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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HUMANITIES

  •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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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30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293
인문과학연구
30권0호(2020년 02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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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안 쉬퍼 감독의 영화 <빅토리아>(2015)는 독일 영화의 미학적 도전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140분간의 러닝타임을 단 하나의 쇼트로 완성해냄으로써 편집에 기초한 관습적인 영화미학에 도전한다. 독일 영화는 표현주의 시대부터 미학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영상언어를 창조해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대중성의 상실로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나긴 했어도 60년대 뉴 저먼 시네마 감독들 또한 형식 실험을 통해 영화의 예술성과 사회적 의미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독일 영화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결합하여 독일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영화 <빅토리아>는 이러한 독일 영화의 역사 위에서 있다.
<빅토리아>는 적은 예산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영화, 미학적 실험이 가능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선배 청년영화인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 정신과 저예산 영화의 조합이 성공하는 데에 디지털 기술이라는 현대적 기술이 토대가 되고 있다. 독일 영화의 미학적 도전이라는 전통은 영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시키는데 커다란 공적을 세웠으며, 그러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쉬퍼의 <빅토리아>의 제작과 성공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Sebastian Schipper's film, Victoria(2015), demonstrates the aesthetic challenge of German cinema. The film challenges conventional film aesthetics based on editing by completing a 140-minute running time in a single shot. German film has a history of creating a new visual language through aesthetic experiments from the expressionist era. Although lost in Hollywood films due to a loss of popularity, New German cinema directors in the sixties also showed how the artistic and social meanings of the film can be combined through formal experimentation. In modern times, German films have been making progress in producing German films by combining artistry with popularity. The film Victoria stands on the history of this German film.
Victoria succeeds the spirits of New German Cinema directors, who wanted to make their own movies and films that could be aesthetic experiments on a small budget. The modern technology of digital technology is the foundation for the success of this combination of experimental spirit and low-budget film. The tradition of the aesthetic challenge of German film has made great achievements in expanding the artistic possibilities of the film, and in the extension of its history, the production and success of Schipper's Victoria has important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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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음악이 하나의 예술작품과 문화상품으로 인식되어가는 구조와 과정을 헤겔의 음악미학과 아도르노의 음악사회학을 통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독일 고전주의 미학의 대표자인 헤겔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음악사회학의 대명사로 간주되는 아도르노의 음악관을 통하여 음악이 시대의 요청에 따라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헤겔의 음악미학과 아도르노의 음악사회학에 내재된 음악의 진리내용과 실천방법의 분석을 통하여, 오늘날의 음악적 패러다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This essay is an attempt to discuss the problem of the relation of art to philosophy in Hegel's Music Aesthetics. In his 「Lectures on the Aesthetics」 discusses Hegel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various types of art on the basis of his system of ideas metaphors.
In addition, this work attempts to examine and reinterpret Adorno's analyzes of music and society in his works on the basis of his critical examination of the Dialectic of Enlightenment. Adorno considers the social contents, functions, and contexts of music materials in relation to their functions as products of music. In terms of culture industry, music is a cultural product that pursues profit through socio-economic production and production relations.
The ideas in Hegel's music aesthetics and Adorno's sociology of music suggest that a new paradigm for contemporary times is needed to discuss contemporary art where the past paradigm is no longer valid. Adorno analyzes how musical materials and the contents of music relate to society. It also discusses the social mechanisms of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of musical compositions.
Hegel's and Adorno's ideas have implications for contemporary art, art management and art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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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반논문> 한대 공예품의 유익사자(有翼獅子) 도상을 통해 본 페르시아 미술의 동점

