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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연구 update

The Society for Korean Language & Literary Research

  •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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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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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1호(1973)~47권3호(2019) |수록논문 수 : 2,900
어문연구
47권3호(2019년 09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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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종결형(終結形)의 변화(變化)와 근대적(近代的) 문체(文體)

저자 : 이지영(李知英) ( Lee Ji-young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27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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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세기초에 나타난 근대적 문체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종결형의 변화를 논의 하였다. 특히 한국어학의 입장에서 그간의 한국문학 및 문체론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문체론의 연구에서 다양한 분야의 논리와 관점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본고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라'와 '-다'는 이형태(異形態) 관계인 형태들로서 문장 종결이라는 동일 기능을 가진다. 따라서 이들 형태의 의미·기능이 달라서 전근대적 문체의 특징과 근대적 문체의 특징을 각각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소위 '-라'체와 '-다'체로 언급되는 문체 유형은 이질적인 특징을 가지는 종결형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종결형의 의미·기능에 대한 엄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적 문체 유형이 논의되어야 한다. 셋째, '-더라'형에서 '-엇다'형으로의 교체는 근대국어 시기의 시제 체계 변화에서 촉발된 '-더-'의 기능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이에 20세기초의 서사문이 추구하던 새로운 서술 방식에 '-더라'는 더 이상 적절한 종결형이 될 수 없었고 대신 '-엇다'가 선택되었다.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changes of sentence-final forms in relation of modern writing style of Korean narratives in the early 20th century. We reviewed critically the various arguments of Korean literature and Korean stylistics in terms of Korean linguistics, and emphasized the need for consideration and understanding of different fields of study, for example, linguistics, literature, stylistics in the study of modern writing style of Korean narratives in the early 20th century. The results of this paper follows: First, sentence-final form '-ra' is the allomorph of '-da'. So change of writing style isn't oriented to the semantic-functional characteristics of these forms. Second, types of writing style, so-called '-ra' type and '-da' type include different semantic-functional sentence-final forms, and can not be the representatives of modern writing style. Third, the change of sentence-final form '-deora' to '-eossda' in narratives is due to the semantic-functional change of '-deo-' triggered by the change of past tense system in Modern Korean. So '-eossda' was chosen because it is the best sentence-final form for new writing style of the early 20th century, not '-de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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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근대화(近代化) 과정(過程)에서의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수용(受容)과 그 양상(樣相)

저자 : 조재형(趙宰亨) ( Cho Chae-hyung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0-62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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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우리 사회가 겪었던 근대화 과정에서의 '言文一致'의 수용과 그 양상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언문일치'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과 그 개념을 洞視해야 한다는 점과 당시 우리 사회에서 '언문일치'를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모습으로 구현하고자 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이런 문제점들을 논의하기 위해 2장에서는 서구 사회와 일본의 '언문일치'의 형성 과정과 그 개념에 대해 언급하였다. 3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언문일치'의 수용 과정을 살펴보면서 서구 사회와 일본의 언문일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제시하였다. 4장에서는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표기체들을 비교하면서, 이런 표기체들이 갑자기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과 당대의 지식인들이 언문일치를 추구한 이유에 대해 언급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acceptance of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and its aspects in the modernization process that our society has experienced. To do this, we raised the problem of forming the concept of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and understanding the concept. Also, we raised the question of how to understand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in our society and how it was intended to be implemented at that time. In order to discuss these issues, we discusses the process and the concept of the formation of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in Western society and Japan in Chapter 2. Furthermore, we examined the process of acquiring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in our society, and suggested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Western society and Japanese in Chapter 3. Also, in comparing the various writing methods seen in our modernization process, we mentioned that these various writing methods were not used suddenly and why the intellectuals of the time pursued 'the unity of speech and writing' in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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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정(假定)과 양보(讓步)를 나타내는 보조용언(補助用言) '보다' 구성(構成)에 대한 연구(硏究) - '-어 봐(라), -어 봤자' 중심으로

