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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민족어문학회
  •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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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속간행물
  • : 연3회
  • : 1226-6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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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56)~88권0호(2020) |수록논문 수 : 1,430
어문논집
88권0호(2020년 04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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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문논집 88호 표지

저자 : 민족어문학회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 (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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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문논집 88호 차례

저자 : 민족어문학회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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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훈민정음의 <언해본> -고려대 도서관 육당문고 소장의 「훈민정음」을 중심으로-

저자 : 정광 ( Kwang Chung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5-48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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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세 가지 방법으로 이 문자를 해설하였다. 첫째는 <해례본>이라고 불리는 원본 훈민정음으로 세종의 어제(御製) 서문, 예의(例義), 해례, 그리고 정통(正統) 11년(1445) 9월에 쓴 정인지의 후서(後序)가 있다. 둘째는 『세종실록』(권103) 세종 28년 9월조에 실린 훈민정음으로 <실록본>으로 <해례본>에서 '해례(解例)' 부분만 빠졌다.
셋째는 훈민정음에 대한 세종의 서문(序文)과 예의(例義)만을 언해한 것으로 『월인석보』라는 불경(佛經)의 권두(卷頭)에 첨부되었다. 보통 <언해본>으로 부르는 이해설서는 단행본으로도 전해진다. 첫째와 둘째를 한데 묶어 <한문본>, 셋째를 <언해본>이라 하여 양분하기도 한다.
이 논고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단행본의 『훈민정음』의 <언해본>에 대하여 고찰한 것으로 이 판본은 그동안에 <언해본>으로 알려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과 첫 장만이 다르고 나머지는 모두 동일한 동판본(同板本)임을 밝혔다. 이 논문에서는 고려대에 소장된 『훈민정음』이 세종 때에 간행된 훈민정음의 <언해본>이며 『월인석보』의 구권(舊卷)에 첨부된 것을 유신(儒臣)들이 따로 떼어 훈민정음, 즉 한글의 학습에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에 지금까지 <언해본>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진 세종어제훈민정음 은 세조 때에 수정한 것으로 『월인석보』의 신편(新編)에 첨부되었다. 이것은 고려대학교 소장본의 『훈민정음』과 같은 판본이지만 첫 장의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고 나머지는 같은 책판을 그대로 쇄출(刷出)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고려대학교에 소장된 판본(板本)을 근거로 한 것으로 그동안 학계에서 애매했던 <언해본>의 편찬과 간행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었다.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a new writing system, Hunmin-jeongum, and provided explanations about this new script in three ways. The first is the original version of Hunmin-jeongeum called Haeryebon, Explanatory version which contains a postface written by Jeong, In-Ji in September of the 11th year(1445) of Zheng Tŏng (正統). The second is Hunmin-jeongeum included in the Annals of King Sejong (Volume 103) written in September of the 28th year of King Sejong, and it is called Shillok version. The third is the Korean-translated version of Hunmin-jeongeum, which contains only King Sejong's Preface and the Samples and Significance, and it was attached to the beginning part of the Buddhist scriptures called Weolin-seokbo. This commentary, generally referred to as Eonhaebon, Translated version has also been passed down as a separate volume.
This paper examines the Hunmin-jeongeum Korean translated version housed in the library of Korea University. The first sheet of this edition differs from that of Sejong-eoje-hunmin-jeongeum, King Sejong's hunmin-jeongeum known as Korean translated version until now. In this study, it is argued that the Hunmin-jeongeum housed in Korea University is the edition attached to the earlier edition of Weolin-seokbo published during King Sejong's reign and Confucian scholars working as government officials separated this part of Weolin-seokbo and used it for the study of Hangul. In addition, it is claimed that Sejong-eoje-hunmin-jeongeum attached to the newly edited version of Weolin-seokbo, which has been known as Korean translated version so far, is the version revised during King Sejo's reign, and it is the same edition but the title and contents of the first sheet were revised while the remaining parts were used unaltered. These claims were based on the xylographic book housed in Korea University, and the results of this study provides a clearer understanding of the compilation and publication of Translated version which have not yet been fully elucidated thus 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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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제주도 조상신본풀이 <양씨아미본풀이>의 유형별 특징과 의미

