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국문학회> 국문학연구

국문학연구 update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 : 국문학회
  •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598-2076
  • :
  • :

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7)~40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414
국문학연구
40권0호(2019년 11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 | | |

KCI등재

1지역문화권의 유산으로서 <정읍사>와 정읍의 문화사적 위상

저자 : 서철원 ( Seo Cheol-won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2 (28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글을 통해 <정읍사>와 정읍 지역문화권의 관계를 살피고, 해당 작품과 지역의 문화사적 위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정읍사>의 형성이 백제 시대부터 인지, 고려 시대 이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 제목을 소개하고 있는 『고려사』·「악지」의 「삼국속악」 조에 보이는 다른 백제가요 역시 절반 이상이 후기 신라 이후의 것들이다. 따라서 「삼국속악」 조만을 근거로 <정읍사>의 형성 연대를 백제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들 백제가요에 나타난 지역성, 여성화자와 애정 주제 등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백제가요가 고려속요와 공유하고 있는 것들로서, 신라 향가의 수도권 중심, 남성화자, 종교적 지향과는 대조적이다. 비단 <정읍사>뿐 아니라, 「삼국속악」 조의 백제가요 자체가 향가와는 대조되는 나름의 전통을 수립하여 고려속요에 물려준 것이었다. 정읍 지역에서 <정읍사>가 형성된 문화사적 기반으로, 석탑과 고분군을 통해 확인되는 그 역량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읍에는 현존 백제 양식석탑 37기 가운데 5기가 남아 있는데, 단일 지역으로 최다이다. 시기상으로도 11~14세기에 고루 나타나 있어, 무신 집권기 즈음까지도 정읍이 '백제'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지속하고 있었음을 보인다. 그리고 다수의 고분군에 반영된 마한 문화의 잔재를 통해, 정읍의 문화적 정체성이 마한과 백제에 두루 걸쳐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정읍사>의 창작 시기에 대한 논쟁을 벗어나, 백제문화권의 중추였던 정읍 지역의 문화적 유산으로서 그 정체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Through this article, I want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Jeongeupsa and Jeongeup's local culture, and to shed light on its works and the cultural and historical status of the area. It is not certain when Jeongeupsa is formed, whether Baekje or Goryeo. However, other Baekje pieces of Goryeo Dynasty that introduce this work are also more than half of them after the Unified Silla Period. Therefore, the date of formation of Jeongeupsa cannot be regarded as Baekje solely based on it. Rather,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locality, female writers and the themes of love shown in these Baekje books. These are the things that Baekjeyo shares with the Goryeosokyo, in contrast to Silla Hyanga's central, masculine and religious orientation in the Seoul metropolitan area. In addition to Jeongeupsa, the Baekje Kingdom of the Three Kingdoms passed on its own tradition of contrasting with its flavor to the Goryeosokyo. As the foundation of Jeongeupsa in Jeongeup area, stone pagodas and ancient tombs need to be reconsidered. Five of the 37 existing Baekje-style stone pagodas remain in Jeongeup, the largest single area. It also appears evenly in the 11th and 14th centuries, revealing that Jeongeup was continuing the homogeneity of Baekje until this time. And through the remnants of Mahan culture reflected in many ancient tombs, you can see that Jeongeup's cultural identity spans Mahan and Baekje. Now beyond the debate over the creation period of Jeongeupsa, we need to pay more attention to its identity as a cultural heritage in Jeongeup.

