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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음악논집 update

journal of Ewha Music Research Institute (JEMRI)

  •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 : 예체능분야  >  음악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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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계간
  • : 1229-7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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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24권1호(2020) |수록논문 수 : 290
이화음악논집
24권1호(2020년 03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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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음악공연양상 탐구: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저자 : 김은영 ( Eunyoung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4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70 (6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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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매일신보』에 나타난 음악기사를 통해 1930년대 음악공연의 양상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다. 본 연구의 의의는 기존의 식민지 음악연구가 서양음악 혹은 전통음악 등 특정 장르만을 분석대상으로 연구해온 한계를 극복하여 1930년대의 모든 음악장르의 공연양상을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서울만이 아닌 지방과 일본의 소식을 보도한 신문으로, 공연기사에서도 경성, 지방, 동경, 만주에서 있었던 공연정보가 나열되어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경성의 대표적 연주공간인 경성공회당과 부민관의 음악회에서는 한국인만이 아닌 재조일본인과 외국인의 음악연주를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음악문화가 전개된 혼종의 공간이었다. 1935년 이후 음악공연의 중심지는 공회당에서 부민관으로 이동하고 부민관에서는 하얼빈교향악단·신경교향악단 내한연주, 이왕직아악부의 아악봉축연주, 레코드회사 소속가수 총동원 연예대회 등 대형 공연이 자주 열렸다.
본 연구에서는 이외에도 래청각, 모리스홀, YMCA, 천도교기념관, 조선극장, 단성사, 각 학교강당 및 지방에서 열린 공연도 살펴보았다. 공회당과 부민관 이외의 공연장에서 열린 경성지역 공연은 공연장마다 특징 있는 특정 장르의 공연이 열렸고, 지방의 공연장은 수해구제·빈민구제 등 목적성 공연과 기생들의 공연, 그리고 서양음악 연주회의 지방공연이 일어났다.
1930년대는 본격적 청중이 출현하던 시기로 서양음악의 경우, 193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인 및 외국인이 주도하다 점차 한국인의 참여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전통음악은 창악인을 중심으로 한 명창대회와 여류명창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며 대중매체를 통해 기획된 조선악이 대중화되던 시기이다. 대중음악은 화려한 볼 거리 위주의 스펙터클한 기획공연이 열렸으나 『매일신보』의 성격상 대중음악공연은 많은 지면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전시체제가 본격화되는 1930년대 말에 이르면 장르를 불문하고 정치적 목적에 부합한 공연으로 점철되어 가는 시대적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This study indicates an attempt to explore aspects of the music performances in the 1930s through articles on the newspaper named MAEILSHINBO. The 1930s was a time when modern sensations spread through mass media such as Gramophone and Radio, even in the limitations of colonial rule. Besides, music performances that were held during this period could be the most important forms of music that reveal the music culture of the time in multi-directional perspective.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of all, music culture of various nationalities was developed with performances by Korean, Japanese residents in Korea, and foreigners, especially at Gyeongseong Gonghoedang and Buminkwan, which were representative venues of Gyeongseong in the 1930s. Since the opening of Buminkwan, which opened in December 1935, most of the performances took place at Buminkwan not just in the Western music genre, but other performances such as “Night of Popular Entertainment” centred on record singers and Kisaeng were also frequently planned. In particular, there have been many large-scale planned performances like the Harbin Symphony Orchestra's concert in Korea since the Second Sino-Japanese War broke out in 1937.
There were many Pansori performances at the Joseon Theatre, while Naecheong Pavilion was a multi-purpose cultural space. The performances in Jongno and Jeongdong were held by Hong Nan-pa, Hyun Jae-myung, as well as solo recitals. Besides, the school auditorium, Dansungsa, and the Cheondogyo Memorial Hall also had held various performances such as the girl musical playgroup and the master singer contest. The local concert halls such as public halls in each region were a place where performances were frequently held with the purpose like flood relief and poor relief by Kisaeng.
The 1930s could be vibrant with the emergence of a full-scale audience of Western music and the popular culture, which provided performances planned by Korean musicians with Joseon music through the mass media. Moreover, there were many performances of Japanese residents in Korea and foreigners. However, by the end of the 1930s, when the wartime system was in full swing, it seemed like there were the limitations of the times when performances were concentrated for political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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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식민지 경성의 일본인 음악가 '임상희' 연구

