes (箚記) about heaven, earth, mankind, and all things. Unlike other Yusŏ (a category book) and Yusŏl in the late Joseon, Sŏnghosasŏl set up 'All things section (萬物門)' between 'Heaven and earth section (天地門)' and 'Human affair section (人事門).' Although Yi Ik did not separated a wordbook for things (物譜) as a publication, it is clear that he had a distinct perception of essence, shape, and function of thins.
Yi Ik observed natural organisms and objects in country, associating his observation with knowledge from books to form his own theory. In Sŏnghosasŏl, Yi Ik examined true-false-obscurity of literary knowledge and compared it with his observation, raise knowledge to more evident level. Also, he contemplated creation, essence, and a position in the universe of organisms, however, such theories could not reach a sophisticated level, due to a limitation of observation tools and establishment of fundamentals. His theories reflects understanding of organisms of intellectuals in the 18th century Joseon. Although Yi Ik questioned metamorphosis, wickedness, ominousness, and auspiciousness, he accepted them are partly true. Furthermore, Yi Ik was unable to establish a distinct theory about the origin and species of organisms. Nevertheless, he matched the name and fact of organisms, observed the properties of them in depth, and thoroughly examined the errors and contradictions of existing literary informations. Entries about organisms in the all things section in Sŏnghosasŏl needs to be remembered as a struggle to reach clear understanding of organis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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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필원산어』 연구 -영남 남인 정체성과 문학사 인식을 중심으로-

저자 : 장유승 ( Jang Yoo-seung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1-213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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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섭은 영남에 세거한 남인 가문 출신이다. 그는 크게 현달하지 못한 선조들을 문학으로 선양했으며, 이는 주변 인물들과 지역 문인들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역 사회에서 산수 유람과 시문 창작에 몰두한 그의 생애는 영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그 결과 『필원산어』는 영남 남인의 정체성과 더불어 당대 영남 문단의 실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성섭은 영남 남인으로서 근기 남인과는 거리를 두고 그들의 정치적 동향을 예의주시하였으며, 문학적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성섭은 선조와 당대 영남인의 불우를 서인정권의 탓으로 돌리며 갈수록 심화되는 남인 내부의 분열을 우려하고 결속을 지향했다.
성섭은 당색을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에 바탕하여 독자적인 안목으로 문학사를 정리했다. 『필원산어』에서 특히 자세한 것은 조선 산문사의 흐름이다. 그는 국초 이래 조선 산문이 전아하고 순정한 당송 산문을 지향했으며, 중국에 버금가는 성취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한시는 언어적 한계를 고려하여 현재의 언어로 전아하고 실질적인 시풍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성섭이 서술한 문학사에는 당색이 적절히 안배되어 있다. 이 점에서 『필원산어』는 영남 남인의 시각을 반영하면서도 당색에 매몰되지 않은, 비교적 균형잡힌 문학비평서라고 하겠다.


Sung Seop came from a family that has lived in Yeongnam for generations. He praised his ancestors for their literature, and interested in the local literati. He spent his life traveling and writing in the local community. As a result, Pirwonsaneo reflects his identity and the realities of the local literati.
Sung Seop was a Yeongnam Namin(Southerners in Gyeongsang province). He stood at a distance and watched Geungi namin(Southerners in capital province). He blamed Seoin for the unfortunate sitiation of his ancestors and Yeongnam people. He concerned about the division of Namin, and sought unity.
Sung Seop described the literary history based on his expensive reading. The particulars of this book are the history of prose. He argued that the Choson prose was the second to China in aiming for the Tang-Song classic prose. His view is that poetry should use the current language, taking into account its limitations. His literary history arranged the faction properly. Pirwonsaneo is a relatively balanced literature, reflecting the Namin's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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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욕망을 둘러싼 논쟁과 전쟁 -욕망의 권력장, 『삼한의열녀전』-