KCI등재

219세기 사찬사서(私撰史書) 속의 예문지(藝文志)의 기술 방식과 특징

저자 : 김려화 ( Jin Li-hua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3-57 (2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19세기에 편찬된 조선의 사찬사서(私撰史書)인 『해동역사(海東繹史)』, 『동국통지(東國通志)』, 『동국십지(東國十志)』 속의 예문지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기술 방식의 측면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특징을 고찰하고 이 예문지들이 지닌 특징과 그 의미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원래 예문지(藝文志)는 중국 전통 역사서에서 규범화된 일정한 형식대로 편찬해오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19세기에 편찬된 이 세 예문지들은 전통적인 예문지와 비교할 때 분류체계에 있어서 상당히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동역사』 「예문지」, 『동국통지』 「예문지」, 『동국십지』 「예문지」의 분류 체제를 각각 살펴본 결과, 『해동역사』 「예문지」는 독특한 분류체계를 구축하였고 『동국통지』 「예문지」와 『동국십지』 「예문지」는 개수된 분류체계를 채택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19세기 사찬사서 속의 예문지의 특징적인 서술 방식으로 볼 수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이를 '새로운 분류체계'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분류체계가 나타난 주요 원인은 조선에서 17세기부터 유행했던 유서(類書)의 영향임을 밝혔다. 조선후기에 편찬한 유서 가운데 서목 성격을 띠는 내용들이 있는데 이것은 19세기 사찬사서 속 예문지의 초기형태로 볼 수 있다.
한편 전통적인 예문지에서는 시문을 수록하지 않은 것과 달리 『해동역사』「예문지」, 『동국통지』 「예문지」, 『동국십지』 「예문지」에는 한시, 시가 그리고 산문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다. 예문지에 시문을 수록한 것은 자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여 예문지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면 문화사 서술을 풍부하게 하려는 편찬목적 때문에 시문을 예문지에 수록한 것이다. 풍부한 내용을 자랑할 수 있는 예문지는 곧 한 시대의 성대한 문물에 대한 문서 증빙이다. 그리고 시문 수록을 통해 편찬자들이 문학을 중시하여 '시와 문장으로 역사서술을 보충하려고(以詩文補史)' 한 편찬의식도 엿볼 수 있었다.
새로운 예문지 분류체계를 구축하고 또 시문을 수록했다는 것은 편찬자들이 자국의 역사를 자주적(自主的)이고 체계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해동역사』의 편찬자 한치윤(韓致奫), 『동국통지』의 편찬자 박주종(朴周鍾), 『동국십지』의 편찬자 배상현(裴象鉉)은 모두 예문지를 통해 자국의 문화역사를 정리하고 자국 문물의 성대함을 밝히며 자국의 역사를 재인식, 재평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주적인 역사 편찬의식으로 자국사의 독립성을 추구하려는 이들의 중국의 문물제도에서 탈피하려는 시도에는 한계가 있었다. 비록 자국사의 독립성을 추구하였지만 중국 문물과의 깊은 연원으로 인해 조선의 예문지에는 중국과 관련된 내용이 빠질 수가 없었고 편찬자들은 중국 서적을 독립된 항목으로 수록하거나 자연스럽게 조선의 서적과 함께 기록하였다. 그 결과, 조선후기 사찬사서 속의 예문지는 문화교류사를 기록하는 역사서술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사찬사서 속의 예문지는 편찬자들이 자국의 문화역사를 확립시키려는 결과물인 것은 분명하다.


The research object of this paper is the Yeamunji(藝文志) in private history book “Headongyeoksa(海東繹史)”, “Dongkuktongji(東國通志)” and “Dongkuksipji(東國十志)” in 19th century Joseon. From the angle of compiling mode, this paper expounds the Compiling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se Yeamunjis.
Originally, Yeamunji had a certain standardized compilation mode in the traditional Chinese history books. However, compared with the traditional Yeamunji, the three Yeamunji compiled by Joseon in the 19th century showed a new look in the classification system. The results of examining the classification system of these three Yeamunji s are as follows. There is a special classification system in "Headongyeoksa's Yeamunji", while "Dongkuktongji's Yeamunji" and "Dongkuksipji's Yeamunji" adopt a modified classification system. Such a classification can be seen as the general feature of Yeamunji in the 19th century Joseon private history books. Therefore, this paper defines it as a new classification system. In addition, the reason for the emergence of this new classification system can be found in the compilation of "Yuso(類書)" popular in the 17th century. In the 17th century, there were some bibliographic contents in the Yuso, which can be regarded as the rudiments of "Yeamunji"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other important feature is that, compared with the traditional Yeamunji, these three 19th century Joseon Yeamunji contained a large number of Chinese poems and articles.
The purpose of collecting Chinese poems and articles in Yeamunji is to enrich the content of Yeamunji. In other words, in order to enrich the narrative content of cultural history, a large number of Chinese poems and articles are included in the Yeamunji. If a Yeamunji is famous for its rich content, it means that the culture of the era it records is very prosperous. Moreover, through the collection of Chinese poems and articles, we can see that the compilers of historical books attach great importance to the consciousness of literature compilation, and they had the concept of "supplement historical materials with Chinese poems and articles(以詩文補史)".
In fact, the fact that the new system of classification and the collection of Chinese poems and articles are the result of the fact that the historiographers wanted to know the history of their own country independently. Han chi-yun(韓致奫), the compiler of “Headongyeoksa”, Park joo-jong(朴周鍾), the compiler of “Dongkuktongji” and Bae Sang-hyun(裴象鉉) the compiler of “Dongkuksipji”. All three of them hoped to narrate the cultural history of their country through the compilation of Yeamunji, and clarify that their culture had a long history and rich content. They tried to re understand and re evaluate the cultural history of Joseon. However, although they all had their own consciousness of historical compilation, and they all pursued independence in their respective historical narration, they still had limitations in getting rid of China's cultural relic system. Due to the far-reaching relationship between Joseon culture and history and Chinese cultural relics, Joseon's Yeamunji also included Chinese books. Although they recorded Chinese books as an independent project, they ended up juxtaposing them with Joseon books. As a result, the Yeamunji in Joseon had become a historical record of cultural exchange. Even so, in the 19th century, in the history books compiled by the Joseon private, Yeamunji had become an important record of Joseon's culture history.