저자 : 이송란 ( Lee Songran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5-85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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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의 석암리(石巖里) 9호분의 동준(銅樽) 등을 비롯하여 기원전 1세기 한대 금속공예와 옥공예품 등의 공예품에는 매 또는 독수리의 날개를 단 사자, 즉 혼합동물인 유익사자(有翼獅子)라는 이색적인 모티프가 표현되어 주목된다. 사자는 제왕의 권위와 용맹을 상징하는 의미로 서아시아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제재이다. 아시리아의 사자 도상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근동의 최대 군주국으로 부상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로 이어졌다. 한대 구축된 실크로드 중 오아시스길과 바닷길을 한 로마와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교섭에만 집중이 되었고, 그간 페르시아 문화권과 한문화와의 교섭관계는 조명이 되지 못하였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유익사자 도상을 통해 한대 미술에 보이는 페르시아 미술의 수용과정을 밝혀 보았다. 특히 유익사자를 매개로 페르시아 문화권과의 관계를 살펴본 것은 혼합동물인 유익사자가 사카나 흉노의 금공이나 섬유공예에서 즐겨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페르시아 문화의 동점과정에 북방 유목민족의 역할이 있었다. 한의 공방에 페르시아 공예의 영향을 받은 사카계와 흉노계의 장인 편입된 과정을 살펴본 바 있다.
한대 미술에 수용된 유익사자는 중국인들의 사고체계에서 새롭게 인식되었다. 한대 무덤을 지키는 유익사자형 벽사는 묘주의 영혼이 仙界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한 존재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두려움의 대상인 악귀를 물리칠 수 있는 존재로 서역에서 온 사자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더욱이 이 사자에 날개를 더함으로서 실제 존재하는 동물에서 환상적인 신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서 격상되었을 뿐 아니라 사자에 달린 날개로서 묘주를 선계로 승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동물로 재탄생된 것이다. 유익사자가 본래 페르시아와 전혀 다른 개념인 벽사로 재탄생한 것은 동서교섭에 따른 새로운 문화변용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In craftwork like metal crafts and jade crafts during the Han Dynasty in the 1st Century B.C., including copper kegs in Ancient Tomb No. 9 in Seogam-ri, Lelang, an exotic motif of a lion with a hawk or eagle's wings, a mixed animal, Yuiksaja is expressed, which draws attention. The lion is a subject matter often used in West Asia, meaning the emperor's authority and courage. Assyrian lion iconography led to Achaemenid Persia that emerged as the largest monarchy in the ancient Near East in the 6th century B.C. Studies focused on the negotiations between Rome and Central Asia on the Oasis Road of the Silk Road established during the Han Dynasty and sea routes while no light has been shed on the relationship of the negotiation between the Persian cultural area with the Han culture.
Thus, this study discussed the process of accepting Persian art in art during the Han Dynasty through the iconography of the lion with wings. Especially, this study examined the relationship with the Persian cultural area with the medium of the lion with wings because a mixed animal, the lion with wings was often used in Saka or Xiongnu metalwork or textile craft. For this, northern nomadic tribes played a role in the process of the eastward spread of the Persian culture.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the process in which Saka and Xiongnu master craftsmen influenced by the Persian craft were incorporated into the workshops of Han.
The lion with wings accepted by art during the Han Dynasty was newly perceived in the way of thinking in the Chinese people. The lion with wings-type exorcism guarding the tombs during the Han Dynasty plays a role in eliminating the evil beings that disturb the soul of the tomb owners from entering the fairyland. The lion that came from the countries bordering on Western China became a being that could drive out an evil spirit, an object of fear. Moreover, by adding wings to the lion, it was upgraded to a being with the fantastic divine power from an animal existing in reality and was born again as an animal having the ability to ascend the owner of the tomb to ascend to the fairyland. The lion with wings was born again as exorcism, a totally different concept from Persia, and it is interesting that it is a new cultural transformation according to the negotiation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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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반논문> 덕성여자대학교와 덕성여자중고등학교 개교기념일 재검토

