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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SULSA (The Art History Journal)

  •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 : 예체능분야  >  미술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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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1226-6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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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88)~48권0호(2017) |수록논문 수 : 553
강좌 미술사
48권0호(2017년 06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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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진 백련사(白蓮寺) 대웅전 1762년 작 삼세불상의 연구

저자 : 문명대 ( Moon Myung-da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3-24 (1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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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는 전남 강진 바닷가 절경에 자리 잡고 있는 명찰이다. 고려 1216 년 원묘국사 요세(了世)에 의하여 유명한 백련결사 사찰로 창건되어 한국불교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명찰로 유명하다. 이 백련사의 대웅전에는 백련사를 상징하는 석가삼세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백련사 삼세불상은 질로 보나 크기로 보나 조선 후반기를 대표할만한 중요한 목불좌상들이다. 첫째, 백련사 삼세불상은 백련사 대웅보전이 중창된 1762 년 전후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므로 1 세기 후반기 불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조성연대를 거의 알 수 있는 18 세기 후반기 불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1762 년경 작인 이 삼세불상은 이 당시 불상 연구에 가장 중요시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17 세기 말 18 세기 초(후반기 제 1 기) 양식에서 19 세기 양식으로 이행되는 과정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18 세기 후반기 양식 불상 연구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 백련사 삼세불상은 17 세기말부터 18 세기 전반기에 이르는 색난, 하천계 불상 양식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18 세기 후반기 불상 유파 연구에 필수적인 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셋째 이 백련사 삼세불상은 당대에는 잘 볼 수 없는 우람하고 중후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이 시대 불상 가운데에는 따라갈 수 없는 우수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넷째 만약 없어진 복장품이 발견된다면 18 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국가지정문화재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섯째 현재 직접적인 조성기가 없지만 대웅전 중창 당시인 1762 년경 조성이 확실하므로 잠정적으로 지방 유형문화재,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여 1762 년이라는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희귀한 18 세기 불상으로 길이 보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2강진 백련사(白蓮寺) 명부전 지장시왕상 연구

저자 : 고정은 ( Koh Jeong-eun ) , 문명대 ( Moon Myung-da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5-44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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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지장시왕상은 1766 년 백련사 명부전이 중창되면서 조성되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불상조각 양식이어서 당시의 희귀한 지장시왕조각 양식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이 18 세기 후반기에는 불상 조성 예도 드물지만 지장시왕상 조성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희소가치가 대단히 높다 하겠다. 특히 17 세기에 많이 조성된 전라도 지장시왕상들의 전통이 이 백련사 지장시왕상으로 계승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무염파들이 조성한 불갑사지장시왕상, 속초 신흥사 지장시왕상 등을 계승한 상으로 생각되므로 불상조각승 유파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지장시왕상의 도상 배치구도나 도상특징은 조선 후반기의 구도 등 도상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양식적 특징은 1754 년 삼막사 명부전 지장시왕상과 1761 년 작 고견사 석가불좌상 등의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밝힐 수 있다. 18 세기의 명부전 지장시왕상에 대한 신앙은 상당히 성행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상은 3 종밖에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백련사 지장시왕상은 18세기 후반기 당시의 지장시왕상 신앙 경향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불교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백련사 지장시왕상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반드시 보존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3강진 백련사 대웅보전에 대한 고찰