저자 : 이금희(李錦姬) ( Lee Keum-hee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3-90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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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보조용언 구성 '-어 보다'에서 발달하여 '가정'과 '양보'의 의미를 나타내는 연결 표현 '-어 봐라'와 '-어 봤자'에 대해 살펴보았다. '-어 봐라'와 '-어 봤자'가 '가정'과 '양보'의 조건절로 쓰이게 된 것은 명령과 청유의 결과 내용이 후행하면서 선행문의 내용을 조건절로 해석하는 문맥적 재해석이라는 기제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언중들의 이런 문맥적 재해석이 관습화되면서 '-어 봐라, -어 봤자'에 '가정'과 '양보'의 새로운 의미가 부여돼 명령형어미 '-어라'와 청유형어미 '-자'의 인칭 제약과 서술어 제약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어 봐라'와 '-어 봤자'는 기존의 가정과 양보의 연결어미와 달리 화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조건을 나타내기 때문에 객관적인 상황이나 공식적인상황에 쓰이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명령문이나 청유문이 후행하는 것이 어렵다. 이는 '-어 봐라, -어 봤자'가 화자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조건을 제시하는 표현으로 후행문은 대체로 화자의 단정적인 견해가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This paper examined about the connective expressions '-eo pwara(-어 봐라)' and '-eo pwassja(-어 봤자)' stand for the meaning of the assumptions and concessions, which developed from the auxiliary verb form '-eo poda(-어 보다)'. '-Eo pwara(-어 봐라)' and '-eo pwassja(-어 봤자)' have been grammaticalized into connective expressions of assumptions and concessions from auxiliary verb form. In other words, they have been used for conditional clauses of assumptions and concessions, not for the meaning of attempt and experience that '-eo poda(-어 보다)' had. This change was due to context-induced reinterpretation.
'-Eo pwara(-어 봐라)' and '-eo pwassja(-어 봤자)' don't use in objective or official situations. Because they present the condition based on the subjective decision of the speaker. This i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connective ending of assumptions '-eumyeon(으면)', '-damyeon(-다면)' and connective ending of concessions '-eodo(-어도)', '-deorado(-더라도)'.
Also, These expressions are not followed by a imperative sentence or a propositive sentence. This is because '-eo pwara(-어 봐라)' and '-eo pwassja(- 어 봤자)' have condition with the subjective conclusion of the spe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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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근대계몽기(近代啓蒙期) '국문론(國文論)'의 양상(樣相)과 새로운 주체(主體) 형성(形成)의 문제(問題)에 대(對)하여

저자 : 김병문(金炳文) ( Kim Byung-moon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1-11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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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계몽기라는 1890년대에서 1910년까지의 시기는 여러 신문과 잡지를 통해 '국문'과 관련된 논의들이 백출하던 시기이다. 우선 어떤 문자를 쓸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는 곧 국문과 한문의 우열을 가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것은 국문을 어떻게 쓰는 것이 옳은가에 관한 논의였다. 그런데 1905년이 넘어가면 이러한 문자 위주의 논의를 넘어서 문장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이 나타난다. 즉 문제는 문자가 아니라 문장이라는 것,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의 문장을 적으면 그만이라는 주장이다. 한자 사용에 날카롭게 대립한 문자 중심의 논의가 중세적 세계와 단절한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인이라는 주체를 상정했다면, 결국 우리말 통사구조에 입각한 글쓰기를 주장한 문장 차원의 논의는 한국어 문법을 공유한 균질적 주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어'라는 용어가 일반화하는 시점이 1905년 이후라는 점도 시사적인 면이 있다.


The period of modern enlightenment from the 1890s to 1910 was characterized by the appearance of numerous discussions related to the 'national letter' through various newspapers and magazines. The foremost issue was which letter should be used, and it was nothing but determining priorities between Korean letter and Chinese letter, and the next issue was the correct usage of the Korean letter. Then, after 1905, articles began to bring up sentence-level problems beyond the discussions which had focused on letters. They argued that it was sentence that mattered instead of letter and it was sufficient to write our sentences even if we used Chinese letters. It can be interpreted that the sentence-level discussion that claimed writing based on the syntactic structure of the Korean language gave a thought to a homogeneous principal agent sharing Korean grammar while the letter-centered discussion which sharply confronted use of Chinese letters presumed modern and rational living persons severed from the medieval world.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term 'national language' was generally used after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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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표현론적(表現論的) 접근(接近)과 단어형성론(單語形成論)