저자 : 한상권 ( Han Sang Kwon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87-127 (4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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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창학 100주년을 맞이하는 덕성학원에는 기념일이 5월 17일, 4월 19일, 10월 10일 셋있다.
1950년 5월 17일은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얼마 전까지 개교기념일로 기렸던 날이다. '덕성여대가 1950년 5월 17일 2년제 초급대학으로 개교하였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덕성여대는 2년제가 아니라 4년제 초급대학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덕성여대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신학기부터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하여, 1956년에 제1회 졸업생 25명을 배출하였다.
1921년 10월 10일은 현재 덕성여자중고등학교가 개교기념일로 기리는 날이다. 덕성여중고는 이 날을 근화여학교가 인가받은 날이라며 기리고 있다. 하지만 덕성의 역사에서 '근화'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23년 이후이다. 1923년 조선여자교육회 산하 부인야학강습소 이름을 근화 학원으로 처음 지었다. 사회교육기관인 근화학원이 정규 교육기관인 근화여학교로 승격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인 1925년이다. 근화여학교는 이 해 8월 29일 인가받았다.
1920년 4월 19일은 2004년부터 덕성학원이 창학기념일로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은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가 조선여자교육회를 조직하여 부인야학을 처음 시작한 날이다. 3·1운동정신을 계승한 조선여자교육회의 창립은 19세기 말 교육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1920년대 민족교육운동을 선도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2020년 창학 100주년을 맞이하여 덕성 역사의 정통성과 구성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기념일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덕성학원 산하 교육기관에서 각각 기리고 있는 기념일의 역사적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The Duksung Academy, which celebrates its 100th anniversary in 2020, has three anniversaries: May 17, April 19 and Oct. 10.
First of all, May 17 is the day the university celebrated its opening day. Duksung Women's University's anniversary has been known as May 17, 1950. However, it is not true that Duksung Women's University opened on May 17, 1950, as a two-year junior college. Second, April 19 is the day the Duksung Academy celebrates as its founding anniversary since 2004. Established on April 19, 1920 as the school's founding anniversary, it was the first time that women's night classes were started at the Joseon Women's Education Association's Women's Night School, founded by Cha Melissa, the founder of the Duksung Academy.
Third, October 10 is the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Duksung Girls' Middle and High School. Duksung Girls' High School celebrates this day as the day when Geunhwa Girls' High School was accredited in 1921. The truth, however, is that the principal took over the school from the U.S. military authorities in 1945.
Celebrated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foundation of the Duksung Academy in 2020, the anniversary needs to be unified into one. To do so, we have to change the anniversary of the opening of Duksung Girls' High School, which has been wrongly honored so far. “The beginning of middle and high schools should be seen as April 19, 1920,” said Duksung Girls' Middle School principal and president of the university's general association. By honoring the founding anniversary of the school on April 19, 1920, all educational institutions under the Duksung Academy need to redefine the meaning of celebrating the centennial of the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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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반논문> 재일 유학생 장학재단 자강회와 천도교

저자 : 배영미 ( Bae Youngmi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29-15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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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회는, '내선융화'가 맹위를 떨치던 때 발생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배경으로, 유학을 막 마친 도쿄의 천도교 조직 간부가 유학생, 특히 천도교계 고학생을 지원하여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24년 일본인 유지의 협력을 얻어 설립하여 운영한 장학재단이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재벌을 비롯한 정재계 다양한 분야의 대표격 인물들이 재정 기반을 받쳐주고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선발된 고학력 유학생들에게 1941년까지 안정적인 장학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다. 도쿄의 천도교 조직을 맡고 있던 조선인들에게는 일본인 유력자들과 함께 자강회를 세워 운영함으로써 압박과 감시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종교활동을 보장받고 활동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불교나 기독교의 경우, 일본의 같은 종교계가 총독부와 일본 당국의 힘을 빌어 '내선융화' 사업을 펼쳤다. 그렇지만 천도교는 조선의 독자적인 종교이고 민족운동의 중심세력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종교계를 통해 '융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총독부나 일본 당국에는 자강회를 통해 조선 통치에 유용한 엘리트 양성과 더불어 천도교에 대한 '융화'를 꾀하고 도쿄에서의 천도교 활동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섣불리 '융화'를 앞세우며 전면에 나섰다가 유학생들의 반발을 사는 것보다 '민간' 유력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편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이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유수의 기업과 재계 인사들은 기꺼이 자강회의 재정을 담당했다. 유학생들에게도 장학금과 일자리를 제공했던 자강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조선인 이사회가 유학생 입회와 장학생 선발의 1차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운영체계와 '내선융화' 및 '정부 관헌'과의 거리 또한 유리한 조건이었다. 특히 천도교계 또는 학업에 매진하려는 유학생에게는 더욱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이렇듯 '내선융화'가 맹위를 떨치던 때 발생한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배경으로, 3·1운동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천도교의 도쿄조직, 조선인 학살의 충격을 만회하고 보다 원활한 지배를 꾀했던 일본, 지원이 절실히 필요했던 유학생(고학생), 이 세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합치한 지점에서 자강회는 탄생했다. 그리고 삼자 간의 역학관계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1941년까지 활동을 이어갔다.