KCI등재

3유언호(兪彦鎬) 『연석(燕石)』의 평점비평 연구

저자 : 표가령 ( Pyo Ga-ryeong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9-91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고는 유언호(兪彦鎬, 1730~1796)의 문집 『연석(燕石)』에 수행된 평점비평의 특징적 면모를 고구하고 그 의미를 밝힌 것이다. 현전하는 유일본 자료인 장서각본 『연석』을 주 텍스트로 삼아 논의를 진행하되, 학계에 새로 소개된 『연석』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여 『연석』의 평점비평의 배경을 살폈다. 이를 통해 『연석』에 평점비평을 행한 주체가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유한준(兪漢雋, 1732~1811)임을 확정하였다.
『연석』에 수행된 평점비평의 방식은 크게 권점(圈點)과 평어(評語)로 나뉘는 한편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붉은색이 박지원의 것, 푸른색이 유한준의 것이다. 『연석』에 사용된 권점과 평어는 명대(明代)의 대표적인 평점비평서인 모곤(茅坤, 1512~1601)의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鈔)』 및 18세기 조선에 유통되었던 평점비평서들에 보이는 방식들을 공유하면서도 차별된 성격을 내포한다. 특히 평어에서 대상 작품과 연관된 다른 작품 혹은 작가를 인용하여 제시하는 경우, 『연석』의 평어에서는 조선 시대 선배 문인 및 당대 문인으로 인용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는 다른 특징이다. 그 밖에 평비자가 자신의 글을 인용하거나, 평비자가 알고 있는 사실 정보 및 관련 일화를 부연 서술하는 방식 등이 『연석』 평점비평 방식의 독특한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평점비평의 배경과 방식을 바탕으로 '권점'과 '평어'의 측면에서 『연석』 평점비평의 의미를 밝혔다. 먼저, 『연석』이 '유언호-박지원-유한준'의 세시각이 포개어진 텍스트라는 점에서 기호화된 '권점 비평' 역시 독특한 비평행위로 간주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 권점 비평 행위를 대화적 지평에서 분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색했다. 다음으로는 평어를 통해 평비자가 자신을 '서명'한 경우를 살펴보았다. 이는 특히 박지원의 평어에서 확인된다. 한편 이 같은 성격의 평어는 평비자가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상 작품과 평어가 상호 조응하는 비평 방식임을 밝혔고, 이는 박지원이 『연석』에 평점비평을 하고 난 시점보다 이후에 행해진 『청성잡기(靑城雜記) 』나 『풍석고협집(楓石鼓篋集) 』에 보이는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이의준(李義駿, 1738~1798) 등의 평어에 보이는 비평방식과 유사함을 밝혔다. 요컨대 『연석』은 18세기 후반 조선 문인들 사이의 상호 평점비평이 성행하던 시기에 등장한 평점비평서로서 당대의 평점비평이라는 시대사적ㆍ문화사적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자, 박지원과 유한준의 산문 비평의 실제와 그들의 비평가적 면모 및 지향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is the first attempt at examining the characteristics and the significance of the pyeongjeom criticism(評點批評) in Yeonseok(燕石) written by Yu Eon-ho(兪彦鎬, 1730∼1796). The argument of this paper is based primarily on analysis of the only existing manuscript copy of Yeonseok(燕石), which is currently stored in Jangseogak library, and also uses secondary information provided by another researcher regarding other newly discovered materials related to Yeonseok to scrutinize the background of the pyeongjeom criticism in Yeonseok and prove that the writers behind this pyeongjeom criticism are Park Ji-won(朴趾源, 1737∼1805) and Yoo Han-joon(兪漢雋, 1732∼1811).