저자 : 정한데로(丁한데로) ( Jeong Handero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7-144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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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언어 → 개념'의 '해석론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개념 → 언어'의 '표현론적 접근'이다. 그간의 많은 연구가 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면, 최근에는 후자의 관점에서도 단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표현론적 접근의 단어 연구에서는 명명 과제 또는 말 다듬기 자료를 활용하여 화자의 임시어를 관찰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확인된다. 이 글은 표현론적 접근의 단어형성론과 관련한 세 가지 물음의 답을 모색하면서, 표현론적 접근의 임시어 연구가 지닌 의의를 강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한때 '사전등재어'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단어 연구가 '신어'로 연구 대상을 확장하였듯이, 앞으로는 '임시어'도 단어형성론의 주요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There are two ways for word formation study. One is semasiological approach study which is 'language → concept' direction, and the other one is onomasiological approach study which is 'concept → language' direction. Based on former approach, a number of word formation research have been examined so far, while the latter approach begin in earnest in Korean linguistics recently. In onomasiological approach study, nonce words from data of naming task and word refining are very important sources for research. There are, however, some critical opinions. This paper aims to examine each answer for three questions, and to emphasize the meaning of nonce words study in onomasiological approach. A number of word study had been based on only words of dictionary began to expand research objects to nelogisms. Likewise, nonce words can be major research objects of word formation as well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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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세국어(中世國語) '-엣-'의 변화(變化) 연구(硏究) - '-엣/에시->-엇/어시-'의 /y/ 탈락(脫落) 현상(現像)을 중심(中心)으로 -

저자 : 박정순(朴正淳) ( Park Jung-soon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45-17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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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세국어의 '-엣/에시->-엇/어시-' 변화에 나타나는 활음 /y/ 탈락 현상에 대한 고찰을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이를 위하여 본고는 '-에시->-어시-'의 변화를 '모음어미 결합형'에서 나타나는 변화, '-엣->-엇-'을 '자음 어미 결합형'에서 나타나는 변화로 구분하여 관찰하였다. 본고는 '모음 어미 결합형'인 '-에시-'의 /y/ 탈락과 '자음 어미 결합형'인 '-엣-'의 /y/ 탈락이 각기 다른 기제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리라는 추정 하에 논의를 진행하였다.
'모음 어미 결합형'의 경우 음성적 요인에 의하여 /y/ 탈락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원인은 '하향성 활음 /y/+구개 자음'의 연쇄에 따른 조음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y/ 탈락 현상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형태소 내부'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자음 어미 결합형'의 경우 '모음 어미 결합형'인 '-에시->-어시-'의 변화에 이끌린 유추적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모음 어미 결합형'의 /y/ 탈락으로 인하여 발생한 '-엣/어시-'의 교체에 대한 어휘부의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자음어미 결합형'인 '-엣-'의 /y/를 탈락시켜 '-엇/어시-'로 교체를 단순화시켜 그러한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논증하였다.


This study was drawn up to investigate the phenomenon of the deletion of glide /y/ occurring in the change of '-엣/에시->-엇/어시-' in the Middle Korean. For this purpose, this study divided '-에시->-어시-' as a change occurring in 'inserted vowel ending type' and '-엣->-엇-' as a change occurring in 'inserted consonant ending type' to observed them. As a result of an examination of the patterns of change of '-엣-' in the mid-15th century, it was found that the change of 'inserted vowel ending type' '-에시->-어시-' was almost completed in the mid-15th century and that the change of 'inserted consonant ending type' '-엣->-엇-' was just begun. Thus, this study proceeded with discussions under the assumption that the deletion of /y/ in 'inserted vowel ending type' '-에시-' and the deletion of /y/ in 'inserted consonant ending type' '-엣-' were made by different mechanisms.
It was noted that the deletion of /y/ occurred by a phonetic factor in 'inserted vowel ending type'.' The reason was to resolve the difficulty of articulation according to a series of 'off-glide /y/+palatal consonant.' This phenomenon of the deletion of /y/ was not essential, but it had a great impact on the 'inside of morpheme.' It was noted that in 'inserted consonant ending type,' an analogical change occurred, drawn by the change of 'inserted vowel ending type' '-에시->-어시-.' This study demonstrated that there was an effort to reduce the burden, simplifying the substitution to '-엇/어시-' by dropping out /y/ from 'inserted consonant ending type' '-엣-' with the aggravation of the burden of the lexicon for the substitution of '-엣/어시-' occurring due to the 'inserted vowel ending type' deletion of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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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19년 심하전역(深河戰役)의 미결 지리 고증