Jaganghoe is the Scholarship Foundation, founded by Cheondogyo organization executive in Tokyo, who just finished studying, with the cooperation of Japanese maintainers to support Korean students in Japan, especially Cheondogyo high school students during 1924~1941. The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was the massacre of Korean during the Great Kanto Earthquake that occurred when 'Japanese-Korean harmony' Slogan was prevailing. Representatives from various fields of finance and politics, such as Japan's leading conglomerates, were able to consistently provide scholarships to selected high-educated students by supporting the financial foundation as executives or support members. It is also characterized by the fact that most members of the Korean Board of Directors, who have the right to enroll international students, are either studying in Japan or graduates and active in Cheondogyo. In short, Jaganghoe have the same interests and mutual dynamics between the young people of Cheondo, the biggest driver of the March 1st Movement, Japan, who made up for the shock of the massacre of Koreans, and more smooth domination, and Korean students who needed support. It can be said that it was born and operated at a balanced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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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반논문>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의 사이 - 이쾌대의 드로잉 아카이브 연구 -

저자 : 권행가 ( Kwon Heangga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59-186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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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는 한국근대미술사에서 월북화가로서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인물 군상을 남긴 주목되는 작가이다. 그러나 아직도 1930년대에 제작된 그의 초기 작품들에 대해서는 주제, 도상의 의미 등 불확실한 부분이 많이 있다. 본 연구는 이쾌대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드로잉북 자료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쾌대의 30년대 작품의 제작 배경 및 의도 등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연구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유족의 소장품을 스캔하여 만든 이쾌대 드로잉 아카이브이다. 이 아카이브의 드로잉 이미지는 400여점이 넘는다. 이 드로잉들은 그의 일본 제국미술학교 유학 시기의 교육 내용, 대표작들의 제작 맥락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현존하지 않는 많은 작품들의 내용을 추적해가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향후 보다 구체적인 연구의 가치를 가진다.


As an artist who left several figure group paintings and chooses to leave for North Korea during the Korean War, Lee Quedae is noteworthy in Korean Modern art history. Nevertheless, the themes or meanings of his early works in the 1930s are still unknown in many parts. This study analyses the drawing books that have been kept by Lee's family and aims to unravel the backgrounds and intentions of those artworks. Specifically, the 446 drawings archived from them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for a retrospective exhibition on Lee in 2015 will be studied. These images provide the contents of the curriculum Lee went through at Teikoku Art School in Japan and the context behind his major artworks. Also, the drawings contain a great value for the hints it implies to Lee's works that could be found in the record but are lost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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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반논문> 북한미술 연구 동향과 과제

저자 : 신수경 ( Shin Sookyung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87-217 (3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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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북한미술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연구 주체와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북한미술 연구사에 대해서는 약 20여 년 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고찰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미술연구'라는 같은 대상을 논의하면서도 시기에 따라, 연구자에 따라 관점과 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북한미술, 또는 북한미술 연구사가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연구가 가능한 분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각 정권의 대북정책에 따른 연구 동향을 2000년대까지는 개괄적으로 다룬 대신 2010년대 이후,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북한미술 연구에 어떤 변화와 성과가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2018년 벽두, 남북 두 정상 간의 만남으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북한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 결과 개별 연구자는 물론, 학회·대학교 부설 연구소·정부산하 기관 등에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면서 조선화나 미술정책에 집중되었던 주제에서 벗어나 포스터ㆍ자수ㆍ조각 등 연구 분야가 다양해졌으며, 새로운 연구자들의 활동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활발해진 연구만큼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도 많다. 그동안 별다른 검토 없이 사용해왔던 '북한미술'이라는 용어를 비롯해, 북한미술의 기점, 범위 등에 대해서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북한미술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인 작품의 진위 감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이러한 과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 북한미술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The article focuses on the subject and the subject of the study on how the study of North Korean art. For about 20 years, various researchers considered North Korean art history. However, while discussing the same subject as “study of North Korean art,” there were some differences in perspectives and methods depending on the timing of the research. It also means that North Korean art, or North Korean art research, can be studied in various ways from various perspectives.
The article, which looked at the research trends of each administration's North Korea policy, dealt with them in general until the 2000s. Moon Jae-in, in particular since the 2010 instead focus on the administration that North Korea has any change in the study and performance art. The 2018 meeting between the two leaders of South and North Korea has raised expectations for the establishment of a peace regime, as well as interest in North Korean art. As a result, individual researchers as well as research institutes and government-affiliated institutes attached to Hagyeondeung University were encouraged to do their research. As a result, various research genres such as posters, embroidery, and sculptures have become more diverse than the subjects that were focused on Joseonhwa or art policies. There has also been a significant increase in the activity of new researchers.
However, there are as many tasks to be solved as there are more active studies. The term “North Korean art,” which has been used without much consideration, the basis of North Korean art, and the scope of research should be reviewed from scratch. In addition, they will have to discuss in-depth how to feel the authenticity of the work, the biggest difficulty in studying North Korean art. We hope that this will lead researchers to contemplate these tasks together and further boost their research on North Korean art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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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반논문>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에 나타난 현실 고발과 저항

