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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71)~55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666
고전문학연구
55권0호(2019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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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남석하 가사의 특징과 19세기 향촌사족의 시적 지향

저자 : 윤병용 ( Yoon Byung-yong )

발행기관 : 한국고전문학회 간행물 : 고전문학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5-38 (3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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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지금까지 조명되지 못했던 秋潭 南碩夏의 가사 4편을 분석하여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전과 변별되는 19세기 향촌사족 가사의 시적 지향도 규명하고자 하였다.
남석하 가사는 隱逸 지향과 출사에의 욕망이 부조화된 상태로 공존하기도 하고, 향촌을 부정적으로 의미화한 반면 '紅塵紫陌'을 이상적 공간으로 표현하는 등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한시의 삽입, 장황한 반복과 열거, 민요체 및 월령체 등의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적극 활용하며 흥미 위주의 창작 의식과 탈규범적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18세기 향촌사족 가사가 향촌에서의 정체성 형성과 유교적 이념을 구심에 두었던 것과 궤를 달리하고 있는데, 이는 부친의 출사라는 작가 개인의 경험과 19세기 향촌 사회의 구조 변동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남석하의 시적 지향은 사회적 책무 이행과 무관한 개인적 차원으로 이행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남석하 가사는 기존의 이념적 구심 및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나 당대의 다양한 문학적 형식을 수용하며 다층적인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향촌의 현실 및 문학적 흐름과 호흡하며 이전과는 다른 시적 지향과 미감을 보여주었다는 점, 이로써 19세기 향촌사족 가사의 특징적인 일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The purpose of the paper is to analyze and reveal the significance of Chudam (秋潭) Nam Seok-ha (南碩夏)'s four pieces of gasa (Chodangchunsugok, Wonyuga, Sachingok, and Baekbalga), which have not been studied previously in academia. Through this analysis, this paper aims to understand the poetic spirit of the gasa works written in the 19th century Hyangchonsajok(鄕村士族) style. Nam Seok-ha's gasa is not bound to the former's genre conventions and shows deviations from the Confucian norms. His works can be differentiated from 18th century Hyangchonsajok gasa, which focused on the identity building based on the Confucian ideology. Nam Seok-ha's gasa shows notable characteristics: the aspiration to participate in the politics, the negative portrayal of the Hyangchon area, and the playful tone and manner. On the personal level, Nam Seok-ha witnessed his father's political participation in the public sphere, and on the societal level, the power structure of Hyangchon society was shifting at that time. In this regard, Nam Seok-ha's gasa writing focused on the personal level, which was not necessarily as relevant to his societal responsibility as Hyangchonsajok.
Nam Seok-ha's gasa reveals the multi-layered interiority of the poet; first, his writing style breaks away from preexisting ideological constraints and formal genre conventions; second, he introduces the contemporary literary forms that were popular during the time. Reflecting the social conditions of Hyangchon society and corresponding with the literary changes of the time, Nam Seok-ha's gasa writing shows the distinguished esthetic tastes and the poetic spirit of the 19th century Hyangchonsajok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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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문장편 속 '피'의 표상과 서사적 의미 - 주동인물의 경우를 중심으로

저자 : 이지하 ( Lee Jee Ha )