저자 : 이승수(李勝洙) ( Lee Seang-su ) , 김일환(金一煥) ( Kim Il-hwan ) , 신춘호(申春浩) ( Shin Chun-ho ) , 임문성(林文星) ( Lin Wenxing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1-201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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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619년 3월에 있었던 심하전역(深河戰役)의 현장 중 일부 구간에 대한 정밀 지리 고증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이 구간은 조선군이 우모령(牛毛嶺) 행군을 시작한 '平頂山'부터 조선군포로가 끌려가 머문 '奴城(赫圖阿拉城) 밖 10리 지점'까지이다. 2월 28일에서 3월 6일에 이르는 8일 동안 이 지리공간에서는, 오늘날 돌아보아도 가슴 아픈, 그리고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도 지나치지 않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비극의 장소를 정확하게 비정함으로써, 희미해진 역사를 환기하고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 본고의 취지이다. 문헌 검토와 현지 조사에 현장 탐문을 더하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深河가 강이 아닌 마을의 이름일 가능성을 확인했다. 8,9천 명의 조선군이 전사하고, 나머지 4,5천 군사들이 피신했던 장소는 釜山과 그 아래 벌판으로 비정했다. 조선군이 포로가 되어 끌려간 길을 처음으로 구체적인 논거와 함께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전투로 발생한 고통과 비애는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이 전투를 외면·망각했던 권력의 무능과 위선은 여전하다. 고통과 비애의 말을 들어주고, 무능과 위선을 직시하는 것, 이것이 본고를 작성한 이유이다.


This paper summarized the detailed historical research results on the geographic data of a certain section in the battlefield of Sarhu broke out in March 1619. The relevant section is from 'Pingdingshan Mountain' from which 13,000 Joseon soldiers started marching in Niumaoling pass to about 40 km out of Hetualacheng fortress where about 4,000 to 5,000 Joseon soldiers who survived in the battle stayed as prisoners. In this geographic space did the tragic event occur for 8 days from Feb. 28 to Mar. 6, which was not too much to take a lesson for a long time and was very piercing when it was reviewed even today, 400 years from that time. However, the event was nearly forgotten by incompetent power and even moral meaning as well as tremendous pains were lost. This paper aims to remind the tarnishing history and furthermore provide the opportunity to ruminate the history by accurately criticizing and correcting the place of such tragedy. Through the literature review and field investigation as well as field survey, several new information was acquired. In spite of field trips twice, the old Niumaoling pass couldn't be perfectly reconfigured. However, this paper made definite progress for thorough reconfiguration through the further study. The theory of Wangcongan(王從安) was applied to several spots including Niumaoling Pass. It was identified that 'Shimha' would be the village name not the river through the records in documents. It was newly identified that 8,000 to 9,000 Joseon soldiers died and remaining 4,000 to 5,000 Joseon soldiers escaped to Pushan Mountain and the field near Pushan Mountain. Such result is the most important achievement of this paper. Moreover, the detailed ground for argument and opinions on prisoners' path of movement which was not discussed in detail up to now were presented for the first time. Pain and grief generated by this battle are still talking to us up to now, even 400 years since then. Furthermore, the incompetence and hypocrisy of the power who forgot and ignored this battle are still tormenting people as they were. This paper was prepared to listen to what pain and grief wanted to say and to face up to incompetency and hypocr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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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景德王) 충담사(忠談師)' 조(條)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의 의미(意味) 재고(再考)