저자 : 손신영 ( Son Shinyou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45-73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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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백련사는 조선시대 내내 萬德寺로 불리다가 1917년, 고려시대까지의 이름인 白蓮寺로 改名되었다. 조선후기 들어 인조 長陵의 造泡屬寺로 지정되었다가 1857년(철종 7)에 순조 인릉의 조포속사로 다시 지정되어 조포사의 재정을 분담하였다. 백련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보전은 1762년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최근 들어 기단이 개축되어 이전과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 내부에는 닫집이 조성되지 않고, 닫집이 놓여야 할 위치에 9마리의 용조각이 배치된 모습이 특징적이다. 백련사 대웅보전이 중수되던 무렵, 중수 또는 중건된 호남지역 사찰의 주불전과 함께 고려해본 결과, 미황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갑사 대웅전의 살미형식 및 한대의 봉두구성 등이 백련사 대웅보전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리적 범위를 확대하여 백련사 대웅보전과 같은 시기에 중창·중수된 불전을 살펴본 결과, 영남지역의 경주 불국사 대웅전 및 기림사 대적광전도 미황사 및 백련사 · 불갑사의 주불전과 유사한 형식으로 조성된 바를 파악하였다. 나아가 불갑사를 지은 僧匠 快演이 불국사를 지은데 이어 기림사 불사에도 참여하였고, 東坡鵬寬이 불갑사와 백련사를 오가며 주석하였던 바를 확인할 수 있어, 이들 불전들이 유사한 양식으로 조성된 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백련사 대웅보전은 중수 당시인 18세기 중후반의 호남지역 주불전 형식과 양식으로 조성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고, 18 세기 중후반 호남지역 불전양식이 당시 불교계에서 선호되어 영남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해 보았다.

4백련사 사적비 (圓妙國師碑) 귀부의 미술사적 의의

저자 : 주수완 ( Joo Soowa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75-94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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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사적비는 고려시대부터 사찰에 전해오던 귀부 위에 조선시대에 백련사가 중창되면서 제작된 비석을 세워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비석의 옥개석 역시 1600 년대 후반의 비석 옥개와 양식적으로 유사하여 이 때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귀부는 원묘국사 요세의 입적 시기인 1245 년으로부터 멀지 않은 13 세기 중반으로 편년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원묘국사 탑비를 받치기 위한 귀부로 제작되었던 것임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귀부의 가장 큰 특징은 목 둘레에 마치 사자와 같은 갈기를 지닌 점이며, 아직까지 이러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점이라 하겠다. 왜 귀부가 사자와 같은 갈기를 지니게 된 것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털의 모습이 단순한 털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성스러운 기운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어서 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렇듯 고려시대 작품이며, 무엇보다 백련사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원묘국사 요세의 비석을 세웠던 귀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새 비석을 만들 때 귀부와의 균형을 맞추고, 특히 비좌에 비석을 세우기 위해 비좌의 홈 크기와 비석의 촉 크기를 맞추는 작업 등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옥개의 용 장식도 귀부와 양식적 통일성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옛 양식을 참고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러한 재활용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매우 자연스럽고 경제적이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각되지만, 이러한 사례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왜 요세의 비가 파손된 뒤에 이를 복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처럼 사적비의 귀부로 재활용한 것일까? 이러한 상황은 사찰에 전해오는 폐기된 귀부에 대한 후대인들의 인식을 추정하는데 한 가지 참고가 되며 추후 연구해야할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5강진 백련사의 역사와 사상 -원묘 요세의 생애와 사상 연구-

저자 : 문무왕 ( Moon Mu Wang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95-110 (1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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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묘국사(圓妙國師)요세(了世)가 중창한 강진 백련사는 고려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지로 저명하다. 이른바 백련사는 고려 불교사는 물론 우리나라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유서깊은 고찰이자 불교사상의 명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 때 원묘국사 요세(圓妙國師 了世)가 백련사 옛터를 직접 답사한 후 제자 원형(元瑩), 지심(之甚), 법안(法安) 등과 함께 1211 년(熙宗 7년)에 백련사 창건을 시작하여 1216년(高宗 3년)에 완성한 것은 명확한 창건 또는 제1차 중창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 고종은 1237 년에 요세에게 원묘국사(圓妙國師)라는 호를 내렸고, 그 후 명절 때는 언제나 선물을 내렸다고 한다. 이후 원묘국사는 제자에게 사자상승하는 전통을 세웠는데 11대 무외대사(無畏大師)에 이르기까지 11 대동안 백련사는 번창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백련사가 대대적으로 크게 중창(3 重創)한 것은 조선 초인 세종(1419-1450) 때이다. 요세의 백련결사 사상은 『법화경(法華經)』을 기반으로 한 천태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13세기 고려 후기는 12 세기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지방의 토호층 일반 대중의 성장에 따라 실천적인 결사운동으로 나타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세의 사상은 『법화경』을 기반으로 한 천태교관에 의한 실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보조 지눌의 정혜결사와는 다른 독자적인 신앙결사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지방의 호족, 관리, 일반대중의 폭넓은 참여를 이끈 신앙운동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묘국사 요세에 의하여 재건된 백련사는 요세의 백련결사사상이 백련사 창건 사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6삼국시대 불상 광배 문양과 일본 비조시대(飛鳥時代) 불상 광배 문양의 관계성 고찰