The criticism presented in Yeonseok can be generally divided into two categories. One is 'Kwonjeom'(圈點)(emphatic dots), and the other is 'Pyeong-eoh'(評語)(critical words and phrases). The pyeongjeom criticism can also be distinguished by colour. Red is used to mark the criticism composed by Park Ji-won and blue is used to mark the criticism by Yoo Han-jo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kwonjeom and pyeongeoh used in Yeonseok can also be found in the Ming dynasty's representative book of pyeongjeom criticism Selected Works of Writings by the Top Eight Great Writers of the Tang and Song Dynasties(唐宋八大家文鈔), written by Mao Kun(茅坤), and in the pyeongjeom criticism that circulated in the late 18th century of the Chosun Dynasty. However, even while sharing similar methods as these other examples, the pyeongjeom criticism in Yeonseok also has its own distinctive character. This thesis sheds light on both the shared methods and the distinctive aspects of the pyeongjeom criticism in Yeonseok.
After analyzing the general features of kwonjeom and pyeong-eoh, this paper examines the way they function and interact within the text of Yeonseok. As kwonjeom is conveyed semiotically, it is difficult to decode its meaning, so many studies dealing with pyeongjem criticism have overlooked its function. However, this thesis evaluates the use of kwonjeom from the perspective of viewing it as a unique form of criticism and thereby demonstrates that Park Ji-won and Yoo Han-joon's use of the kwonjeom can be considered as a dialogic effort. In regard to pyeong-eoh, this study examines how the critics Park Ji-won and Yoo Han-joon use their own writing from previous compositions as critical comments. This is especially true for Park Ji-won's criticism. As a result, the pyeongjeom criticism in Yeonseok can be considered a unique style of criticism that engages in a dialogue with its subject text rather than offering a simple assessment, resembling the style of criticism practiced by a little later by writers like Lee Deok-mu(李德懋, 1741∼1793) and Lee Eui-jun(李義駿, 1738∼1798) in Cheongseongjapgi(靑城雜記) and Punseok-Kohyupjip(楓石鼓篋集).
In conclusion, Yeonseok can be considered a means for gaining a sense of the historical and literary significance of the interactive style of pyeongjeom criticism which became popular practice in the late 18th century between Chosun literatures as well as an authoritative source of reference for gaining an understanding of Park Ji-won and Yoo Han-joon's prose criticism and their critical demeanour and inclinations.

KCI등재

4한국 풍수설화 속 인간과 자연의 특별한 관계

저자 : 윤홍기 ( Yoon Hong-key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3-112 (20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한국의 풍수설화 즉 풍수지리설을 다루는 설화에서는 한국인의 자연관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관계 맺는 양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 풍수설화 네 편 - 장군대좌혈에 위치한 우암 송시열의 묘, 벌집형 명당, 달성서씨 시조묘, 명당 쓰고 탄생한 심왕비 - 에 나타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분석하고 해석하였다. 이 네 전설에는 살아 있는 사람[장꾼이나 학생]들이 지형의 결점을 메꾸어 주거나, 개미가 한 일을 사람[일꾼]이 한 일로 참작해주고, 올챙이에게 베푼 은혜를 사람에게 베푼 은혜로 간주하는 경우가 보인다. 이런 식으로 자연을 인간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자연관의 일면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구분을 없애고 양자를 서로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설정 방식에 대한 한국 고유의 면모라고 생각된다.


