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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범위 : 1권1호(2018) |수록논문 수 : 4
인문학술
1권1호(2018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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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순천중앙교회의 태동과 발전

저자 : 차종순 ( Cha Chong-soo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1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1-40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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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00년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순천중앙교회의 교회가 시작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서술의 중심은 교회의 역대 교역자의 활동과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에 둔다. 내용은 큰 줄기보다는 세세한 부분에 대한 자세한 고증을 하는 데 역점을 둔다.
순천지방은 군산, 전주, 목포, 광주와 함께 호남의 5대 기독교 거점 지역이다. 순천읍교회로 시작한 순천중앙교회는 순천지방 기독교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순천지방은 다른 곳과 달리 자생적 신앙공동체가 발전하면서 기독교가 시작되었고, 교회를 통해 성장한 기독교계 인사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강했으며, 그만큼 선교사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특징이 있었다.
순천중앙교회를 연 사람은 조상학 조사이다. 1898년 11월 목포선교부에 가서 Dr. Owen에게 신앙을 얻은 그는 Owen의 조사로 목포, 송정리, 광주, 보성, 여천, 광양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 4월 순천지방 교인들과 함께 금곡동 향교 뒤 샘 부근 양사재를 빌려서 예배를 드린다. 순천에서는 첫교회였다. 그러다 1908년 양사재를 일본군에게 빼앗기고 순천 영동에 초가를 매입하여 유내춘 장로의 인도 아래 예배를 시작하였다. 유내춘 장로는 순천중앙교회의 제1대 담임 교역자이다.
이 과정에서 1913년 프레스톤 선교사의 주도 아래 순천선교부가 개설되었다. 목포선교부와 광주선교부를 부흥시킨 프레스톤 선교사는 1909년부터 유내춘 장로의 도움을 받아 순천선교부 개설을 시작하였다. 결국 순천 북문밖 매산 등을 매입하고 교회, 학교, 병원이 함께 하는 선교기지로 출범하였다. 이때 젊은 선교사들 다수가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3월에 매곡동에 20평 규모의 교회가 마련되면서 순천읍교회는 부흥되기 시작하였다. 교인들이 늘어나고 학교도 운영하였다. 김영진 장로 등 장로도 새로 세웠다.
이후 순천읍교회는 2대 방효원, 3대 정태인, 4대 이기풍 등 담임교역자들의 영도 아래 크게 발전하였다. 2대 방효원 목사는 아마 부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상학 조사로 인해 신앙을 받아들인 3대 정태인 목사는 1918년 7월 전라노회에서 순천읍교회의 담임교역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기풍 목사는 1920년 2월부터 1924년 2월까지 재직하였다. 그는 이 기간동안 전남노회장과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그가 있는 동안 교인이 크게 늘어나 교회를 신축하였고 장로를 새로 세우는 등 순천읍교회는 명실공히 순천지방의 중심 교회로 성장하였다.
1907년부터 시작된 순천읍교회는 초기에 목포선교부 출신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1913년 순천선교부가 서게 되자 선교부의 “지역교회(Local Church)”로 기능하였다. 초기 개종자들의 자발적 자생적 신앙공동체로 출발하였다가 선교부 개설 후 복음선교와 함께 교육, 의료 선교가 함께하면서 지역의 순천지방 지도층 인사들의 구심점 기능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도 밝혀진 부분이 너무도 적다. 이후 이런 부분들은 구체적인 자료들을 모아 해결해 나가야 한다.


This paper aims to summarize the development of Suncheon Jungang Church(SJC) from 1900 to 1920s. The activities of SJC and its societal influence will be the focus of the argument, with emphasis on verifying historical details.
Suncheon is one of Honam's five main Christian footholds, along with Gunsan, Jeonju, Mokpo, and Gwangju. Unlike other areas, Christianity in Suncheon developed around an autonomous religious community, Christian figures had substantial societal influence, and missionaries were empowered with notable leverages.
SJC was founded by Cho Sang-hak. In November of 1898, he received faith through Dr. Owen of Mokpo Missionary Branch(MB), and worked in Mokpo, Gwangju, Yeocheon, etc. Then, in April of 1907, Cho performed a worship in borrowed Yangsajae located behind Geumgokdong Hyanggyo, marking the first church in Suncheon. However, Yangsajae was taken away by the Japanese militia, and Cho thus continued his service in a thatched cottage near Yeongdong with Elder Yoo Nae-choon, the first minister to be in charge of SJC.
In this process, the Suncheon MB was founded by Missionary Preston in 1913. Preston began the Suncheon MB with Elder Yoo. Preston consequently bought Maesan, establishing a missionary base consisting of a church, a school, and a hospital. In this period many young missionaries were active. In March of 1910, the revival of SJC began with the foundation of church in Maegok-dong.
Afterwards, SJC flourished under guidance of many ministers such as Bang Hyo-won, Jung Tae-in, Lee Gi-pung. Minister Bang is speculated not to have been officially appointed as the minister-in-charge. Minister Jung, who received faith through Cho, was appointed as the minister in charge for SJC by Jeolla Elder Committee in July of 1918.
Minister Lee Gi-pung was in charge during February of 1920 to February of 1924. He was also the head of Jeon-nam Elder Commitee during this period. Under his guidance, SJC became the pivotal church in Suncheon, with growing believers, newly-built church, and new additional Elders.
In the initial stages of SJC, beginning in 1907, it was led by personnels from Mokpo MB, and in 1913 it operated as the Local Church for Suncheon MB. Founded initially by early converts as a autonomous religious community, SJC operated as a pivotal point for leading personnels of Suncheon after the founding of MB, incorporating education and hospital services along with the missionionary work. Unfortunately, majority of details remains yet to be discovered, which must be resolved through gathering detailed data.