저자 : 고승희 ( Koh Seung-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11-136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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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일본 아스카시대 불상의 광배 문양을 통해서 삼국시대의 불교문화 양식이 일본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에 대해 파악해 보고자하였다. 삼국 가운데 특히 백제의 불교문화는 577 년 건립한 국가적 대가람 왕흥사(王興寺) 목탑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 고대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최초의 사원인 아스카데라(飛鳥寺) 건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불교문화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던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현재 법륭사에는 7 세기 조성의 금동불상과 목불상들이 전래되어 오고 있는데, 이 불상들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특히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성립되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따라서 아스카시대(飛鳥時代) 불교미술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륭사의 불교미술을 살펴보는 것은 역으로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교미술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과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서 이 글에서는 삼국시대 가운데 백제의 불상 광배(光背) 문양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일본 법륭사 금당에 봉안된 금동석가삼존불좌상의 광배 문양에 대해 세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 결과 법륭사 금당 금동석가삼존불좌상의 광배 문양을 통해 일본서기의 기록대로 백제 불상조각 양식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으며, 또한 광배 뒷면의 명문을 통하여 이 상은 백제 출신인 도리불사(止利佛師)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주형거신광과 일광삼존불 형식을 통해 법륭사 석가삼존불상과의 영향관계를 알아보고 광배에 시문된 연화문, 당초문, 화염문 등의 경우 백제시대 문양과 친연성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비록 비교 대상이 법륭사 금당 봉안의 금동석가삼존불상으로 제한적이기는 하나 이렇듯 몇 가지 사실을 통해 법륭사가 창건된 시기의 불교미술과 우리나라 백제시대 6 세기 후반기-7 세기 초기 양식과 거의 흡사하다는 점을 밝혀보았으며, 삼국시대의 불상 전파 관계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7조각승 `희장(熙藏)`유파와 금산사 대장전 목조석가불좌상

저자 : 김창균 ( Kim Chang-kyun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37-154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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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제 금산사 대장전 봉안의 목조석가불좌상에 대한 정밀조사를 계기로 조선시대 17세기 전반(前半) 충청 · 전라 · 경상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청헌` 유파에 대한 파악을 통해, 대장전 석가불좌상의 조성화사와 조성연대를 밝혀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 결과 대장전 석가불좌상의 경우 첫째, 17 세기 전반 충청 및 경상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던 `현진` 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청헌`유파의 작품이라는 점이 파악되었으며, 둘째, `청헌` 유파 중에서도 특히 조각승 `희장` 유파에 의해 조성된 상들과 얼굴 형태 및 오른쪽 어깨와 무릎 위 대의자락 표현 등의 양식특징이 거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희장` 이시주자로 참여한 전라북도 군산 동국사 소장 `응매` 작 소조석가불좌상과도 거의 흡사한 양식특징을 보이고 있음이 확인되어 대장전 석가불좌상은 `희장` 작품일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한 대장전 석가불좌상 하부의 `갑신사월시역팔월일필(甲申四月始役八月日畢)` 이라는 기록과 관련하여 `희장` 이 책임을 맡아 조성한 기년명 불상조각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조성연대를 추정해본 다음, 조각승 `희장` 의 활동시기를 새롭게 밝혀보았다는 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8개화기 민화 고사산수도의 유형과 특징