저자 : 김혜정 ( Kim Hae-jyung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49-7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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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제주도 조상신본풀이 <양씨아미본풀이>의 두 유형을 비교 고찰하여, 유형별 특징과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양씨아미본풀이>는 지금까지 총 8편이 채록 보고되었는데, 이를 서사적 특징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예촌 양씨아미본풀이>는 심방의 운명을 타고난 '양씨아미'를 조상신으로 모시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본풀이이다. 이는 좌정 유래담적 성격을 띠며, 그 기능은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주고 그를 조상신으로 모심으로써, 그를 해원 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에 비해 <눈미 양씨아미본풀이>는 심방의 운명을 타고난 '양씨아미'를 대하는 대조적 사람들을 보여주고, 양씨아미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는 영험담적 성격을 띠며, 그 기능은 양씨아미가 후손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조상신으로의 기능을 공고히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양씨아미본풀이>가 조상신본풀이로 계속해서 기능하기 위해, 서사적 변이를 일으킨 유의미한 지점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능력, 영험함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그를 불신하는 세력에게 응징을 가하고 있다. 즉 뚜렷한 징치대상을 새롭게 만듦으로써, 그를 조상신으로 모시는 것에 대한 반발심을 줄이고, 자손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조상신의 가장 강력한 직능인 후손을 번영시키거나 혹은 대(代)를 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보편적 특성'을 강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조상신본풀이의 전승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근거 자료가 된다. 즉 조상신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제기될 때, 신화는 시대·환경 변화에 따른 특수한 능력을 추가하기보다, 조상신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 특성을 부각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유교식 제사에서 모시는 '조상'의 특성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In this paper, two types of Jeju Island Josangsin Bonpuri < Yangssiami Bonpuri > were compared and examined. < Yangssi Bonpuri > has so far reported a total of eight episodes, which can be largely divided into two categories, if classified according to the narrative characteristics. First, < Yechon Yangssiami Bonpuri > is an example that explains how 'Yangssiami', born in Simbang(shaman)'s fate, was enshrined as 'Ancestral God'. It's God's Origin Story, and the function is to relieve his grudges by appeasing an unjustly dead soul and honoring him as an ancestral god.
In comparison, < Nunmi Yangssiami Bonpuri > shows people who treat 'Yangssiami' completely differently, and shows how 'Yangssiami' affects them. It takes on the character of 'Miracle Story', which is designed to show that 'Yangssiami' has the necessary capabilities for its offspring and to consolidate its function as 'Ancestral God'. In order for < Yangssi Bonpuri > to continue to function as Josangsin Bonpuri, we can summarize the significant points that caused epic variation. First, to reaffirm his ability, his spirituality, he is punishing those who distrust him.
In other words, by creating a new, remarkable punishment, it reduces the opposition to having him as Ancestral God and shows that it can still exert its influence on the offspring. Second, by speaking of having the most powerful function of Ancestral God, 'prosperity of a family' or 'extermination of a family', we can see that the 'universal trait' is strengthened.
This, in turn, is a good source of evidence for identifying the key elements of Josangsin Bonpuri's tradition. In other words, when fundamental questions are raised about ancestral gods, myths are about to secure legitimacy by highlighting the most basic and universal characteristics that ancestral gods should have, rather than adding special abilities according to environmental changes. This is also linked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ancestors in Confucian ri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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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의 정치사상(政治思想) 일고(一考)

