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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update

The Oriental Studies , Dong Yang Hak

  •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 인문과학분야  >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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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69권0호(2017)~74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2
동양학
74권0호(2019년 0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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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소월의 「진달내□」은 이별 수용의 시가 아니다

저자 : 윤효녕 ( Yoon Hyony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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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진달내□」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이별의 정한, 산화공덕, 한의 정서, 이별에 임하는 무의식적 성적 욕망, 원망을 갖지 않는 근대적 이별 등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해석은 공통적으로 이 시가 '이별 수용의 시'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별을 수용하는 화자의 다양한 심리를 분석해내기는 하지만, 그 해석적 다양성은 '이별 수용의 시'라는 기본 프레임 안에 갇힌 채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진달내□」이 '이별 수용의 시'가 아니라 '사랑 회복의 시'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화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을 수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화자는 임이 자기에게 “역겨워”진 상황을 순전히 가정하고, 만일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긴다면 진달래꽃을 따다가 임이 가실 길에 뿌림으로써, 역겨워진 임의 마음을 다시 사랑의 마음으로 돌리겠다는 방책을 임에게 말하고 있다. 꽃을 뿌리는 행위는 임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라, 임을 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점을 입증하기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반어법과, “삽분히즈려밟고”의 역설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텍스트의 각 부분이 문맥상 다른 부분들과 맺는 의미관계를 분석할 것이다. 끝으로, 이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임과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미학적 대책을 강구하는 지극히 이지적이면서 지극히 감성적인 화자는 지성과 감성을 통합한 소월의 현대시적 감수성을 반영하는 자화상적 페르소나임을 밝힌다.


Kim Sowol's “Azalea Blossoms” is one of the most famous and highly evaluated modern Korean poems. And the extant interpretations have pointed out as its theme the feeling of grudge, the sense of grudge mixed with affection, a blessing by strewing flowers, the unconscious desire for a sexual union, or a modern type of parting without resentment on the part of the speaker encountering separation from the lover. Variegated as they are to a certain extent, these approaches to the poem all share the limited critical framework that the speaker is determined, if reluctant, to let go of the loving one, who is now unbearably sick and tired of even seeing the speaker.
However, my paper offers a new interpretation that it is not 'a poem of parting' but 'one of recovering love at stake.' In a purely assumed situation of parting, the speaker never accedes to the separation imposed by the now nauseated sweetheart. Rather, the speaker is bent on curing the sickness and restoring the partner's heart to its former state of love. Strewing beautiful azalea flowers under the steps of the departing lover is not a gracious farewell praying for the bliss of the goer's future as conventional scholars have claimed so far. Instead, it is a moving remedy appealing to the aesthetic taste which the speaker believes still to be working intact in the heart of the 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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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대전진용정」(이하 「진용」으로 약칭)은 홍콩의 인기 작가 이벽화의 소설 「진용」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그 속에는 중국인들 특유의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치정과 회고, 그리고 무상의 세계를 매우 애잔하고 비장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의 극본인 이벽화의 소설 「진용」과 중국문화에 대한 이런 이해 없이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이 영화에 대한 오해를 갖기 십상이다. 본고는 이런 생각에서 원작 소설 이벽화의 「진용」을 기반으로 한 영화 「진용」에 나타난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치정과 회고, 그리고 무상의 정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현대 중국어에서의 치정의 함의는 한국어에서처럼 부정적인 함의가 아니라 지고지순하고 순수한 남녀 간의 깊은 정과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회고란 옛것을 그리워하는 정서로 조상과 성현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중국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또 무상이란 인생과 세사의 덧없음에 대해 느끼는 감회를 말하는데, 이 역시 중국문학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된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 「진용」은 이벽화의 소설을 극본으로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반영하여 제작된, 중국 옛사람들의 순수한 치정의 세계를 회고와 무상의 비통한 심정으로 그려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e film < A Terracotta Warrior, 秦俑 > is based on Lilian Lee(李碧華)'s novel named <秦俑>. Lilian Lee is one of the most famous scenario writers and novelists in Hong Kong. The film and the novel <秦俑> seriously described the typical chinese culture and sentiment such as infatuation (癡情), meditation on the past(懷古) and transience of life(無常). So if we do not understand these chinese cultural background, we will be prone to make mistakes in appreciating and criticizing the film. Basing on this idea, this paper researches very common chinese cultural psychology - infatuation(癡情), meditation on the past(懷古) and transience of life(無常). The meaning of Chi-Qing(癡情, infatuation) in modern chinese language is not like its korean and japanese meanings - 'pervert or weird'. Chi-Qing(癡情) in chinese language means the deep and pure love between man and woman. 'Meditation on the past(懷古)' means the feeling of missing past and old people and generation. And 'transience of life(無常)' is the sad feeling of briefness and impermanence on the life and world. The novel < A Terracotta Warrior, 秦俑 > and its film both described the infatuation of love of the ancient chinse people with the attitude of meditation on the past and transience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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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협(劉勰)이 제기한 “혜지청준(嵇志淸峻)”에 대한 재고찰(再考察)