저자 : 김유진 ( Kim Yuj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5-24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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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 향랑은 시댁의 억압과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죽음에 내몰렸고 사대부 문인들은 향랑을 평민임에도 열녀로 칭송하였다. 조선의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향랑은 지속적으로 문학적으로 호명되었고 평민 여성에게까지 '열녀 되기'의 사회적 죽음을 권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반면 『삼한의열녀전』의 작가 김소행은 소설화된 향랑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계(天界)의 논쟁, 천마(天魔)의 전쟁 나아가 삼국(三國)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난 한 서사적 통과의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욕망의 권력장인 소설 속에서 망각된 향랑의 욕망을 부각시켜 허구적 인물을 창조하였고 소설적 서사을 통해 그녀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환상적 서사로 구축해낸 것이다. 소설적 인물인 향랑의 욕망은 기존의 열녀관으로부터 탈주하여 각종 서사 장치를 통해 탈영토화된다. 그러나 탈주한 향랑의 욕망은 부지소종(不知所終)의 서사 장치를 통해 역사적 흔적이 은폐되고 탈주한 욕망은 재영토화된다.


The desire as a fact of Hyangrang(香娘) is a virtuous woman's desire as well as a desire to death. And the desire as a fiction is a desire for life and hope for marriage with a good man. Kim, Sohaeng(金紹行) showed through the narrative of SamhanuiyeolnyeoJeon(三韓義烈女傳) to realize the desire of Hyangrang and for her desire needed both the battle and debate in the Heaven throughly. A suicide is a universal taboo in society. Paradoxically, a virtuous woman had to break this taboo to be a true faithful woman. Hyangrang died more than a hundred years ago when Kim, Sohaeng created Samhanuiyeollyeojeon.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of Joseon, Hyangrang continually had been called literally and had been an icon that encouraged the social death of 'the becoming a virtuous woman' to ordinary class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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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조조(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과 물질문화적 의미

저자 : 이국진 ( Lee Gook-jin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5-28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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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배다리 건설에 관한 기록들과 시작품들은 正祖朝 물질문화의 우수함과 다채로움을 잘 보여준다. 먼저 正祖朝 한강 배다리는 당시 과학기술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正祖朝 한강 배다리의 하부 구조 결합 공법, 상부 구조 결합 공법, 가변형 선창다리, 연성 구조체 등은 배다리의 견고함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기술공학의 결정체였다. 여기에 舟橋司를 설립하고 『舟橋指南』 등을 통해 교랑 가설 기술을 매뉴얼로 정리하여 해마다 교량 건설 작업에 활용했다는 점도 기술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이러한 철저하고 치밀한 기록정신은 『園幸乙卯整理儀軌』, 『華城城役儀軌』 등으로도 이어져 오늘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산이 되었다.
이러한 물질문화의 성과는 正祖의 높은 역량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한강 배다리 건설사업의 성공적인 운용은 正祖의 기술과학적인 인식 수준과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잘 헤아려 원활한 국정운영을 도모했던 애민의식과 정치의식이 있어 가능했다. 아울러 당대 문인들의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물과 시적 형상화 작품들은 수준 높은 물질문화를 왕과 사대부들이 소통하면서 공유하고, 그 문화적 유산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강 배다리에 의한 물질문화를 왕실과 사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함께 향유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과 시적 형상화 작품들은 당대의 기술, 문화, 정치, 문학적 역량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물질문화는 正祖의 뛰어난 역량과 조선 후기 과학기술의 높은 수준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일의 공적[事功]을 중시하고 사물의 이치 탐구와 합리적 문제 해결력을 지향했던 正祖의 사유 방식이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正祖 또한 성리학적인 심성론을 바탕으로 한 사유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正祖는 견고한 제왕 중심의 관료제도를 공고히 했다. 그리하여 한강 배다리에 관한 물질문화는 19세기에 접어들며 더 이상의 기술 문명 발전과 물질문화의 확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방식이나 준거의 혁신적인 전환, 즉 패러다임의 갱신이 필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Records of Han river's pontoon bridge construction and its trial products show well the excellence of King Jeongjo's material culture. King Jeongjo Han river's pontoon bridge was the substance of that time's scientific technology that tried to increase the firmness and safety. The point of establishing the main bridge manager and resuming by manual the bridge installation technology through 『the main bridge guidance』 etc to use it for each year's bridge construction also has a technically great significance. The thorough and careful recording spirit like this resulted also in 『Wonhaengeulmyojeongrieugoe』, 『Hwaseongseongyeokeugoe』 etc. These days, these are the perfect assets in the world.
This result was based on Jeongjo's excellent personal skill. The successful operation of Han river pontoon bridge construction project was possible thanks to Jeongjo's technical and scientific recognition and his political consciousness that has reinforced the royal power, understood well people's mind and contributed to an easy state affair. Moreover, the record of those writers' Han river pontoon bridge and their poetic embodiment works show that the king and the nobles shared the higher level of material culture with pride. Also, it shows that not only the royal family and nobles but also the common people enjoyed the material culture by Han river's pontoon bridge. Therefore, the record of King Jeongjo Han river's pontoon bridge and its poetic embodiment works are the result of those people's technical, cultural, political and literary skills.
However, the inheritance like this has not been diffused nor developed in the 19th century after King Jeongjo. The material culture of Han river's pontoon bridge was possible thanks to Jeongjo's excellent skill and the higher level of scientific technology at the latter period of Chosun. However, it did not have anymore the diffusion effect of technological civilization development and material culture due to the way of private ownership based on the Neo-Confucianist psychological and sex theory and the firm king-centered bureau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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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거미' 소재 한국(韓國) 한시(漢詩) 고찰(考察) -거미 의상(意象)의 양상과 의상군(意象群)을 중심으로-