저자 : 안득용 ( An Deuk-yong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75-114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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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成俔의 政治思想을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대상으로 성현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남긴 정치와 정치사상에 관련된 글이 갖는 부피와 심도에 있다. 성현의 정치사상을 꼼꼼히 분석하기 위해 人間觀, 統治觀, 君主觀, 官僚觀 등으로 나누어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첫째,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성현은 인간이 다르게 태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차이를 인정하기도, 차별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인간관이 발현시킨 정치사상은 바로 이 차이를 常數로 인정하고 각자에게 적절한 몫을 주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인간관이 여타 분야의 정치사상에 끼친 영향은 작지 않다. 둘째, '통치관'의 경우, 성현도 여느 儒者들처럼 仁治를 최상의 가치로 두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다르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차이를 질서 지우기 위한 禮의 중요성도 인식했고, 인간의 사사로움을 억제하기 위해 公의 윤리적 측면도 적극 활용해서 정의롭게 통치하려는 생각도 지니고 있었다. 셋째, '군주관'에 있어, 하늘의 대리자인 군주는 德을 닦고 자신을 검속하여 올바른 통치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성현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자신의 시대를 守成期로 보았던 그는 군주가 權道가 아닌 正道에 따라 세상을 경륜하고, 군주만의 專制가 아니라 大臣-三司와 함께 共治하기를 바랐다. 넷째, 君臣共治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관료에게 성현은 權貴에 휘둘리지 말고 諫言으로 군주를 법도에 맞게 이끌되 과격해서는 안 되며, 祖宗의 法制를 존숭하면서 점진적으로 국가를 바꾸어 나가라고 요구했다. 앞서 살펴본 정치사상과 아울러 '관료관'의 이와 같은 특색을 종합해서 그의 정치사상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온건주의자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급진·극렬·수구·반동, 그리고 이 모두를 포괄하는 극단과 비교하여 온건주의가 지닌 의미가 여전히 크다는 점, '수성기'로 자신의 시대를 진단하고 당대에 적합한 정치의 모범과 표준을 제시하였다는 사실, 관대함과 '공'에 무게를 둔 태도 등은 모두 음미할 만하다. 다만 그의 정치사상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조감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은 조금 더 촘촘하게 연구되어야 하고, 그 연구의 결과는 다시 당대의 문학을 이해하는 지평으로 기능해야 한다.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construct Joseon Dynasty's Political though through prose. The reason why I chose Seong, Hyeon(成俔) as the first object is the volume and depth of his politics and political thought. In order to thoroughly analyze Seong, Hyeon's political thought, I divided them into the conception of person, the conception of rule, the conception of monarch, and the conception of government official to obtain the following results.
First, the conception of person is as follows. Seong, Hyeon thought that humans were born differently, but he seems to recognize and discriminate between them. The political thought expressed by his the conception of person was to recognize this difference as a normal and give the most appropriate share to each other, and the influence of these ideological views on other fields of political thought is not small.
Second, in the case of the conception of rule, Seong, Hyeon placed rule with benevolence(仁治) as the best value as any other Confucian scholars. In addition, he was interested in the fact that human beings are different, and he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li(禮) the order to clear the differences, and he also had the idea of taking advantage of the ethical aspects of justice(公) and actively reigning in order to suppress human self-interest.
Third, in the conception of monarch, the main idea of Sung, hyeon was that the monarch, the heavenly agent, must wipe out virtue(德) and prosecute himself to carry out proper rule. He, who saw his era as the time to preserve, hoped that the monarch would follow the world according to the right way, not the lord's way, and to practice with 'a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a press official' rather than the lord's own rule.
Fourth, to the government official in charge of one aspect of Politics ruled by monarchs and officials, Seong-Hyeon demanded that the monarch be led by the ruler to the law, but not violently, and to gradually change the country while respecting the rule of law. And compressing his political thoughts and he conception of government official in one word can be said to be a moderate.
Compared to a radical, a reactionary, and a extreme that encompass all of these, a moderate still has a meaning in the present, and diagnoses its own age with the time to preserve and suggests examples and standards of politics suitable for the day. The attitude of putting weight on the generosity and justice is also worth enjoying. However, even in order to get a glimpse of his political thought in the context, the political thought of the Joseon Dynasty must be studied more closely, and the results of the research must again function as a horizon for understanding prose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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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도암(陶菴) 리재(李縡)의 비지문(碑誌文)에 대한 일고찰 -묘지(墓誌)를 중심으로-