저자 : 정찬종 ( Jeong Chanjong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19-24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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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의 문학은 우리들의 삶을 위협함으로써 인간적인 삶을 상실케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항의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뵐 문학은 인간적인 삶과 그것을 위협하는 모든 현실 사이의 긴장에서 전개되고, 그 과정에서 삶의 현실이 드러나며, 허위가 폭로되고 고발된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고발과 저항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뵐 문학의 특징이다. 1963년에 발표한 _어느 어릿광대의 견해_에서 뵐은 양심이라는 '자연법칙'과 가톨릭교회에서 요구하는 '질서원칙'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슈니어를 통해서 인간다운 삶이 어디에 있느냐를 보여준다. 슈니어는 가톨릭의 질서원칙이 인간다운 삶을 어렵게 하는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계속해서 그것과 맞서 대항한다. 그것만이 위선과 독선의 현실로부터 인간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즉 뵐은 이 작품에서 '과거'를 망각하고 그때마다의 현실에 적당히 맞추어 살아가는 시대적 위선을 고발한다.


Heinrich Böll's literature starts with strong distrust and protest against the undesirable reality that threatens our lives and thereby loses human life. For that reason, his literature develops in the tension between human life and all the realities that threaten it, while the reality of life is revealed, and falsehoods are exposed and accused. Literature that literally embodies and metaphorically portrays accusations and resistance to reality. In 1963, in which Clowns' View, the protagonist, Schnier, conflicts between the 'natural law of conscience' and the 'principle of order' required by the Catholic Church, showing where human life is. As long as he feels that the Catholic Order of Principles is inhuman, making human life difficult, he will continue to oppose it. It is because it is the only way to protect human life from the reality of hypocrisy and self-righteousness. In addition to these problems, Böll accuses the hypocrisy of the times in which he forgets the past and lives up to the reality of each time. In addition to these problems, In this sense, this work can be interpreted as a comprehensive settlement of the hypocrisy of the times in postwar German society in the early six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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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반논문> 초기 북한의 한국미술사 인식과 전개 - 월북미술가 김용준, 정현웅, 이여성, 박문원을 중심으로 -

저자 : 김명주 ( Kim Myeong Ju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49-288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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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남북 미술계의 가장 큰 논점은 일제 잔재 청산과 새로운 민족미술의 정립이었다. 북한은 1945년 노동당이 창건되고,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면서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문화유산을 복구하고 사회주의 이념과 북한 체제에 맞춰진 미술사를 형성하였다. 북으로 간 월북미술가들은 초기 북한미술 형성과정기인 1950~60년대 미술사 서술의 기초를 닦은 인물들로 북한미술의 담론형성과정에서도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들이 지녔던 미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예술관은 이데올로기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였고 그들이 펼친 활동은 미술사 서술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북한의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반영하는 사회주의 사실주의적 전통이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인민들의 생활 감정과 미적 의식으로 미술을 발전시켜온 가장 핵심적인 원천이다. 월북미술가들은 고구려 고분벽화나 공예전통, 고려시대 도자 및 조선시대 회화에 대해서는 진보적 성과 등을 높이 평가하는 반면, 불교미술에 대해서는 종교의 폐해에 의한 계급적, 세계관적 한계를 비판하였다. 그러면서도 불교미술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학의 '인민성'과 '민족적 형식'의 반영물로 보고 민족미술의 범주 내에 포괄하면서 미술사의 관점을 넓혀나갔다.


The biggest issue in the South and North Korean art community, immediately after independence in 1945, was to purge the entire Korea of the remnants of the Japanese rule and create new national art. Once the government was established in 1948, North Korea restored its national cultural heritage, which was damaged by Japan, and formed a new art history aligned with the socialist ideology and the North Korean regime. The artists who defected to North Korea laid the foundation for descriptions of the art history in the 1950s and 1960s, the formative period of early North Korean art, and thus played a key role in the discourse of North Korean art thereafter. Ideology had a huge influence on the convictions and perspectives the artists had about art, and their artistic activities were reflected in their descriptions of art history.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art history of North Korea is its tradition of socialist realism that reflects reality. The tradition is the most important source of development of art, and it has reflected the sentiments and aesthetic consciousness of the people based on the historical materialism of Marxism- Leninism. The artists who defected to North Korea highly appreciated the progressive achievements in the mural paintings and crafts of the Goguryeo dynasty, the ceramics of the Goryeo dynasty, and the paintings of the Joseon dynasty. They, however, criticized the Buddhist art in that it only reflected the worldview of a certain class, namely the Buddhist clergy who were considered as the aristocracy during the Goryeo dynasty, which resulted in the degeneration of Buddhist art. At the same time, the Buddhist art was regarded as a reflection of the “people's character” and “ethnic form” of socialist realism and expanded the view of art history by encompassing it within the category of national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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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반논문> 고구려 고분벽화와 북방·유라시아미술 연구성과와 과제