저자 : 조성우 ( Sungwoo Cho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4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1-103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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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행해진 일제강점기 양악사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연구들은 단순히 일제강점기라는 특정 시기에 대한 조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한국의 근대 양악사 전반에 걸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일제강점기 양악사를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적으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엄연히 일제강점기 양악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인 음악가들과 일본인들에 의한 음악문화는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인 음악가 미무라 쇼코(三村祥子), 조선 이름 임상희(任祥姬)에 대해 살펴보았다.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에 걸쳐 식민지 경성에서 활동한 임상희는 일본인이었으나 조선 이름을 가지고 조선악단의 중심에 있었다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러 조선인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쳤다.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화여전 음악과의 성악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개인 문하생 모임인 '쌍엽회'를 조직하는 등 다수의 제자를 양성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말 최대규모의 음악단체였던 '조선음악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악단을 중심으로 펼쳐진 임상희의 활동은 당시 경성에서 활동한 보통의 일본인 음악가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며, 그 배경에는 남편이었던 작곡가 임동혁(任東爀)의 존재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임상희에게는 '일본인 음악가'이기 이전에 조선인 남편과 결혼하고 조선에 거주하는 이른바 '재조일본인처'로서의 역할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많은 '재조일본인처'가 그러했듯이 임상희 또한 남편의 출신지인 조선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받아들였고, 조선악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것 역시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접근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Research of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was developed from numerous perspectives in many different fields. However, these studies do not simply shed light on a specific period of time known as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y can be said to have played an important catalyst in raising interest during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in Korea. Despite these achievements, many people question the possibility of finding a balanced view of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in Korea in existing research. Existing research has not focused much on the musical culture of Japanese musicians and Japanese people, which was certainly a part of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in Kore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This paper will use this point of view to examine Japanese musician Mimura Shoko (三村祥子), known in Korea as Lim Sang-Hee. Lim was a Japanese colonist who lived in Korea in the late 1930s and early 1940s. She has a unique history as she had a Korean name and was the center of the music profession in Korea. She actively participated in performance activities with many different Korean musicians. She also had an interest in education, and was a professor of vocal music at Ewha College. She trained a number of disciples, and organized a private student group called the Ssang-yeop Gathering.
Lim's activities centered on the music profession of Korea were quite distinguished in contrast to the other Japanese musicians also working in Seoul. An important reason for this may have been the existence of her husband, composer Lim Dong-Hyuk (任東爀). Lim Sang-Hee was required to play the role that many so-called “Japanese wives in Korea” had to before she was known as a “Japanese musician.” This paper confirms that Lim, like many Japanese wives in Korea, embraced the lifestyle and culture of Korea, her husband's hom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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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환기 민속악계의 향방: 1960년대를 중심으로

저자 : 김민수 ( Minsu Kim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4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05-13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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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재 보편적으로 주지하고 있는 사실 이외에 아직까지 그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못한 년대 민속악계의 전반적인 1960 정황을 선행연구와 1차 사료인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재구해 이에 따른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민속악계의 새로운 기간단체로 결성되었다는 사실 이외에 뚜렷한 내용이 파악되지 못한 1960년대 한국국악협회는 연주 활동과 더불어 국악보존사업을 주도하고 민족음악연구소의 설립을 통해 국악이론의 정립을 시도하는 등 다각도에서 민속악 진흥에 필요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단지 민속악 중심의 국악교육기관으로 처음 설립되었다는 사실에만 그 의미가 부여되었던 국악예술학교는 1960년대 국악이론과 국악교육 전반에 관한 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다. 또한 음악교사들을 대상으로 최초의 국악강습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의 저변확대를 통한 대중화를 모색하고 국가 주도의 해외 활동에 참여해 국악의 세계화를 통한 학교의 위상을 정립해 나가는데 매진했다. 최초의 창단이라는 내용만 부각되어 온 국악예술학교의 국악관현악단은 학교가 조직한 국악기개량연구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국악기를 개발하고 실용화를 시도하고 마침내 실연했던 민속악인들의 치열한 노력의 성과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국극단의 창단과 국극정립위원회의 조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1960년대 국립국극단은 국가 예산의 결여라는 사실상 어떠한 창극의 질적 향상을 추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초창기 여성국극을 가미한 창극을 시도하고 조선성악연구회의 작품을 재공연해 창극을 정립해 보려는 나름의 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지속적인 창극 공연의 부담 속에 기획된 판소리 연창회는 오히려 대중들의 인기를 끌면서 창극과 더불어 국립국극단의 새로운 공연물로 정착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파악했다.
1960년대 초부터 구체화 된 무형문화재 보호법 시행에 대해서도 민속악계는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국악예술학교가 주도한 무형문화재 발표회와 전수사업은 대내외적으로 민속악인들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민속악의 무형문화재 지정의 타당성을 주지시킴으로써 1960년대 민속악의 일부종목이 무형문화재에 지정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This article restructures the overall circumstances of folk music in 1960s which have not been precisely defined other than the conventional facts known in the present, using to existing studies and primary historical source of newspaper articles and thus confirm detailed information regarding the subject.
Korean Traditional Music Association had been concentrating on including playing the leading figure in the conservation busines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s well as providing musical performances and making attempts to define theorie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by establishing Folk Music Research Center.
The School of Korean Traditional Music had been focusing on folk music founded Korean Traditional Music Research Center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Education Research Center to set general systems for theories related to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its education in 1960s. Additionally, it has expanded the basi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through hosting the first National Korean Traditional Training and Intangible Cultural Asset Lectures. Korean Traditional Music Orchestra made by the School of Korean Traditional Music had been developed various musical instruments for folk music through Research Association for the Enhancement of Musical Instruments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Also demonstrated these new instruments in folk music performances in orchestra as the pioneer of the enhancement of musical instruments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The National Changgeuk Theater of Korea prevented the qualitative improvement of Changgeuk can be assumed by seeing that lacking number of members who had been eking out a living only with the payment they received from their performance in National Changgeuk Theater of Korea decreased, intermittent practice for Changgeuk. On the other hand, it was found that Pansori duets which was originally produced under the pressure for continuous performance of Changgeuk started becoming more popular among general public leading it to find its place as a new performance even in present.
The world of folk music took preemptive action in the implementation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protection law which became concrete starting in the early 1960s. the School of Korean Traditional Music was hosting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nouncement and Training Business for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uch efforts made by the world of folk music can be viewed as a driving force making it possible for some categories of folk music to be appointed 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in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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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음악에 관한 개괄적 검토