저자 : 이승용 ( Lee Seung-yong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15-140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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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縡(1680~1746)의 碑誌文 가운데 墓誌에 대해 개괄적으로 고찰해보고, 그 가운데 李奎象(1727~1799)이 高評한 「先考墓誌」와 「先妣墓誌」를 중심으로 歐陽修의 「瀧岡阡表」의 수용 양상 및 李縡가 「先考墓誌」와 「先妣墓誌」를 통해 추구했던 碑誌類 장르의 변모 양상과 문학적 성취를 규명하였다.
李縡는 「先考墓誌」와 「先妣墓誌」에서 이전시대부터 전해진 碑誌文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歐陽修의 「瀧岡阡表」에서 구현되었던 簡嚴한 篇法과 傳言의 再演기법을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존 碑誌類 문장의 고정된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획일적인 서술 전개 방식에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었으며, 중간 중간 대화나 일화를 삽입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하여 무미건조한 서술방식으로 일관된 碑誌類 장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투식적이고 획일적인 서술이 주가 되는 碑誌類 장르에 가져온 큰 변화이다.
이로 볼 때, 당시에 李縡의 傳狀類와 碑誌類 문장이 司馬遷과 歐陽修에 비견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그가 단순히 많은 작품을 남겨서가 아니라, 작품성과 문학성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碑誌文 가운데 歐陽修의 「瀧岡阡表」를 수용한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하지만, 「先考墓誌」와 「先妣墓誌」는 조선 후기 碑誌文에서 歐陽修의 「瀧岡阡表」의 수용 양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자, 李縡의 墓誌文 가운데서 그의 문학적 성취를 뚜렷이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This study had a general consideration on Epitaph among Epitaphs of Leejae (李縡, 1680~1746) and investigated on acceptance of “SangGangCheonPyo(瀧岡 阡表)” by Ouyang Xiu(歐陽修) focusing on Epitaph of Father(先考墓誌) and “Epitaph of Mother(先妣墓誌)” highly praised by Lee Gyusang(李奎象, 1727~1799) and literary accomplishment sought by Leejae(李縡) through “Epitaph of Father(先考墓誌)” and “Epitaph of Mother(先妣墓誌)”.
In “Epitaph of Father(先考墓誌)” and “Epitaph of Mother(先妣墓誌)”, Leejae(李縡) inherited the tradition of Epitaph that passed down from the former era while actively accepting and utilizing the method of writing poem from “SangGangCheonPyo(瀧岡阡表)” by Ouyang Xiu(歐陽修) and reproduction of words. Furthermore, Leejae(李縡) intentionally changed the uniform description development method to break away from the fixed format of existing Bijiryu(碑誌類) sentences. Leejae(李縡) also made new attempts by inserting dialogue or stories in the middle to bring vitality to Bijiryu(碑誌類) genre which used flat description method. This brought huge changes in Bijiryu(碑誌類) genre where the description method is mainly flat and dry.
Considering this, Leejae(李縡)'s Jeonjangryu(傳狀類) and Bijiryu(碑誌類) sentences were highly praised and comparable to Sima Qian and Ouyang Xiu(歐陽修) at that time not just because he left many works. Instead, his sentences were highly praised and comparable to them because Leejae(李縡) made remarkable accomplishments in literary values. Among Epitaphs written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numerous works adopted “SangGangCheonPho(瀧岡阡表)” by Ouyang Xiu(歐陽修). On the other hand, “Epitaph of Father(先考墓誌)” and Epitaph of Mother(先妣墓誌) well shows how Epitaphs of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accepted “SangGangCheonPyo(瀧岡阡表)” by Ouyang Xiu(歐陽修) and they clearly show literary accomplishment of Leejae(李縡) among his Epitap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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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쌍백당 이세화의 시세계 고찰 -기사년(1689) 이전과 이후의 시세계 대비를 중심으로-

저자 : 이황진 ( Lee Hwang-jin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41-16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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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사년(1689) 숙종에게 인현왕후를 폐위하는 일이 불가함을 극간한 일로 그 절개와 충정을 인정받은 쌍백당 이세화(1630~1701)의 시세계를 고찰한 글이다. 특히 기사년 이전과 이후의 시세계 대비를 중심으로 하여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기사년 이전의 시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1663년(34세) 이세화가 평양판관으로 있을 당시 형장을 지나치게 써서 사람이 죽어나간 일로 인해 의주로 유배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의 관로와 현달을 가로막는 멍에가 되었기에 이후 이것이 자신의 능력과 포부를 온전히 펼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종과 숙종이 그의 능력을 인정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등용해 준 것을 감사하게 여겼기에 이는 자신의 맡은바 직책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곧 충이라는 인식으로 표출된다.
기사년 이후의 시세계를 좌우한 것은 기사년 인현왕후 폐위 사건이다. 당시 오두인, 박태보와 함께 상소문 기사진신소 를 올린 후 모두 숙종의 친국을 받고 유배되는데, 그 둘은 유배 가는 도중에 세상을 뜨고 오직 이세화만이 목숨을 부지하였다. 이세화는 유배에서 풀려난 후 파주 선영 아래로 돌아와 '백수귀전(白首歸田), 단심연궐(丹心戀闕).' 여덟 자를 써서 벽에 걸어 놓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다. 이는 곧 자신의 여생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겠다하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자 기사진신소 에 담긴 진심이었다. 따라서 기사년 이후의 시세계는 바로 그 둘, 즉 농사를 지으며 즐기는 평온한 삶과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 이 두 세계로 집결된다. 이렇듯 기사년 이전 시세계의 한 면모였던 포부를 온전히 펼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기사년 이후의 시세계에서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으며, 기사년 이전에 표출된 충은 자신의 직책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라는 직분이 강조되었던데 반해 기사년 이후의 시에서 충은 일편단심과 같이 심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어 표출된다는 점에서도 기사년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시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자 변곡점이 되었다.