저자 : 심우영 ( Shim Wooyeung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9-53 (1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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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勰이 『文心雕龍』 「明詩」편에서 제기한 “嵇志淸峻”은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을 낳았고 또한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였다. “嵇志淸峻”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혜강 시가의 풍격을 연구하는 데 선결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尙書』 「堯典」에서 시의 본질과 특징으로 규정한 “詩言志”, 『文心雕龍』 「風骨」편에서 언급한 “風淸骨峻”, 그리고 「명시」편에서 혜강 시를 평가한 “嵇志淸峻”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보았다. 그리하여 이상의 세 가지 고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폈으며, 이것을 통해 '志'와 '淸峻'의 함의가 무엇인지를 조사하였고, 더불어 기존의 주장과 학설을 제시하여 '志'를 언급한 유협의 의도와 이와 관련된 '淸峻'이라는 풍격의 함의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하였다.
연구 결과 '志'는 곧 두 글자를 합친 '情志' 즉, 개인의 감정과 의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淸峻'은 '맑고 밝다[淸明]', '맑고 깨끗하다[淸亮]', '맑고 고결하다[淸高]', '맑고 산뜻하다[淸新]' 등 여러 의미로 생각할 수 있으며, 특히 “意氣駿爽, 則文風淸.”과 관련하여서는 '명백하다[淸晳]'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또한 '峻'에 대해서는 원의가 '높다[高]'인데, 문장의 풍격과 관련지어 文辭의 內質美를 강조한 것으로, 힘이 있고 예리하며 냉정하고 신랄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志'에 대하여 깊은 의미를 두어, “嵇志淸峻”을 “혜강의 작품이 淸峻한 情志를 담고 있다”라고 번역하였다. 따라서 '淸'의 의미는 종영이 託喩 기법으로 본 '淸遠'보다는 인간의 품격으로 본 '淸高'함이 더 적절하며, '峻'의 의미는 '峻切' 혹은 '峻烈'로 보았다. 또한 풍격으로서의 '淸峻'은 맑고 고결하며[淸高] 준엄하고 격렬한[峻烈] 격조를 형상화하여 선명한 意象과 고아한 境界를 이룬 것이라 볼 수 있다.