발행기관 : 한국고전문학회 간행물 : 고전문학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39-7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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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표상하는 상징물로서 문학의 중요 제재가 되어왔다. 국문장편소설에서도 이러한 피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보수적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국문장편소설 안에서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는 피가 어떻게 활용되며 기존의 제도 및 이념과 관계 맺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소설 속에서 피라는 독특하고도 자극적인 소재가 문면화되는 양상뿐 아니라 피의 형상화에 투사된 당대 이념과 이에 대한 독자의 반응까지도 고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문장편의 대표적 피의 형상화로 앵혈, 토혈, 태장, 자해 등의 경우를 꼽을 수 있다. 여성 순결 표지로서의 앵혈, 내적 고민의 표출로서의 토혈,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태장의 피, 저항 의지의 표출로서의 자해 등 피의 구체적 형상이나 피를 흘리는 상황은 다양하다. 그러나 국문장편의 서사에서 부각되는 피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상화된 피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피의 시각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극적 효과를 달성하는 한편 무언의 의사 전달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처럼 국문장편에서 피의 보여주기 효과가 빈번히 사용되는 것은 몸의 주체성 여부와 상관이 있다. 국문장편의 몸은 개성을 지닌 주체적 몸이기보다 집단공동체에 의해 대상화된 몸에 가깝다. 이 경우 몸은 관찰과 규시의 대상으로서 공공화되며 피는 타자화된 몸의 극적 상징물로서 공공 앞에 노출된다. 몸의 주인은 피로써 보여주기를 통해 공공의 이념을 내면화하였음을 인정받고자 하거나 반대로 자해의 경우처럼 몸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히 함으로써 저항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타자화된 몸의 억압적 실상과 그로 인한 고통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독자들은 피가 유발하는 공포로부터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해 숭고의 미감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국문장편의 경우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의 피를 형상화하기 때문에 감정적 공유를 통한 독서 효과가 증대된다. 독자들은 피의 감성적 영향력을 통해 윤리적으로 교화될 수도 있고, 모순을 비판하며 각성할 수도 있다. 한편 대중적 독서물인 국문장편소설에서 선정적인 피의 이미지는 통속적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Since 'Blood' symbolizes both life and death, it has been an important topic in literature. The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are also actively using this imagery of blood. This paper is about how the blood, that contains various symbolic aspects, are used in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and how it builds relationships with existing systems and ideologies. Through this study, it is expected to consider not only the way this unique and provocative material is used in the literature but also the reactions of the readers.
The examples of the representative formations of blood in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are 'Aenghyeol', vomiting blood, flogging, and self-injury. The specific forms and situations of bleeding are diverse, such as 'Aenghyeol' as the mark of women virginity, vomiting blood as the expression of internal worries, blood from flogging as the obedience to authority, and self-injury as the will of resistance. However, the blood magnified in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is in common, since these are objectified to be shown to others. By actively using its visual image, it is able to raise dramatic effects and deliver the message without language.
Using blood for a show in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are related to the independence of the body. Rather than a subject that has its own identity, the bodies in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are more like an object of the cooperative system. In this case, the body becomes a target of observation of the public and its blood are exposed as a dramatic symbol of the objectified body. The owners of the body try to gain recognition of internalizing public ideology by showing their blood, or on the other hand, reveal their will of resistance by clarifying the ownership of the body, as the case of self-injury. However, either is the same in that it is delivering the oppressive reality of the objectified body and the pain caused by it.
The readers experience the sublime by keeping a certain distance from the fear caused by blood. Since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embody the blood of ordinary and detailed situations, the effects of reading increase through empathy. Readers could be ethically reformed by the emotional influence of the blood, or be awakened by criticizing discrepancy. Moreover, hence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are popular reading, the sensational imagery of blood also acquires important meaning as the element arousing popular inter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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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종(中宗) 연간 문집 편찬·간행 양상과 그 의미 - 전대(前代) 문인의 문집을 중심으로

저자 : 정용건 ( Chung Yong-gun )

발행기관 : 한국고전문학회 간행물 : 고전문학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71-116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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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中宗 연간 前代 문인에 대한 시문 수습 및 간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정황을 확인하고, 이 시기 문집 編刊 경향과 그 의미를 분석하였다.
중종 연간의 문집 편찬은 燕山君 이후 실추된 世道의 회복에 대한 의식이 전방위적으로 고조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를 주도한 것은 '文'의 공적 기능과 역할을 강하게 신뢰하였던 官僚 文人들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문헌의 보충을 통한 '文運의 회복·계승'이라는 목표 아래 成宗代 유력 관료 문인 및 士禍期 被禍人에 대한 문집 편찬에 집중하였다. 문집의 수습이 곧 시대의 文運과 연계된다는 이러한 의식은 개별 文翰 가문에게도 이어져, 世稿의 편찬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중종대에는 金宗直의 門人들이 적지 않게 관료로 진출해 있었던 만큼 당대 편찬된 문집에서 그와 관련한 내용이 빈번히 발견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문단에서 김종직을 문장의 正脈으로 인식하고 그의 '文'을 계승하고자 한 움직임이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에는 金時習·南孝溫·趙旅와 같은 逸士에 대한 문집이 편찬된 사실이 확인되는데, 이는 유가적 의리관이 강화되고 있던 당대의 실정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이처럼 중종대의 관료 문인들은 세상의 治亂를 증험하는 도구로서 지니는 '文'의 효용과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한 위에서, 문운의 증거가 되는 문집 수습 및 간행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정황은 당대 문인의 학적 지향과 문학관의 실체를 보여줌은 물론, 당시 學問場에서의 '文'의 지위와 그 사적 의미를 확인케 한다는 점에서, 16세기 전반기의 학문 지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해 준다.