저자 : 유미나 ( Yu Mina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55-184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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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인물도는 역사 속에 있었던 군왕·현자·영웅·문학가·은일자의 기억할 만한 행적으로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거나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려지기 때문에 `고사인물도`라 불린다. 19 세기 말~20 세기초에 성행했던 민화 중 고사인물도는 주요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고사를 다룬 민화 중에는 인물이 표현되지 않은 채 배경이 되는 산수와 몇 가지 상징적 모티프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있다. 언뜻 보아서는 산수도로 보이지만 화제(畵題)나 제발의 내용 혹은 모티프를 통해서 고사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를 고사산수도라 칭하고 조성 배경과 특징을 고찰하였다. 먼저 고사산수도의 조성 배경으로서 이 시기 성행했던 대중적 시가(詩歌)를 주목하였다. 개화기국권상실을 전후한 시기 민중의 계도와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 계몽성을 극대화한 시가의 창작이 이어졌으며, 이를 위해 전고의 사용이 활발하였다. 판소리 사설, 단가, 가사, 잡가 등 대중적으로 가창되는 많은 작품에서 전고의 활용이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초한가(楚漢歌)」, 「적벽가(赤壁歌)」, 「양양가(襄陽歌)」, 「수양산가(首陽山歌)」 등 중국의 고사를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운 시가도 눈에 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자연경치, 강산유람, 인생무상, 유희지향의 주제 의식을 지닌 시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이들은 자연의 수려한 경개와 무궁한 역사, 고사 등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람하고픈 산수로 중국 고사와 관련된 여러 장소가 열거되면서 전고의 사용이 매우 빈번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배경으로 `고사산수도`라는 새로운 형식의 민화가 등장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고사산수도의 유형 특징을 세 가지 정도 꼽을 수 있는데, 첫째, 그림 속에 인물의 비중을 최소화하거나 배제시켜 산수화로 그려진 유형, 둘째 고사와 관련된 지명(地名)이 화제(畵題)로 제시되어 명승도 성격을 띤 유형, 셋째, 그림 속에 인물 대신 상징물이 표현되어 추상화 경향을 띤 유형이다. 인물표현이 최소화 혹은 배제된 작품으로 가회민화박물관 소장의 《고사도》 4 폭과 영남대박물관 소장의 《고사도 8 폭병풍》을 살펴보았다. 지명이 그림 제목으로 제시된 작품으로 선문대박물관의 《중국고사도 병풍》, 국립민속박물관의 《고사도 6 폭병풍》(29097),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의 《고사도 8 폭병풍》을 보았다. 이 가운데는 고사도와 함께 소상팔경도를 주제로 한 그림이 함께 병풍을 구성한 경우도 있어서 고사산수도가 이상적 산수경관을 나타내는 소상팔경도와 마찬가지로 노닐고 싶은 선망의 중국 명승도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인물을 대신하는 상징물로써 그림의 주제가 전달되는 추상화 경향을 띤 유형으로 선문대 박물관의 《중국고사도 병풍》과 국립민속박물관의 《고사도 8 폭병풍》(민 45395)을 보았다. 후자의 경우 산수도가 아닌 화조화 형식으로 그려졌지만, 일부 화폭에서 고사를 주제로 하면서 관련 장소를 부각시킨 점에서 고사산수도의 한계열로 함께 살펴보았다. 민화 고사산수도는 전고의 습득과 활용을 중시한 상층 문화의 저변화에 따라 고사에 대한 지식이 개화기의 대중문화에 수용되어 새롭게 대두된 화목(畵目)으로서 지니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표현 양식에 있어 전통적 수묵산수화에 가까운 표현에서 단순화·간략화된 표현에 이르기까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양상을 띠었으며, 심지어 기하학적 도안에 가까운 도식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9조선 후기 화엄칠처구회도(華嚴七處九會圖)의 양식 연구