Liu Xie(劉勰)'s “Ji Zhi Qing Jun(嵇志淸峻)” has produced various interpretations so far and also provided a lot of controversy. Accurate recognition of “Ji Zhi Qing Jun(嵇志淸峻)” was a prerequisite for studying the style of Ji Kang(嵇康)'s poetry. Thus, this paper investigated the implications of 'Zhi(志)' and 'Qing Jun(淸峻)'. In addition, the existing claims and theories were presented to comprehensively judge Liu Xie(劉勰)'s intention of referring to 'Zhi(志)' and the implication of the related style of 'Qing Jun(淸峻)'.
As a result of the research, 'Zhi(志)' can be said to include both the letter 'Qing Zhi(情志)', that is, the individual's feelings and will. And 'Qing Jun(淸峻)' can be interpreted in various meanings. It is more appropriate that the meaning of 'Qing(淸)' is 'Qinggao(淸高)' as the quality of human rather than 'Qingyua(淸遠)' as seen in Zhong Rong(鍾嶸)'s metaphor technique, and 'Jun(峻)' means 'Junqie(峻切)' or 'Junlie(峻烈)'. Additionally, 'Qing Jun(淸峻)' as a style can be regarded as a vivid significance and a classical artistic conception in the form of clear and noble[淸高], rigorous and intense[峻烈] 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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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0년 이후 중국학계의 조선과 여진 관계 연구 동향

저자 : 박정민 ( Park Jungmi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5-76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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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0년 이후 중국 학계의 조선과 여진 관계 연구의 동향을 분석한 것이다. 변방의 소수민족으로 명과 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여진이 굴기하여 대제국까지 건설한 것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따라서 일찍부터 역사가들은 후금과 후금 이전 여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동북공정을 실시한 이후 중국의 역사 인식 등은 명대 여진 관계에도 투영되어 미묘하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중국의 조선과 여진 연구의 경향을 살펴보면 동북삼성의 연구자, 특히 길림성 출신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북공정 등의 영향으로 대다수 연구는 統一的多民族國家論에 기반하여 여진을 명에 소속된 세력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신진 연구자가 배출되며 기존 관계사에 집중되었던 연구가 영토, 자료, 인물, 무역 등 다양한 형태로 지평이 확장되었다.
아직 한국과 중국 학계 간의 이해관계 등에 따라 조선과 여진의 연구에 대한 이해의 폭과 시각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신진 연구자들이 양측의 자료도 이용하고, 양자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향 후 양국 간의 역사적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활발한 교류를 통해 양국의 연구자들을 역사 교류의 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


This article analyzed the outcomes of research on Joseon and Jurchen by Chinese academics since 2000. The rise of Jurchen - an ethnic minority from a remote region formerly under the influence of Ming Dynasty and Joseon - and subsequent establishment of a great empire is an interesting topic. Historians have shown interest in Later Jin Dynasty and Jurchen before Later Jin Dynasty, and have conducted research from various angles. However, historical perception in China shifted slightly since the Northeast Asia Project, and the change was projected on the Jurchen relationship during Ming Dynasty.
Research trends on Joseon and Jurchen in China show that they have been led by historians from the three Northeast provinces, particularly Jilin Province. And, influenced by the Northeast Asia Project, most studies regard Jurchen as subjugated to Ming Dynasty, based on the theory of unified multiracial nation. However, as new researchers emerge recently, the scope of research has expanded from a previous focus on the national relationship to various areas including territories, historical records, historical figures, and trades.
Due to conflicts of interest between Korean and Chinese academics, there is a wide discrepancy in research on Joseon and Jurchen in terms of the breadth of understanding and perspectives. However, if younger generation of researchers from Korea and China are willing to use the other's materials and understand the other's positions, it would be possible to narrow the chasm. To this end, broader exchanges need to be m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to promote historical exch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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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항 후 지방 전통 교육 체제의 변화 연구