This thesis discovered the fact that the collection and publication of litarary works of the former writers consistently took place during the reign of Jungjong(中宗), and analyzed its tendency and meaning.
The compilation of anthologies during the reign of Jungjong was carried out in a periodical atmosphere with the consciousness of the restoration of civilization(文運) ruined by Yeonsangun(燕山君), and it was lead by the bureaucrats(官僚 文人) who strongly trusted the public function and role of 'literature(文)'. Most of all, they focused on the compilation of anthologies of the bureaucrats in Seongjong dynasty(成宗代 官僚 文人) and victims of the massacre of scholars(士禍), under the purpose of 'restoration and succession of civilization' by supplementing the literary works. As this consciousness that the collection of the literary works is linked with civilization of the age influenced on the each writer's family, the compilation of 'sego(世稿)' also appeared. Second, as many disciples of Kim Jong-jik(金宗直) became a bureaucrat during the reign of Jungjong, related traces are often found in the collections. This suggests that Kim Jong-jik was recognized as authenticity of the literature and there was a movement to succeed his literature. Finally, it is confirmed that anthologies of the recluses(逸士) such as Kim Si-seup(金時習), Nam Hyo-on(南孝溫) and Cho Ryo(趙旅) were compiled, which seems to reflect the aspect of the time when confucian ideas was strengthened.
Thus, the bureaucrats in the reign of Jungjong devoted their efforts to compile and publish anthologies of the former writers with recognition about the value and role of the 'literature' as a means of proving civilization. Through this analysis, we could understand not only the political goals and literary aspects of the writers, but also the status and meaning of 'literature' in the academic field of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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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동곽(東郭) 이현(李礥)의 통신사행(通信使行)과 일본(日本) 인식

저자 : 정우봉 ( Chung Woo-bong )