저자 : 이동희 ( Donghee Lee )

발행기관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연구소 간행물 : 이화음악논집 24권 1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39-172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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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현재 전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193개국 7,493,587명으로, 이들은 대부분 각자의 거주국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본국에 대한 향수를 지닌 '코리안 디아스포라 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확장적 의미에는 '이산'(離散), '본국과의 연계', '본국의 이상화'가 포함되는데 이 집단이 내재하는 정체성 표출의 주요 도구 중 하나는 음악으로, 디아스포라에서 음악은 국가의 개념을 초월하여 거주국으로 이산된 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재외동포 다수거주 주요 국가들을 북미, 중국, 일본,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범주를 재구조화하여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의 전반적인 특징과 그 안에서 행해지는 음악의 종류 및 의미를 살펴본 결과, 각 거주국 디아스포라 집단의 성격, 형성시기, 지리적 여건에 따라 음악의 종류와 기능이 조금씩 상이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음악의 기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향수'와 '결속'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각각의 기능을 대표하는 음악은 '아리랑'과 '사물놀이'라 할 수 있다.
아리랑은 이주한인 1세대들을 중심으로 본국에서 거주국으로 이주할 당시부터 존재하여 본국을 향한 거주국에서의 그리움을 표출하는 매개로서 지속되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집단에서 향유하는 아리랑의 종류는 거주국의 지역적 특성과 거주국에서의 삶과 관련되어 끊임없이 변이되어 전승되었고, 디아스포라인들이 함유하는 한의 정서와 결합되어 있다. 반면 사물놀이는 이주한인 1세대의 후속세대들과 신이민자들이 중심이 되어 흥미로 출발했다가 디아스포라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매개로서 승화된 것으로, 음악적 동시대성을 확보하며 오늘날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민족적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아가 사물놀이는 향유자들이 코리안 디아스포라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초국적인 성격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As of 2019, there are 7,493,587 ethnic Koreans living around the world in 193 countries, mostly living as 'Korean diaspora groups' that maintain the identity of the Korean people in their respective countries and have nostalgia for their home countries. Diaspora's expanding meaning includes 'discrete,' 'link to home country' and 'idealization' - one of the main tools of this group's inherent identity expression is music, and in diaspora, music expresses the national identity that is separated into a residential country beyond the concept of a nation.
After reviewing the characteristics, types of music and meanings of the Korean diaspora in each region by reorganizing the categories into North America, China, Japan, and the CIS, I found that the types and functions of the diaspora groups in each country vary slightly depending on the nature, timing of formation and geographical conditions. However, if the Korean diaspora music is divided into two main functions, it can be defined as 'nostalgia' and 'solidarity,' and the music representing each function can be 'Arirang' and 'Samulnori.'
Arirang has been around since the time of moving from home country to living country, focusing on the first generation of old comers, and continued as a medium for expressing their longing for homewardness. The type of Arirang enjoyed by the Korean diaspora group has constantly changed in relation to the local characteristics of the living countries and their lives in the living countries. Samulnori, on the other hand, is an interesting starting point for a follow-up to the old comers or newcomers, and then sublimated as a medium to strengthen diaspora's solidarity, securing musical contemporary characteristic and playing an important role in establishing the ethnic identity of Korean diaspora today. Furthermore, Samulnori is characterized by the fact that perfomers are not limited to the Korean diaspora group but have a supranational pers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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