저자 : 김태근 ( Kim Taekeu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7-98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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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직후인 1876년부터 1894년에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개편되기까지 지방의 전통교육은 몇 차례 정비 과정을 거치며 변화되어 갔다.
조선 후기 개항을 전후하여 서구 문물이 전래되며 상대적으로 전통교육의 위상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흥선대원군 집권기 조선은 서원을 정리하며 향교와 양사재로 대표되는 지방 관학 기관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개항 후에는 과거제의 폐단을 절감하면서 '鄕貢保擧法'을 통해 지역의 인재 선발을 시도하였다. 또 '鄕學條例'를 통해 향촌의 리, 면, 군단위로 학교를 설립하여 이를 계열화하여 교육하고 여기서 양성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규정을 정하였다.
함경도 덕원부 원산의 교영재는 전통적 교육 과정에 현실에 필요한 시무 교육을 실시하여 개량된 형태로 나타난 전통적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또 함경도 지방 과거시험 초시를 위한 교육과 시험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근대학교라기 보다는 조선 후기에 전국 각지에 향교에 부속되어 설립된 養士齋의 일종으로 원산항이 개항되어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조선정부는 아울러 전통교육제도에 근간하여 각 지역의 교육기관들을 계열화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역적·신분적인 차별을 해소하여 인재를 선발하려 하였다. '新設學校節目' 체제는 전통교육제도를 講學을 중심으로 書堂- 面學- 官學院- 營學院- 京學院으로 계열적 체계를 갖춰 정비하는 것이었다.
1893년에 실시한 '太學規制'와 儒生 月課 및 鄕貢保擧法에 의한 등용은 지방의 里에서 面으로 다시 邑으로 다시 觀察使로 이어지며 지방관이 考試하고 우등자를 태학(성균관)에 추천하였기 때문에 '新設學校節目' 체제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
1894년 과거제가 폐지되어 더 이상 지방의 전통교육을 통해 관료 배출이 어려워지며 지방의 교육 체제와 내용에 대한 변화를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From 1876, just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until 1894, when the past was abolished by the reform of the Gap-O, the nature of local traditional education changed, the traditional education of the province went through several maintenance courses.
After the opening of the late Joseon Dynasty, western cultures were introduced and the status of traditional education began to weaken relatively. Heungseon Daewon-gun, Chosun, organized the vows and tried to strengthen the status of the local government agencies represented by the two companies. After opening the port, we tried to select local talent through 'New Rules on government service appointment(鄕貢保擧法)' while reducing the abolition of the past. In addition, through the 'Rules for Country Districts Education(鄕學條例)', the school was established on the Village, Community, County of the local village, and the regulations were set up to educate and educate the students.
Wonsan Community School(敎英齋(원산학사)) of Wonsan in Deokwon-County, Hamgyeong Province are traditional educational institutions that have been improved by carrying out practical training necessary for the reality in the traditional education process. In addition, education and examinations were conducted for the first time in the past examinations of Hamgyeong province.
Therefore, it can be seen as a kind of 'Community School(養士齋)' establish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rather than a modern school, attached to the religions in various parts of the County School(鄕校).
The Chosun government also consolidated educational institutions in each region based on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and tried to select talented people by eliminating regional and identifiable discrimination. The 'Rules on establishment of school(新設學校節目)' system was to maintain the traditional education system with a series of schools(Village School(里塾), Community School(面學), County School(官學院),Provincial School(營學院),Capital School(京學院)), mainly lectures. The 'Rules on Grand School(太學規制)' and 'New Rules on government service appointment(鄕貢保擧法), Student of Confucianism's Monthly Exam(儒生月課), which was carried out in 1893, can be regarded as a modification of the 'Rules on establishment of school(新設學校節目)' system because it led to the governor again from the village to the county, and the provincial government evaluated the excellent person and recommended the excellent person to Grand School(태학). In 1894, the government service appointment system(科擧制度) was abolished, making it difficult to discharge bureaucrats through traditional education in the provinces, and it was forced to seek changes in the local education system and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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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10년대 후반 여준(呂準)의 활동을 통해 본 부민단과 신흥무관학교 측의 동향