Human attitudes toward nature are well reflected in some geomancy tales in Korea. This paper analyzed and explained four Korean geomancy tales - The Legend of Song Siyol's grave in a geomantic landscape suggestive of an army general's commanding posture, The Legend of the geomantic beehive landscape, The Legend of the progenitor of the So family from Talsong, The Legend of Queen Sim who was born after the making of a grave at an auspicious site. In the first two legends people function as natural elements in order to make up the shortcomings of a geomantic landscape. In the remaining two stories people's charitable deeds towards nature were treated as if they were actually charitable deeds towards human beings. Regarding (1) nature as an extension of humanity and (2) human beings as an integral part of nature is a particular aspect of traditional Korean attitudes toward nature.

KCI등재

5설화에 나타난 조선시대 무관의 형상과 그 의미

저자 : 정재민 ( Jung Jae-min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3-137 (25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조선은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아 문치주의 혹은 숭문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사회였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체제 아래 무관들은 양반층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문인들과 차별되는 삶을 강요받아 왔다. 이러한 문존무비의 사회풍조 속에서 설화 전승자들은 조선시대 무관을 장부, 의협, 감사자, 명관, 선비의 형상으로 인식했다.
장부로서의 형상은 주로 무인의 태생적 기질이나 성향과 관련이 깊은 반면에 의협, 감사자, 명관 및 선비의 형상은 현실세계 속에서의 성취와 연관된다. 이들 중에서 의협과 감사자, 명관의 형상은 주로 시대적 상황 변화에 의해 선택적으로 부각되는 공적 면모에 해당하며, 이는 현실적 지향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그에 비해 선비의 형상은 문무반 모두에게 공통되는 보편적 면모이자 이념적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다섯 가지 무관의 형상은 문치주의 시대를 살았던 조선시대 무관들의 태생적, 현실적, 이념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또한 현실적 지향적으로서 의협, 감사자, 명관의 형상을 갖추었다는 점은 곧 문무반 사이의 차별을 극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무관의 위상을 정립하고 명실상부한 사회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나아가 의협·명관·선비의 형상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전시대에 비해 진일보한 국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다섯 가지의 형상들은 문인과 무인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과 대립, 화해와 조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문관과 무관 사이의 대립은 표면적으로는 문무차별에 대한 저항과 좌절을 의미하지만, 이면적으로는 장부-명관의 형상 혹은 사적-공적 인식의 대결로 해석된다. 물론 이들의 대결은 명관의 형상과 공적 인식의 승리로 귀결되며, 이는 무관들 역시 공적존재로서의 명관의 면모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The Joson dynasty had been employed a policy of civilian government. It was based on the ground of the Confucianism. In this way, the Joson dynasty had been discriminated against military officer, in favor of civil official. That was the representative policy that civil service had the superiority to military service.
The military officer in the Joson dynasty had been recognized the five imagery which is the manly man, chivalry, patriotic martyr, good governor, virtuous man. The imagery of the manly man mainly had been expressed in his boyhood. The imagery of the chivalry, patriotic martyr, good governor had been revealed selectively after going into government service. On the other hand, the imagery of the virtuous man was the general and ideological point.
Therefore these five imagery have showed the internal aspect that is naturally, practically, ideologically distinctive quality. And then it is rated these five imagery because they have been situated the military officer's position among the yangban, the two upper classes of the Joson dynasty. Additionally, these five imagery provide a criterion which have interpreted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military officer and civil official.

KCI등재

6한국 스토리텔링의 전형성 탐색을 위한 시론 - 고전소설, 동아시아 리메이크 드라마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

저자 : 송성욱 ( Song Sung-uk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39-162 (24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이 논문은 TV드라마, 영화 등 한국 스토리텔링의 분야에서 한국적 전형성 혹은 정체성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탐색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그 전형성의 대체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등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상호 리메이크된 드라마를 비교하였다. 원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제작하는 국가의 상황에 따라 이야기 혹은 진행 구조가 달라지는 부분을 추출하고, 그 추출된 차이점이 고전소설과 연관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주요 분석 대상으로 TV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선정하였다. <꽃보다 남자>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 대만에서 모두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중국의 경우는 2018년에 새로운 버전의 드라마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은 대만에서 시작되었지만 일본과 한국을 거치면서 가히 폭발적인 인기와 온갖 화제를 낳았던 드라마이다. 이들을 국가별로 비교하고 그 차이점을 추출하고 다시 조선시대 소설의 서사적 특징과 견주어 본다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인물 설정의 방식, 의미 생성의 방식, 장면 설정의 방식 등의 측면으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한국은 중국, 일본과 비교하여 뚜렷한 변별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특성이 고전소설의 전형적 특성과 연관됨을 확인하였다.