발행기관 : 한국고전문학회 간행물 : 고전문학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17-16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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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의 서얼 출신 문인이었던 東郭 李礥(1654-1718)은 1711년 通信使 製述官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당시 日本 문사들로부터 역대 사행 문인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李礥은 朝鮮과 日本의 外交와 문화 교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와 정신이 '誠信'임을 강조하였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雨森芳洲가 『交隣提醒』(1728)에서 '誠信外交'를 주장한 것보다 앞선 시기에 제출된 것이며, 또한 우삼방주의 생각과 서로 상통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리고 이현은 조선과 일본을 상호 대등한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진전된 인식을 보여주었다. 內와 外, 古와 今의 상대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았으며, 중국 중심의 전통적 華夷觀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현이 일본의 文敎의 나라, 인재의 나라로 바라본 입장의 이면에는 인간 창조 활동에서 천부적 자질과 역량을 강조하였던 그의 인간관, 예술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현은 작가의 자질, 능력의 측면과 관련지어 天機를 이해하였다. 일본의 많은 문인들, 그리고 女性 시인의 문학 활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또한 일본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이현은 일본을 직접 관찰하고 체험하는 가운데 일본을 부유하고 부강한 나라임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같은 富國으로서 이미지화한 일본 인식의 배경에는 '富'에 대한 그의 현실적, 실용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This paper was focused on explaining Yi Hyeon's Toshinsahaeng(通信使行) and Recognition of Japan. He was born as a child by a concubine(庶孼). His career was not well known and his collection of works also was not known. Because of social status he had to go under the social discrimination. He didn't do high ranking position due to physical restrictions. I recently found hi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What draws attention from his collection of literary works is that it contains many articles related to Toshinsahaeng(通信使行). Yi Hyeon was a member of Tonsinsa(通信使), the envoy dispatched by the Joseon in 1711. He played various exchanges with Edo literati and scholar(for example Amenomori Hoshu and Arai Hakuseki) in academic cultural aspects.
This paper was aimed at examining Japanese envoys and Yi Hyeon's recognition of Japan. He did not think of Japan as a hostile country or a culturally inferior country. On the contrary, he grasped Japan from a mutually equal point of view. He emphasized the value of sincerity(誠信) in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is perception is very similar to Amenomori Hoshu's the concept of sincerity(誠信).
And he thought of Japan as a rich country. Behind that perception was a pragmatic and realistic attitude toward wealth. He showed a more rational and objective perception of reality.
Active research about a child by a concubine(庶孼) literature and Tongsinsa in the 18th century is expected to be through this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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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書』는 본래 상고 시대의 공문서로 정치 관련 기록이자 虞ㆍ夏ㆍ商ㆍ周의 史實이 기록된 역사서이다. 이 때문에 역대 중국 왕조에서 『상서』는 정사를 시행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典故가 되었고 국가운영 및 통치체제의 이념적 근거를 제공하는 경전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조선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淸은 世祖 順治帝가 1644년에 북경에 입성한 뒤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그 문화적 기반을 聖祖 康熙帝, 世宗 雍正帝, 高宗 乾隆帝의 편찬사업을 통해 마련하였다. 正祖보다 대략 한 세기 정도 앞서 청에서는 강희제에 의해서 『상서』에 대해 程朱性理學的 해석을 수정ㆍ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청대 고증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閻若璩(1636~ 1704)의 『尙書古文疏證』이 출현했을 때에 강희제는 『欽定書經傳說彙纂』을 만들었던 것이다. 정조 역시 정주성리학을 옹호한 통치자라는 점과 당시 조선의 상서학은 명ㆍ청대 학설의 유입 및 영향으로 인하여 정주성리학적 『상서』 해석보다는 독자적 해석체계를 세우려 한 전변의 시기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정조가 『상서』 강의를 진행했을 때는 강희제의 상황과 유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강희제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정조는 『상서』 강의를 하면서 『흠정서경전설휘찬』을 참조하기도 하였는바,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에는 정조의 소장본으로 추정되는 『흠정서경전설휘찬』 총 14冊이 존재한다.
강희제의 『흠정서경전설휘찬』은 蔡沈의 『書集傳』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集說과 附錄을 구비하여 맹목적으로 채침의 설을 따르지 않고 『서집전』의 잘잘못을 분별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는 『서집전』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인 制度ㆍ名物ㆍ道里ㆍ山川 등에 대한 훈고와 고증을 보완하여 성리학적 『상서』 해석의 완벽성을 추구한 것이다. 정조 또한 채침의 『서집전』을 절대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채침이 주희의 명을 받아 지은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응당 주희의 설과 일치해야 함을 전제로 하여 채침의 해석을 주희의 설과 함께 일관된 체계상에서 파악하려고 하였다. 정조는 주석의 체계에 있어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해석상 모순점이 발견되는 『서집전』은 하나의 주석체계로서 불완전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조의 『서집전』에 대한 비판적 접근 태도는 『서집전』을 硏鑽함으로써 완벽한 주석서로 탈바꿈시키고 정주성리학적 『상서』해석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이다.