저자 : 강성규 ( Kang Seong-kyu )

발행기관 : 근역한문학회 간행물 : 한문학논집 55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5-320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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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한시에서 활용된 거미 의상(意象)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선행연구를 통해서 확인된 중요한 단서는 거미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다는 점과 한 사람의 작가에게서도 하나의 고정된 인식으로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의 작시 상황이나 처지 및 의도와 결부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으로 작품 내에서 다각도로 활용되어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점을 감안하여 살펴본 결과, 한국 한시에서는 크게 '인적이 없는 공간에서의 거미', '상서로운 일을 암시하는 거미', '봄에 대한 안타까움을 대신하는 거미'의 의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거미 의상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중심 소재로 활용하는 영물시에서는 '생물에게 해를 입히는 포식자로서의 거미', '세망(世網)으로 비유되는 존재로서의 거미', '섭리대로 살아가는 자연물로서의 거미'로 구분되는 의상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개별 의상으로서 거미를 다루는 일반 한시에서는 거미라는 소재를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영물시와 비교하였을 때 그 집중도가 다르기 때문에 거미 의상의 의미 양상도 분명하게 구분되어 활용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거미가 등장하는 한시에서는 실재하는 거미가 묘사된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전고로써 활용된 것인지는 작품별로 달리 접근하여 자세하게 따져보아야 할 문제지만 활용된 거미 의상 자체는 특정 공간과 조합을 이루거나 다른 동물(혹은 곤충)과의 비교, 대조를 통해 의미가 강화되는 경향성을 보이며 작가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다르게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examine spider image used in Sino-Korean poetry. Important clues identified through the preceding study are that the perception of spiders varies and does not consistently appear in one writer as a fixed perception. This means that likely to be tied to the author's situation and intention. It also means that there is ample room to be used in multiple ways and extended in another sense.
Taking this into consideration, we have examined the following: In Sino-Korean poetry, has meaning that 'Spiders in Unmanned Space', 'an auspicious spider', 'A spider symbolizing its sorrow for spring'. In addition, the Yeongmulshi (詠物詩), which uses spider images as its main material, has formed image groups that are divided into 'spider as a predator that harms life', 'a spider likened to a Se-mang (世網)', 'spider as a natural being'.
However, the concentration is different in ordinary Sino-Korean poetry when compared to Yeongmulshi (詠物詩) that focus on spiders. Therefore, we could see that the meaning of spider image is clearly distinguished.
In Sino-Korean poetry where spiders are featured, whether real spiders are depicted or intentionally used as authentic precedent is a matter that can be clarified in a separate way. However, the spider image itself tends to be enhanced by combining with a specific space or by comparing it with other animals. And most of them are used depending on the situation and situation of the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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