저자 : 박성순 ( Park Sungsoon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1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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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부민단이 조직되는 1916년부터 한족회가 조직되는 1919년 5월 직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그동안 각종 자료나 연구에서 한족회 및 서로군정서 설립 이후의 사실들은 잘 규명되어 왔지만, 1916년부터 1919년 사이의 시기는 부민단이나 신흥무관학교와 관련된 활동내용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활동내용이 서간도 독립운동의 일관된 지속성과 그 외연을 살펴보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검토하였다.
부민단은 경학사를 이은 민단조직이었지만, 한인동포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을 뿐만 아니라 결사대를 조직하여 무장행동을 시도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1918년 4월 길림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망라된 東省韓族生計會가 발족하였다. 생계회의 초대회장은 신흥학교 교장과 부민단 교육회장을 역임한 呂準이었다.
생계회장 여준은 1919년 3월에 군정사를 조직하여 단장이 되었다. 그해 10월 군정사 밑에 급진단이라는 비밀무장결사를 조직하고 역시 단장에 추대되었다. 급진단은 길림에 사무소를 두고, 하얼빈·니콜리스크 등지에서 무기를 수입하고 병사를 모아 국내 진공계획을 수립하였다. 국내 진공계획은 재외 독립운동계 전반이 연관된 연합작전의 성격을 띠었다.
부민단에서 한족회로 이어지는 1910년대 후반의 시기는 서간도 독립운동의 정체기가 아니라, 생계회를 이용해서 만주 이주 한인의 자생책 마련과 국권회복의 방책을 실현하던 시기, 급진단과 결사대를 이용하여 무기를 마련하고 국내 진공작전을 도모하던 도전과 모색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노력의 효과는 잠시 후 만주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연합작전 속에서 전개된 청산리대첩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This paper covered over from the period of 1916 at which Pumindan was organized through around after May, 1919 at which Hanjokhoe was organized. Because until now, concrete activities in this period became nearly unknown in different to activities after organization of Hanjokhoe and the Western Road Military Headquarter. Nevertheless the concrete activities in this period are very important to confirm the consistent persistence and extension of independence movement in Manchuria, so this paper scrutinized the concrete activities in this period.
Pumindan was a settlement corporation which succeeded in Kyeonghaksa tried militarized struggles against Japan in addition to promote the livelihood of Korean in Manchuria. In the result, the Society for Korean Livelihood in Manchuria was organized in April, 1918 in Jilin, Manchuria. The first chairman of the Society was Yeo Jun who served as a principal of Sinheung military school and a chairman of the Educational Society of Pumindan.
Yeo Jun, the chairman of the Society for Korean Livelihood in Manchuria made up Gunjeongsa together with other independence activists in March, 1919 and became the head of Gunjeongsa. And in October of the year, he also organized Keupjindan, secret military force and became the head of Keupjindan. There was the headquarter of Keupjindan in Jilin city and made plans of advancing operations into Korean Peninsula while importing weapons and recruiting soldiers. Advancing operations into Korean Peninsula had a character of combined operations of independence forces of the outsides.
The period of the late 1910s at which Hanjokhoe succeeded in Pumindan was the period of challenge and grope for Korean livelihood by the Society for Korean Livelihood in Manchuria and advancing operations into Korean Peninsula by Korean special forces, not the period of stagnation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refore the effects of efforts came true in the sweeping victory of Cheongsani by combined operations of independence forces in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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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육례절차의 儀器 陳設과 시간 질서

저자 : 지현주 ( Ji Hyunjoo )