The paper was written to explore the archetypes of Korean storytelling. To solve this problem, we want to compare mutually remade dramas in Korea, China and Japan. The original story is shared but the story or structure of progress will be extracted depending on the state in which it is produced, and the extracted differences will be related to classical fiction. The TV dramas < Boys Over Flowers > and < Mother > were selected as the main subjects of analysis. Based on a Japanese cartoon, < Boys Over Flowers > was all made into dramas in Korea, Japan, China and Taiwan, and in China, a new version of the drama was produced and aired in 2018. Drama production started in Taiwan, but it has been extremely popular and talked about throughout Japan and Korea. Mother is also based on a Japanese drama, which has been praised as a well-made drama remade by Korea. We will compare them by country, extract the differences and compare them with the epic features of Joseon-era novels. These tasks will be divided into aspects such as how to set up characters, how to create meanings, and how to set up scenes.

KCI등재

7화성시 향토박물관 소장 한글 전적(典籍)의 내용과 가치

저자 : 채윤미 ( Chae Yun-mi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63-198 (36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본 논문은 화성시 향토박물관에 소장된 한글 전적 19종을 소개하고 그 가치를 논의한 것이다. 한글 전적 19종은 화성 지역에 세거한 양반가에서 기증된 것으로, 본고는 19종의 형태사항과 내용을 개관하였다. 그 결과 간행본이 3종, 필사본이 16종인 점, 문학 작품이 5종인데 비해 14종은 대개 교육적 또는 실용적 성격을 띤 자료임을 밝혔다. 14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대 이념과 윤리 교육을 위한 자료로, 7종이 이에 해당한다. 나머지 7종 중 3종은 진언(眞言) 또는 점복(占卜)에 관한 것으로, 이러한 진언류 전적은 실제생활에서 활용하기 위한 실용서로 파악했다. 이로 미루어 화성 지역 양반가는 당대 윤리와 이념 교육적 성격이 강한 한글 전적을 주로 향유하였으며 그런가운데 진언류 전적도 중시했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본고는 한글 전적 19종 가운데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되는 3종의 자료를 장을 달리하여 검토하였다. 『列女傳』은 여성 필사자의 존재를 고증하고 필사본 규범서를 연구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왕대비전 언교』는 관련 계통 자료들 가운데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되므로 남다른 가치를 지닌다. 『精所』는 순 한글로 이루어진 필사본 진언집으로, 조선 후기 진언의 대중화 양상은 물론 한글 소설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진언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규명하는데 유용한 자료임이 분명하다.


This paper is study of Hangul jeonjeok(典籍) in the Hwaseong Municipal Folk Museum. This Hangul jeonjeok(典籍) donated from four noble families who liv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n Hwaseong. This paper examined the form and content of these materials. As a result. Noble families in Hwaseong mainly enjoyed books that contained ethical content. and valued the book with the contents of the magic formula.
Next. this article discussed more important material separately. Yeolnyeojeon(『列女傳』) can help confirm the existence of female transcriber and study the written ethics book. Daewangdaebijoen Unkyo(『대왕대비전 언교』) is worth the original. Jeongso(『精所』) is the magic book of the Hangul manuscript. This material is useful in identifying the popularization of magic in the late Joseon Dynasty.

KCI등재

81728년 무신란(戊申亂) 관련 문헌의 재검토

저자 : 황재문 ( Hwang Jae-moon )

발행기관 : 국문학회 간행물 : 국문학연구 40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99-231 (33 pages)

다운로드

(기관인증 필요)