2한국 전통사회와 전남지역 기독교 선교

저자 : 김용철 ( Kim Yong-cheol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1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41-6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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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현대 한반도 특히 전남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가를 가늠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 선교를 “문명번역”의 시각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즉 기독교가 한반도의 전통사회 속에 들어와 자리 잡으면서 서양의 근대문명을 번역해 들여와 한반도 문명을 근대화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한반도에서의 선교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첫째, 폭력적 이식이 아니라 비교적 순조롭게 이식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한반도에서 기독교 선교는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성공을 거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의 성공은 한반도가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변화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로 기독교가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조선사회에 전혀 이질적인 서양문명이 들어오기 위한 “출입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바로 문명번역이 행해진 “문” 역할이었다.
기독교 선교가 한반도에서 수행한 문명번역의 역할은 우선 기독교 선교의 전통적인 세 가지 기둥인 복음선교, 의료선교, 교육선교에서 볼 수 있다. 복음을 통해 영혼을 살려내고 의료를 통해 병든 몸을 살려내고 교육을 통해 무지한 사람을 계몽하여 살려내는 것이 이 세 개의 기둥이 수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선교를 타고 서양문명이 한반도로 번역되어 들어와 한반도문명을 근대화시켰다. 이 세 개의 기둥은 또한 신앙과 개인과 공동체의 세 가지 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독교 선교가 가지는 문명번역의 의미는 기독교 신앙이 전통사회가 근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늘에 대한 재해석 과정 중 하나로 존재했다는 점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선교 과정에서 강력하게 작동했던 기독교 신앙조직 역시 전통마을의 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기독교 선교 연구에서 좀 더 문명 차원의 거시적인 시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This paper is intended to examine how Christian mission has been achieved in the modern Korean peninsula, especially Jeonnam area. For this purpose, this paper will look at Christian mission from the perspective of “Translation of Civilization”. In other words, Christianity was introduced and settled down in the traditional society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ranslated Western civilization, playing a key role in modernizing the civ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r.
Compared to other areas of the world, Christian mission in the Korean peninsula has two noteworthy aspects: first, it is not a violent transplantation but a relatively smooth transplantation, and second, Christian mission in the Korean peninsula can be regarded as a success case that has never been seen before in world history. The success of Christian mission means that Christianity has act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pathways for the Korean peninsula to transit from a pre-modern society to a modern society. In other words, it acted as a “Doorway” for Western civilization, which is totally heterogeneous in the Joseon society, was introduced to the Korean peninsular, that is the role of the translation of civilization as a doorway.
The roles of Christian mission in the translation of civiliz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can be seen in three traditional pillars of Christian mission: Evangelism, Medical mission, and Educational mission. The works of these three pillars saved the soul through the gospel, saved the sicked through medical care, and enlightened the ignorant through education. In addition, these three missions introduced Western civilization to the Korean peninsula, modernizing the civ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These three pillars also means a combination of religion, individuals, and community.
The meaning of the translation of civilization of Christian mission also can be seen in the fact that Christian religion existed as one of the re-interpretation processes of heaven during the course of the transition from traditional society into modern society. In addition, it is worth noting that the church organization, which acted intensely in the course of mission, is closely associated with the organization of traditional villages. This is why there is the necessity of more macroscopic view at the dimension of civilization in the research of Christian mission.

3미국 남장로회 순천선교기지 선교마을들

저자 : 우승완 ( Woo Seoung-wan ) , 남호현 ( Nam Ho-hyu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1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69-120 (5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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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장로회 선교기지 유적은 전북은 전주와 군산, 전남은 목포, 광주, 순천 등의 도시에 산재되어 있다. 선교기지 유적은 선교 과정에서 구축된 각종 건조물로 볼 수 있는데 크게 병원, 학교, 교회, 주택 그리고 지원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선교 유적은 1892년 이후 미국으로부터 전래된 근대의료와 교육, 서양 건축술 등의 전래 과정이 함축된 공간으로 지역민들의 생활문화 변화와 도시 근대화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미국 남장로회의 순천 선교기지는 종합계획을 통해 구축된 한국 최초의 선교기지로 선교정책과 그 필요에 따라 '선교기지 마을', '질병 공동체 마을', '수양관 마을' 등의 다양한 서양식 마을을 조성했다. 조성 당시 목적에 따라 독자적으로 조성된 선교기지 마을들은 지금까지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보전되고 있다.