발행기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간행물 : 동양학 74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9-136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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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士昏禮」의 육례절차에서 의기 진설을 시간 질서와의 관련성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曆象授時圖」에서 일월성신의 운행을 본뜬 관점으로 술잔의 角柶 진설 변화를 시간에 따라 분석하였다.
본고가 혼례의식에서 천문 시각에 주목한 까닭은 사혼례의 육례절차를 음양론 이전의 역상을 본뜬 관점에서 검토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육경에서 『尙書』의 경전을 보완한 『六經圖』의 「역상수시도」를 통해 일월성신을 관측하여 수시한 시공간적 질서를 분석하였다. 四時의 중월을 기준으로 사방위의 子午卯酉를 정하고, 일월성신이 모두 바른 자리에 위치하는 때는 중춘에 혼효시 남중하는 중성을 관측한 시각으로 파악되었다.
육례절차에서 문명 이후 賓과 '見舅姑' 이후 新婦에게 행해진 두 醴禮는 종합하여 北斗座의 建으로 이용되는 시각과 관련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각사의 葉은 북두의 魁에, 각사의 枋은 북두의 杓에, 술잔에 세우는 建柶는 북두의 衡에 각각 대응되었다. 또한 각사의 앞을 남쪽으로 향한 것은 남중하는 중성을 관측하는 방향을 본뜬 것이었다.
예례에서 찬자가 처음에 두었던 角柶의 방향은 예빈과 예부의 경우가 서로 달랐는데 예빈에서는 각사의 葉을, 예부에서는 각사의 枋을 먼저 놓고 예례가 시작되었다. 이후 각사로 제사를 지낸 후 술잔 안에 각사를 꽂는 것으로 의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사기』 「천관서」에서 북두좌가 사시를 바르게 세운다고 한 것과 관련지어 검토되었다. 각사를 북두좌에 배정하니 각사의 葉은 魁에, 그 다음 각사의 枋은 杓에, 마지막으로 각사를 꽂게 하니 북두의 衡에 해당되었다.
혼효 이후 예주로 제사지내고 의식을 완성한 야반은 고대 밤 시간을 한정시킨 更點法에서 일입과 일출의 가운데 위치하는 시점을 본뜬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술잔 위 각사의 엽과 방은 평단과 혼시를, 술잔 안에 각사를 꽂는 것은 형을 건으로 이용한 야반을 본뜬 것이었다. 따라서 각사의 진설 변화는 북두좌의 건이 이용되는 시각에 (하루 동안) 월건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뜬 것이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otations of the ritual tools and Time order in the six-rituals for “Yi Li Shihunli”. For this Purpose, the study is focused on an imitated point of view, running the sun, the moon, and the stars, the constellations in the “曆象授時圖”.
Up to now, even though Shihunli has been generally interpreted as yinyang theory by “Yi Li interpreter, this study paid attention to astronomical time in the wedding ceremony. And then analyzed a kinds of the ritual tool in the ceremony process. Finally it has been proved what the astronomical time is inherent in wedding ceremony process. There were the two kinds of ceremonies be taken for 賓 after the '問名' among the six-rituals process and the bride after '見舅姑' ceremony. I was found those ceremonies related to the constellation of the Big Dipper that consists of 魁 belongs to head has 3 stars, 杓 seems to it's handle has 3stars, and 衡 is located the center of it has a star. The ritual tools are a cup and a spoon at those ceremonies, so the direction of the spoon was applied to each time at which 3 times correspond to 3 parts of the constellation of the Big Dipper. And also two kinds of spoons directions are heading South.
It is confirmed to imitate that the view point of the 曆象授時 is not only ritual tool but also who host stands for the northwest. That northwest is imitated the '建' of the Big Dipper, so it makes sure of being a model where is forward 卯 in the middle of the spring as called Jungchun(仲春). The direction of the cup which the helper first put was different each other where were placed first of '醴賓' and '醴婦'. After the ceremony was held after each ceremony, it was held at the end of ceremony which the putting the spoon was conducted in relation to '衡' of the Big Dipper.
The time used by '魁, 杓, 衡' of the Big Dipper were consistent with the time by used dawn, sunset, and midnight during the day. After completing the ceremony, and it was based on the viewpoint that is located at the 5 points in '更點法'(a time scale) that limited the ancient night time. For this reason, the head and handle of the spoon were modeled on the Big Dipper. As a result, the direction of the spoon in the two kinds of ceremonies were mean as a time that mimics dawn, sunset and midnight a day.
In sum, the change of each spoon's ceremonies in the process of 醴禮 was modeled on the '魁, 杓, 衡' of the Big Dipper that directed to a one in the 12 Months at the same time. So the change of each spoon's direction was based on the direction of the '月建'(month determinant) to the 3 times a day whenever the constellation of big Digger was used as '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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