저자 : 황병익(黃柄翊) ( Hwang Byeong-ik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3-241 (3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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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논증과 해독 결과에 따라 1~4구는 敍景 표현에 숭상의 마음을 담았고, 5~8구는 수풀과 자갈 벌에서의 회상과 추종심리를 담았다. 9~10구는 잣가지에 견주어 숭고한 대상을 명료히 했다. “아름다운 사내를 (화랑으로) 뽑아, 도의를 연마하게 하고, 그 무리 중에 바르고 바르지 않는 이를 살핀 후, 착한 인재를 가리어 조정에 천거”하던 郞僧(화랑 소속의 승려) '충담사'가 기파랑을 찬양하여 당시 미륵으로 추앙하던 화랑의 본보기를 만들어 하나의 지향점을 제시함으로써 화랑집단의 결집을 강화시킴은 물론이고, 나아가 전제왕권과 귀족들의 유대 강화를 통하여 정치사회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을 가졌다. 경덕왕은 이 작품이 표현한 “기파랑이 지향하던 이상 세계가 높음(其意甚高)”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왕과 충담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음을 알 수 있다.


According to the results of the arguments and interpretation of this paper, the translation of < Changiparangga, Ode to Giparang > is as follows. As the rough water becomes calm, the moon appears. Chasing and floating after the white clouds, (it shines) on the water dividing the sandbank! The forest and the Sumonae[Ipcheon, 卄川] gravel field (are the places) where Giparang(耆婆郞)'s image is still vivid. There, we shall follow his will and ideals. Ah! (uncorrupt) Judgment(判定), you are the branch of the towering nut pine that even snow fall can not damage,
Here, the “forest” is a training space for the Hwarang(flower knights, an elite warrior group of male youth), and “Hwapan(花判)” is an abbreviation for “Ohwapansa(五花判事)” which means “making good judgement about beauty and ugliness(beauty and ugliness, good and bad, right and wrong)”. When I refine the 9~10 lines, they can be interpreted as follows. “Just as the branch of a towering nut pine is not damaged when snow falls, Giparang, you are a man of great virtue who made good judgement about right and wrong with integrity and unyielding principles.”
The 1~4 lines express the admiration for Giparang in the scenery descriptions(敍景), and the 5~8 lines describe the memories and reverence in the forest and the gravel field. The 9~10 lines compare him to the branch of a nut pine to show clearly how noble the subject is. Chungdam was a 'Buddhist monk belonging to the Hwarang organization'(郞僧), who was choosing beautiful boys(as Hwarang), training them in the principles of moral justice, finding the right ones in the group, and recommending the good talents to the royal court. "Monk Chungdam gave a direction, praising Giparang and making him as a model figure of the Hwarang who were worshiped as Maitreya. By doing that, he intended not only to strengthen the bonds within the Hwarang, but also to make the society politically stable by strengthening ties between the absolute authority of the king and the aristocrats. King Gyeongdeok already knew “how lofty Giparang's ideal world is”(其意甚高), what this song represents. It means that the king and Monk Chungdam thought a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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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60년대 수기(手記)와 민(民)/중(衆)