There are some historic sites of the mission stations of U.S. Presbyterian Church around Jeonju and Gunsan of Jeonbuk province and Gwangju, Suncheon, Mokpo, etc. of Jeonnam province.
The historic sites of the mission stations consists of buildings which had been constructed during the missionary there. On the whole, the buildings can be classified as hospitals, schools, churches, houses and facilities.
The mission stations as places, in which western architecture integrated with the modernized medicine and education introduced from U.S. since 1892, had changed the living culture of the local people and served as a motive of the modernization and urbanization.
Especially Suncheon has the first mission stations in Korea, which were created through the master plan by U.S. Presbyterian Church, and they set up western styles of towns according to their missionary policy as necessary: towns of mission stations, disease-prevention community, missionary retreat center, etc.
The towns of the mission stations independently made on purposes at the time have been preserved as they have maintained their own properties until now.

4박완서 작품에 나타난 한국전쟁의 기억과 주체의 형성

저자 : 강용운 ( Kang Yong-woon )

발행기관 :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 간행물 : 인문학술 1권 1호 발행 연도 : 2018 페이지 : pp. 123-163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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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박완서가 경험했던 한국전쟁이 그녀의 삶과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본 글이다. 박완서의 삶과 문학은 한국전쟁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녀가 경험하고 반추했던 한국전쟁의 개인적 기억은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의 의미를 세계에 표상하는 통로이며, 문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녀는 냉혹한 전쟁의 폭력 앞에서 생존을 위협받았으며, 살기 위해 온갖 치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녀는 후에 이 시기의 경험했던 수치심과 참혹함을 '벌레의 시간'이라 스스로 의미화 했다. 그녀는 실제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으며, 그로 인한 경제적 궁핍으로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살아남은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20살 성인의 입구에서, 꿈으로 부푼 대학신입생으로서 목도한 한국전쟁은 그녀가 청소년기에 꿈꾸었던 청춘의 열정을 파괴했으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환멸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억울했고, 이 억울함을 해소하는 방법이 글쓰기였다. 박완서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청년기를 통과했던 기억들을 소환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다.
따라서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적 억압으로 인한 폭력성과 여성의 비인간화에 대한 욕망의 부재와 결핍을 보여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제 시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근대화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낸 박완서의 작품 세계는 말 그대로 우리 역사를 체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박완서의 소설세계는 한 개인의 '기억'의 기록이자 한국 여성의 고난의 역사적 기록이라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 작품은 한 개인의 자기의식 형성(주체)의 기록이며, 근대적 여성의 주체 형성의 기록이다. 하지만 박완서가 끄집어낸 상처의 기억이나 치유의 과정은 개별자인 한 개인이 감내하기는 너무나 큰 역사적 무게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고통과 후유증은 여전히 지금도 작동하고 있고, 그 해결이 필요한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완서가 그의 소설에서 끊임없이 불러내는 한국전쟁의 기억과 상처는 한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This paper was intended to examine the meaning of the Korean War that Park Wan-suh experienced in her life and her works. The life and literature of Park, Wan-suh a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Korean War. Her personal memory of the Korean War that she experienced and ruminated was a passageway for representing her being as a human being to the world and the starting point of her literature. Her life was threatened in the violence of brutal war and she had to endure all kinds of shame for survival. Later, she signified the shame and cruelty that she experienced at that time as “the time or worms”. She had lost her beloved family during the Korean War. And because of consequential economic deprivation, she, as a young woman, had to support her family that survived the war. In her 20s, the beginning of her adulthood, the Korean War that she witnessed as a college fresh woman has destroyed her passion that she had in her adolescence, which made her disillusioned about humans and the world. She felt resentment, so she wrote to alleviate the resentment. Through writing, she summoned the memories of her youth and gave meanings to them.
Therefore, the world of her works can be evaluated as showing the absence and lack of the desire against the violence and the dehumanization of women due to war, division and ideological oppression. In other words, the works of Park, Wan-suh, who has undergone the process of the modernization - the times of Japanese Imperialism, liberation, war and division - literally embodies our history. Eventually, the world of her works is a record of a personal memory and a historical record of the sufferings of a Korean woman. Her works is a record of the self-conscious formation (identity) of a person and a record of the identity formation in a modern woman. However, the memory of the wound and the process of healing that Park, Wan-suh put forwards has a very large historical weight that a person can bear. The pain and aftereffects left by the Korean War are still operating and they are the ongoing problem that must be solved. It is because the memories and wound of the Korean War that Park Won-suh constantly recalls in her novels are not the personal wound but the wound of Korean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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