The Book of Documents, or Shang Shu 尙書, is originally official and political records of ancient China, which shows the history of dynasties of Wu 虞ㆍXia 夏ㆍShang 商ㆍZhu 周. This old document had been regarded as a ruling precedent in Choson Korea as well as Chinese successive empires. In the midst of cultural policy of mass compilation and publication conducted by the first emperors of Qing China in 17th - 18th Century, Emperor Kangxi tried to revise and substitute Cheng and Zhu's Neo-Confucian interpretation of Shang Shu and published Heumjeong-seogyeong-jeonseol-hwichan 欽定書經傳說彙纂, almost a century ahead of King Cheong Jo, and at the contemporary of 閻若璩(1636~1704)'s Sangseo-gomun-sojeung 尙書古文疏證, the milestone of newly fashioned bibliographical study of Qing China.
King Cheong Jo, who also was an advocator of Neo-Confucianism, was facing a Choson scholar's challenge to establish new interpretation on Shang Shu against orthodox commentaries of the early Song Confucians, under the influence of new scholarly trends of Ming and Qing China, which was a similar circumstance that Kangxi himself faced a hundred years ago. In the favor of the Qing emperor, Cheong Jo consulted with the book Heumjeong- seogyeong-jeonseol-hwichan when he discussed Shang Shu with his official-scholars in the court, and his collection consists of 14 volumes of the Kangxi's book is existing now at Yonsei University.
Heumjeong-seogyeong-jeonseol-hwichan mainly follows the explanations on Cai Shen蔡沈's Commentaries on Shang Shu 書集傳, but with critical modification and revision under the title of 集說 and 附錄 in order to complement historical investigation, which was said to be the weakness of Cai's commentary. Cheong Jo also didn't followed Cai's interpretation recklessly. He tried to understand his commentary in accordance with Zhu's thought because Cai wrote his commentary upon the command of his master Zhu. Coherence in understanding of the ancient book was what King Cheong Jo valued most, so he didn't allow inconsistencies found in Cai's interpretation. Still, even though he criticized some parts of the commentary, his intention was to improve Cai's doctrine, and ultimately to settle Neo-Confucian interpretation on Shang 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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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연천(淵泉) 김이양(金履陽)의 문예론과 경세론에 대한 재검토

저자 : 김용태 ( Kim Yong-tai )

발행기관 : 한국고전문학회 간행물 : 고전문학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09-23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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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김이양은 개성적이고 흥미로운 문학적 지향을 지녔던 작가로서 진작에 학계에 보고되었으나 연구가 그다지 활발하지는 못했다. 필자는 19세기 서울 북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북촌시단' 연구의 일환으로 김이양에 대해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그 결과 기존의 연구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김이양은 서울 북촌지역에 세거하였던 안동김문이므로, 가문으로 보나 학맥으로 보나 김창협을 중심으로 하는 '백악시단'을 계승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 김이양은 김창협이 강조하였던 '문도합일론'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학적 사유를 펼쳤다. 그는 문학의 작품성을 위해서는 일부 윤리성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또 많은 노론 학인들이 비판해 마지않았던 복고적 시론도 견지하고 있었다.
본고는 김이양의 경세론도 살펴보았다. 김이양은 당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그 심각성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것의 해결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나 의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있어서도 '道를 실현'해야 한다는 책무를 그리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경세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는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하지만, 이러한 점으로 인해 문학에 대해 자유로운 사유를 펼칠 수 있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이양의 자유로운 문학적 사유는 이른바 '담정 그룹'의 문학적 성취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본고의 작업은 향후 19세기 문단의 여러 갈래와 흐름을 파악해 가는 데에 하나의 참조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Yun Chun, Kim Yi Yang was the writer with a unique and interesting literary tendency. A while ago, he was known to the academic world, but the study on him has not been intensively researched. Kim Yi Yang is the first generation of Buckchon poetical circles at 19th century. I paid attention to him again through study on poetical circles in Buckchon of Seoul.
As a result, I found interesting points which did not show in previous studies. Kim Yi Yang was one of the members in the family of Andong Kim who lived in Buckchon for generations. In the aspects of his family and scholastic lineage, he supposed to succeed to the Baekak poetical circles centered by Kim Chang Hyup. Kim Chang Hyup emphasized the theory that sentence and ideology are one, however Kim Yi Yang was free of that theory. He believed that ethics could be sacrificed to raise the quality of literary work. Also, he stuck to retro poetics, which many Noron scholars criticized.
This article also examined Kim Yi Yang's view of society. Kim Yi Yang was aware of the seriousness of the social problems at that time, but it seems he had no serious concerns on that or will to solve the problems. In other words, even in the matters of society and economy, he did not think importantly of having to take responsibility for following the Way.
His passive attitude toward governing issues is likely to be criticized. However, it is also the truth that his such attitude leads to free thinking in the literature. Kim Yi Yang's literary style has a strong influence on the literary achievement of the Damjung group.
The article can be used as a touchstone to understand the branches and flows of the literary world at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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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역 자원 홍보 수단으로서 브랜드 웹툰(Brand webtoon)의 성격과 과제 - 광고 구조와 광고 내용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