저자 : 박숙자(朴淑子) ( Park Suk-ja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43-269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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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手記'가 풍미하는 현상에 주목하며 이를 4.19 혁명으로 촉발된 공론장의 확대 과정이자 1970년대 '민중 수기'의 前史的 풍경으로 조망하고자 하였다. 4.19 혁명 이후 가난과 이산, 고학과 무학, 불구와 무직 등으로 실존적 위기를 경험한 이들의 수기가 붐을 이룬다. 이 고통의 재현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말해지는 과정은 개인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이는 해방 후 진행된 리터러시 교육의 확대와 4.19 혁명이 야기한 민주주의 경험을 통해 가능해진 결과이다. 이를 통해 그간 비가시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이 복수적 양태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수기 속에서 포착된 개인의 '고통'이 국가 내에 잠복해 있던 다양한 삶의 위기로 드러나면서 국가/국민의 경계가 재구성된다. 하지만 각각의 수기 속에 담지된 고통은 '고통의 언어'로 개발되지 못한 채 국가주의/자기계발로 분열, 봉합된다. 각각의 고통이 개별화되면서 고통의 보편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공론장을 구성해 가는 풍경은 1970년대 '민중' 표상의 前史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In this thesis, attention was given to the phenomenon that the 'memoir' was prevalent during the 1960s and it was viewed as a history of 'people-writings' in the 1970s as it was a process to expand the arena of public opinion that was triggered by the '4.19 Revolution'. After the '4.19 Revolution', there has been a boom of 'memoir' of people who experienced existential crises from poverty and separation, archaeology and ignorance, as well as disability and unemployment. Within these memoirs, the process of speaking the 'unspeakable pain' would be personal as well as political. This is attributable to the fact of the expansion of literacy education after the liberation and the experience of democracy triggered by the '4.19 Revolution'. Through the foregoing effort, the existences invisibly excluded emerged in multiple appearances as well as the pain of individual captured in the memoirs was displayed as various crises in lives as contained within the state and the boundary of state/people has been reconfigured. However, the pain contained in respective memoir was divided and sealed with nationalism / self-development without developed with the 'language of pain'.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the respective pain was individualized without gaining the generality of pain, but in spite of that,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venue for public discussions for "Sorrow Even Up in Heaven" was analyzed considering it as the pre-history of symbolism of 'people' in the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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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광수(李光洙)가 이보경(李寶鏡)이나 '외배'이던 시절 - 한국어(韓國語) 글쓰기의 한 기원에 대하여-

저자 : 임상석(林相錫) ( Lim Sang-seok )

발행기관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간행물 : 어문연구 47권 3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71-290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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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광수의 1908년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글들-이보경(李寶鏡)이나 외배의 이름으로 게재했던 문장들을 중심으로 한국 소설 및 한국어 글쓰기의 한 기원이 형성된 과정을 再構하려 했다. 10대 후반의 이광수는 한문전통을 수사법의 일부로 포함한 계몽기 국한문체를 연마하였으며 이 결과는 <태극학보>, <대한흥학보> 등의 일본유학생 잡지에 수록되었다. 이보경의 이름으로 게재된 이 국한문체 논설들은 계몽기 국한문체의 대표적 작가인 신채호의 그것과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어 그의 多重的 작문 수련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최남선의 新文館 창립으로 인해 한문전통에서 더 자유로운<少年>과 <靑春> 등의 지면이 제공되었으며, 이광수는 여기서 비로소 국문 위주로 자기 내면과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새로운 한국어 글쓰기를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소년>과 <청춘>의 작품들이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 『無情』으로 종합되었다. 그리고 『무정』의 성과가 「民族改造論」이라는 대안의 부재로 이어진 과정을 애국주의자를 자처한 이광수가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許生傳」을 재창작한 양상을 통해 논해 보았다.


This paper is the review of transitional Korean Writing from 1908 to 1910s, focusing on Yi Kwang-su's works, published under Yi Bo-kyeong or the pen name, a Sole Boat. From his late teens, as a result of practicing Korean-Chinese writing skills including Classical Chinese rhetorics, he can publish some articles in journals of Korean abroad students association in Japan such as Taegeukhakbo and Daehanheunghakbo, that have editing directions limited by Classical Chinese tradition. In these articles under his real name, Yi Bo-kyeong, he demonstrates rhetorics similar to Sin Chae-ho, the representative writer of Korean-Chinese mixed scripts in Enlightenment era. With the inauguration of Choe Nam-seon's Sinmungwan, the media, liberated from Classical-Chinese rhetorics, such as Sonyeon and Cheongchun are provided to Yi and he can exhibit new Korean writing showing vivid inner-self and trivial every day lives. His practice of new Korean writing in Sonyeon and Cheongchun is synthesized in Mujeong, the milestone of Korean literary history. However, the outcome of Mujeong instantly transforms into Minjokgaejoron's absence of alternatives and this paper attempts to offer the clue to this transformation through the review of re-writing Heosaengjeon, the significant Korean classic, which Yi should treasure as the self-proclaimed patr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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