저자 : 김선희 ( Kim Seonhee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185-219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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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송광사·선암사·쌍계사, 그리고 통도사의 화엄칠처구회도는 한국불교사상과 불교미술사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화엄경』이 차지하고 있는 사상적, 신앙적 가치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사에서도 독보적이다. 화엄경변상도의 조성은 그 사상과 신앙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구체화시키는데 효과적이었다. 18 세기 후반과 19 세기 초반에 조성된 송광사·선암사·쌍계사, 그리고 통도사의 화엄칠처구회도는 한국화엄사상의 전래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축적된 도상의 특징을 담고 있다. 특히 탄압과 소외를 받던 조선 후기 불교계에서 『화엄경』의 유통과 성행은 변상도의 조성을 촉진시키기도 하였다. 당시 조성된 화엄칠처구회도는 이전시기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 구도와 형태, 그리고 색채나 필선·문양 등에서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18 세기 세 사찰의 화엄칠처구회도는 둥글면서 갸름한 인물 형태에 전통적인 담채기법을 채용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색채 등은 앞 시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반면, 복잡한 구도 및 코발트계열의 청색·남색·분홍색·옥색 계열의 색채 구사와 더불어 가늘고 유연한 흰색 필선과 그물장식문양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19 세기 통도사 화엄칠처구회도는 반원형 구도, 상·중·하 3 단의 배치 등은 불화의 규모가 소형화됨에 따라 일부 표현이 간략화 되는 한편, 내용은 더욱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변상도는 그 시원인 돈황 막고굴의 변상도와 그 양식 면에서 좋은 비교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미술사가 지닌 독자성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0조선 후반기 관경변상도의 보수(寶樹) 표현 연구

저자 : 안희숙 ( Ahn Hee-sook )

발행기관 :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간행물 : 강좌 미술사 48권 0호 발행 연도 : 2017 페이지 : pp. 221-244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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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반기 관경변상도는 관경십육관변상도 중에서 아미타불 설법회 장면과 구품왕생을 중심으로 극락세계를 도해한 것이다. 화면에는 의보 장엄인 연못, 연꽃, 꽃비, 보수(寶樹), 미풍, 극락새, 황금대지(黃金大地), 누각과 정보 장엄인 아미타불과 성중, 왕생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보 장엄의 중요 도상 가운데 하나인 보수는 누각(樓閣), 보화(寶花), 영락(瓔珞), 리본, 악기, 천개(天蓋), 광명(光明), 일곱 겹 나망(羅網)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보수는 모든 불화에 등장하지 않으며, 주로 변상도류의 불화에 나타난다. 관경변상도에 표현된 보수는 아미타불이 등정각을 이룬 보리수와 은나무, 금나무, 유리나무, 파려나무, 산호나무, 마노나무, 자거나무인 칠보의 나무 등이 있다. 보리수는 무불상 시대에 깨달음을 의미하는 불타의 상징물로 인식되었으며, 이후 부처의 광배 뒤에 묘사되어 배경으로 다루어졌다. 돈황의 당대 관경변상도에서는 쌍수(雙樹)로 주로 표현되고 있으며, 서하와 남송대에는 쌍수의 표현이 사라진다. 고려 시대의 관경변상도에서도 서하 남송대의 영향을 받아 본존의 좌우에 도안화된 중층보수가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된다. 조선 후반기의 보수는 전통적인 중층 보수를 계승한 것과 회화적으로 표현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보수는 隣松寺藏 관경십육관변상도(1323), 知恩院藏 관경십육관변상도(1323)(삽도 1), 西福寺藏 관경십육관변상도(고려)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조선후반기에는 중앙에 영락과 만개한 꽃문양을 중심으로 나뭇잎이 여러 겹 중첩되어 정연하게 늘어져 있으며, 이들이 단계적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은해사 왕생첩경도(1750), 동화사 염불암 극락구품도(1841), 표충사 극락구품도(1882) 등에서 볼 수 있다. 회화적으로 표현한 보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Ⅱ-① 형식은 전통적인 원뿔 모양의 중층 구조로 된 보수 형식을 변형한 것으로 현실 세계의 나무를 간략하게 도안화한 것이다. 운문사 극락구품도(1883), 법륜사 극락구품도(1898), 은해사 묘봉암 극락구품도(1898)등이 있다. 둘째 Ⅱ-②형식은 회화적으로 표현한 보수의 유형으로 흥국사 극락구품도(1860), 위봉사 태조암 극락구품도(1868), 태조암 극락구품도(1879), 흥천사 극락구품도(1885) 등이 있다. 이같이 조선 후반기에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나무가 보수 도상으로 새롭게 유입되는데, 이는 고려 시대의 이상향의 극락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시각적으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려는 의식의 변화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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