초록보기

무신란(戊申亂)은 18세기 정치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영조가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국왕의 정통성에 대한 의심이라는 요소를 내포한 위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왕은 실제 사건의 규모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신을 녹훈하였고, 공식적인 이해의 틀을 담은 『감란록』(1729)과 『천의소감』(1755)을 간행했다. 국왕이 제시한 사건 이해에 대해 여러 방향의 반론이 있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이후 조선의 망국 이전까지는 『감란록』 등에 대한 전면적인 반론을 담은 문헌은 간행되지 않았다. 대신에 정치집단 혹은 가문이나 지역의 관점에서 나름의 의도를 갖고 『감란록』을 보완하는 문헌들이 나타났는데, 『남정일록』, 『무신창의록』, 『호남절의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문헌은 국가에서 주도한 공식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적으로 공인받지는 못했으며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공적을 강조 또는 과장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또 때로는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운 진술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반론이라면 소극적인 반론인 셈이다.
조선 왕조가 끝나고 붕당의 의미가 약화된 시점에 이르면, 무신란은 허구화의 대상이 된다. 힘센 장사이자 큰 전공을 세운 장수로 알려진 공신 이만유의 행적을 다룬 전기를 편찬한다고 내세운 『사상당실록문집』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문헌에서는 『남정일록』과 같은 기존의 기록에서 각종 전공의 주체를 '이만유'로 바꾸는 등의 전통적인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때로는 야담이나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에 의하면 이만유는 어릴 때 천재성을 보이고 자라서는 이인(異人)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얻었으며 낮은 신분임에도 국왕의 예우를 받으며 출정하고 제갈량 같은 지략을 발휘하여 초인적인 공을 세우는 인물이 된다. 이 문헌이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남은 것은 이러한 허구화가 아직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용인되기 어려웠을 허구화의 면모를 보이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헌이 많이 산출되지는 못했는데, 이는 무신란이 국왕이 없어진 시대의 새로운 관심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단군이나 동명왕,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장희빈이나 사도세자 등이 자주 문학의 소재가 되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던 것이다.


Musin Rebellion(戊申亂)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ffair in the hiotory of 18th Century Joseon. On the occasion of this rebellion King Yeongjo reorganized the taxation and examination system, but he had to keep his eyes on the public discourse. Because it was clear that this rebellion put forward a dangerous argument that implied doubts about the legitimacy of the king. While the king praised many public figures, he compiled a book with official opinions, suck as Gamlanrok(勘亂錄) and Cheneuisogam(闡義昭鑑). Although some might have disagreed with the descriptions in these texts, no documentary works containing full-scale counterargument against the Gamlanrok was published during the Joseon Dynasty. Instead, texts to supplement Gamlanrok with its own intention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action, family or region appeared, including Namjeongilrok(南征日錄) and Honamjeleuirok(湖南節義錄). These texts seem to be official records led by the state, but in reality they are not nationally recognized and bear the mark of highlighting or exaggerating the achievements of a particular individual or group. It also sometimes contains suspicious statements about whether they are true or not.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Musin Rebellion turned into an object of fictionalization. A case in point is the Sasangdang-Silok-munjip(四尙堂實錄文集) which features a biography about the achievements of the powerful man and great general Yi manyu. In this book, editor or writter changed other people's exploits to those of Yi Manyu, and sometimes added elements of legend and fiction. The fact that this work has not yet been published shows that there is a limit to the social acceptance of such fiction, but nevertheless, it is certainly a new change to show the face of fiction tha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tolerate before. However, the similar texts did not produce much, which is believed to be due to the fact that Musin Rebellion was inconsistent with the new concerns of the time. At least it cannot be evaluated as a successful reinterpretation or reconstruction of this rebellion.

1
권호별 보기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 | | |
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2006)홍길동 외 1명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심리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가장 많이 참고한 논문

다운로드

2미국의 비트코인 규제

(2006)홍길동41회 피인용

다운로드

해당 간행물 관심 구독기관

경동대학교 서울대학교 동국대학교 고려대학교 경북대학교
 49
 29
 25
 15
 11
  • 1 경동대학교 (49건)
  • 2 서울대학교 (29건)
  • 3 동국대학교 (25건)
  • 4 고려대학교 (15건)
  • 5 경북대학교 (11건)
  • 6 성균관대학교 (9건)
  • 7 영남대학교 (9건)
  • 8 이감 (8건)
  • 9 한양대학교 (6건)
  • 10 단국대학교 (6건)

내가 찾은 최근 검색어

최근 열람 자료

맞춤 논문

보관함

내 보관함
공유한 보관함

1:1문의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