저자 : 박아림 ( Park Ah-rim )

발행기관 :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간행물 : 인문과학연구 30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89-313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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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는 북한과 중국에 나뉘어 분포하는 지정학적 특징, 20세기 초 일본의 초기 발굴과 모사 등 기록 작업으로 남아 있는 근대 자료로서의 확장성, 통일 전후로 북한과 공동으로 협력하여 발굴과 보존, 연구가 가능한 문화유산, 3~7세기 동아시아의 건축과 회화자료로서의 가치에 주목하는 서양학자들의 관심, 고대한국에서 북방·유라시아로 열려진 문화의 통로로서의 연구가치 등으로 향후 다양한 연구의 방향이 모색된다.
최근 옥도리벽화고분, 호남리벽화고분, 천덕리벽화고분 등 고구려 벽화고분 자료가 추가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북조 고분미술 분야 역시 석곽 선화, 묘실 벽화, 고분출토 유물 등 북방·유라시아적 요소를 드러내는 자료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고구려 벽화의 초기, 중기, 후기의 대표적인 북방·유라시아계 요소 출현 고분들은 중국 위진남북조수당시기의 북방·유라시아문화계통의 벽화와 부조, 유물들과 함께 고찰할 때에 그 문화의 출현 배경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고구려미술의 국제적 성격을 다루는 대외교섭의 주제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파르티아미술과의 건축구조와 벽화주제의 연관성을 언급한 북한의 도유호의 1959년 논문 이래 여러 논문과 저서에서 연구되어왔다. 주로 중국과 서역 미술과의 비교가 중심이 되어왔는데 서역보다는 중국의 고분미술과 불교미술과의 비교 고찰이 주를 이루었다.
최근의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연구들은 서역이라는 용어보다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중앙유라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유라시아의 전체 역사와 지리를 조망하기도 하고, 돌궐과 같은 북방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으며, 오아시스로에 국한되지 않고 초원로를 통한 대외교류까지 확대되고 있다.
본문에서는 고구려와 북방, 서역, 중앙아시아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사와 연구경향을 먼저 정리하였다. 다음으로 북방·유라시아문화와의 연계선상에서 장의미술로서 고구려 벽화가 가지는 특수성과 향후 연구방향을 살펴보았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북방·유라시아미술의 흐름에서 연구하는 향후의 연구방법은 고구려 벽화고분과 비교되는 고고미술·건축 자료들을 유라시아미술·건축의 맥락에서 폭넓게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는 중국의 고고미술·건축 자료를 수집하여 비교하고, 더 나아가 북방의 몽골지역의 미술문화와 서투르키스탄과 남부러시아지역의 미술문화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유라시아를 따라 흐른 미술문화의 큰 문맥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재해석하고 복원하는 것이다.


Koguryo tomb murals contain various research topics due to the geographical location both in China and in North Korea, the modern materials remaining from the early 20th centu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time period, the possibility for the corporation of South Korea and North Korea in the excavation and the preservation of the murals, the open cultural channel from ancient Korea to Eurasia, etc.
The recently excavated Koguryo tomb murals and Chinese tomb murals provide us with lots of new materials to delve into figure out the Northern and Cental Asian features in the funerary art.
The foreign elements of the Koguryo murals have been discussed since 1959 from the article published by Do Yuho, the re-known North Korean archaeologist who participated at the excavation of Anak tomb No. 3. The relations with Chinese funerary art have been more widely studied. Recently, the Central Asian related elements in Koguryo murals and the Central Asian studies in general have been broaden more and more even to explore the relation along not only the Oasis Road but also the Steppe Road.
The current paper first examined the state of field on the relation of Koguryo murals and the Northern and Eurasian arts, and then proposed the possible research topics to pursue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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