저자 : 장예준 ( Jang Ye Jun )

발행기관 : 한국고전문학회 간행물 : 고전문학연구 55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35-27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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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브랜드 웹툰의 작품 창작 방식과 브랜드 메시지 표출 양상 측면에서 여타 브랜드 웹툰과 지역 자원 브랜드 웹툰의 전반적인 양상을 비교하여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자원 브랜드 웹툰 제작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알아보았다.
지역 자원 브랜드 웹툰은 작품 창작 방식의 측면에서 현재 브랜드 웹툰의 창작 경향에 발맞추어 인지도가 높은 단일 작가가 스토리 형식으로, 연속적이고 일관적인 내용으로 연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드라마라는 장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브랜드 메시지 표출 측면에서는 지역 자원 브랜드 웹툰과 여타 브랜드 웹툰과 변별되는 지점이 여럿 보이고 있는데, 이는 홍보 대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브랜드 메시지 표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일반 웹툰 작품들과 변별되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에서 기인한 특성이다. 그래서 지역 자원 브랜드 웹툰을 제작할 때 반드시 이를 유념하여야 하며, 다음 사항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홍보 대상의 특성상 지역 자원 브랜드 웹툰에서는 작품 어느 곳에서든 적정 빈도의 브랜드 메시지 노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제목, 내용, 협찬 고지 등 다양한 위치에다 브랜드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는데, 그중 내용에서는 반드시 브랜드 메시지를 표출해야 브랜드 웹툰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셋째, 사진과 이미지, 그림, 텍스트 형태를 모두 활용하면서 브랜드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진 양식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여 브랜드 메시지를 표출할 것인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한다. 넷째, 크리에이티브 배치를 활용하거나 온셋 배치와 크리에이티브 배치를 혼합하여 활용하여 브랜드 메시지를 표출하는 경우가 더 우세할 것으로 판단되며, 이 두 가지 배치를 혼합하여 활용해야만 소기의 광고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표출되는 모든 브랜드 메시지는 홍보 대상에 따라 정보적 전략의 하위 전략인 이성적 전략, 일상적 전략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compared brand webtoons for the promotion of local culture with other brand webtoons in terms of the method of creating a work and the aspect of expressing a brand message and examined the things to consider in producing a local culture brand webtoon based on this.
In terms of the method of creating a work, it is desirable that a local culture brand webtoon is published serially by a highly recognized single artist in a story format with continuous and consistent contents, keeping pace with the tendency of the creation of the present brand webtoons, and utilizing the genre of drama actively would be more effective.
In terms of brand message expression, there are a few points of differentiation between local culture brand webtoons and other brand webtoons, and this results from the fact that it is very difficult for them to be differentiated from general webtoon works unless a more active brand message expression is made for the target of promotion. Thus, this must be noted in producing a local culture brand webtoon, and the following matters should be considered. First, due to the characteristic of the promotion target, it is necessary to expose the brand message at a reasonable frequency in any place of the work in a local culture brand webtoon. Second, brand messages are expressed in various positions like the title, contents and sponsorship notice, and a brand message must be expressed in the contents so that the brand webtoon can function properly. Third, brand messages are expressed, utilizing all photos, images, pictures and text formats, and it is necessary to be further concerned with how to utilize the photo form which is relatively utilized inefficiently to express them. Fourth, it is judged that expressing brand messages utilizing a creative arrangement or mixing an onset arrangement with the creative arrangement would be superior, and it is necessary to mix these two arrangements in order to get the anticipated advertising impact. Fifth, it is necessary for all brand messages expressed to utilize sub-strategies of informational strategy, like rational strategy and ordinary strategy appropriately according to the target of pro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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