This article is to contemplate the poetry world of Ssangbaekdang Lee Se-hwa(1630~1701) who was recognized for his integrity and loyalty by strong remonstrance to King Sukjong that it would be unacceptable to dethrone Inhyeon-wanghoo (Queen Inhyeon) in the year of Gisa (1689). In this article, the poetry world of Lee Se-hwa is classified into before the year of Gisa and after in a way of taking a look at any change in his poetry world.
What influenced so greatly on his poetry world prior to the year of Gisa was the incident of his exile to Uiju because of people died for excessive use of the sticks for flogging criminals while Lee Se-hwa (1663: 34 years of age) was serving as a government official in Pyeongyang. This incident was the road block for him to advance in his government positions that he expressed the regrets for unable to spread his wings of ambition and competence to the fullest. And, notwithstanding the foregoing fact, King Hyeonjong and King Sukjong acknowledged his competence to appoint him in high ranking government posts over the oppositions in the government and he expressed his loyalty toward the king with profound appreciation.
The dethroning incident of Inhyeon-wanghoo in the year of Gisa turned around his poetry world. At that time, he submitted the written appeal to the king along with Oh Du-in and Park Tae-bo and all three of them were interrogated by King Sukjong and exiled, and Lee Se-hwa was the only one to sustain his life while the other two were dead on their way to the exile. Lee Se-hwa was released from the exile and lived in the family burial ground in Paju to be with his family and he wrote the eight letters in '白首 歸田, 丹心戀闕' to hang on the wall to write poems on various thoughts. Therefore, his poetry world after the year of Gisa could be summarized in two worlds of living peaceful life to enjoy in farming and the sincerity toward the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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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근접성 없는 공동체와 친밀성의 테크놀로지 -『아주 오래된 농담』을 중심으로-

저자 : 유인혁 ( Yu Inhyeok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69-19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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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박완서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 나타난 근접성 없는 공동체와 친밀성의 테크놀로지의 서사적 양상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소설에서는 공동체의 물리적 조건인 근접성이 사라진 가족 형태가 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 관계를 매개하는 테크놀로지의 역할이 상세히 기술되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가족 사이의 적정한 거리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적절한 방식이 탐구되었다. 이 글은 2장에서 비디오 영상이 죽은 아버지를 보충하는 이미지로 활용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부재하는 가족 구성원을 환상적인 방식으로 복원하고, 완전한 가족의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것이, 결국 주체를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확인했다. 3장에서는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가족 사이의 적당한 간격이, 개인의 자율성과 가족의 친밀성을 유지하는 핵심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이메일이 가족 간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히 유지하는 기술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박완서는 가족의 지나친 밀접을 경계하면서도, 근접성의 약화가 친밀성의 강화로 이어지는 역설을 서사화했다. 이것은 가족을 잃은 고통을 계속해서 재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반복적으로 포착했던, 박완서 소설의 한 결절점을 보여주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narrative aspect of the technology of intimacy and community without proximity in Park Wan-Suh's novel The Very Old Joke. In this novel, a family form that transcended proximity as a physical condition of family ideology appeared. And the role of technology to mediate this family relationship was described in detail. Ultimately, the proper distance between family members and the proper way of communication within them were explored.
In Chapter 2, we looked at how video technology is used as an image to replace a absent father. Through this, it was confirmed that restoring absent family members in a fantastic way and creating a complete family image eventually resulted in pressure on the subject.
In Chapter 3, we confirmed that in The Very Old Joke, the proper distancing between families serves as a key to maintaining individual autonomy and family intimacy. We also saw that e-mail is not being used to narrow the distance between families, but rather is used as a technique to properly maintain it.
Through The Very Old Joke, Park Wan-Suh revealed that while the family was wary of excessive proximity, the weakened proximity was working as a paradoxical condition that reinforced intimacy. This shows a node in the Park Wan-seo novel, which repeatedly reproduces the pain of losing a family, while repeatedly capturing the pain from th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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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문화적 기억의 공간과 장소, 심우장(尋牛莊)

저자 : 전한성 ( Jeon Hansung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195-221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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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기억과 공간, 장소 개념을 중심으로 '심우장(尋牛莊)'을 살펴봄으로써 만해 한용운의 후반기 삶과 사상을 재조명해보고, 이를 온전히 기억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문화적 기억은 집단적 기억으로서 공간과 유물, 즉 장소를 통해 형성되고 전승된다. 한용운은 근대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불교유신과 민족독립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한다. 심우장(尋牛莊)에서 보여준 그의 삶과 사상은 좌절 속에 직면한 자의 투쟁적인 자기이해의 담론이었다. 그에게 심우장이란 공간은 전통과 근대의 불안정한 만남으로 표상되는 '전시 총동원체제기'라는 일제의 폭압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한 숙고의 공간이었다. 한용운은 불교유신을 바탕으로 민족독립으로 나아가고자 했는데, 그 연결점을 민족의식의 고취 즉 민중계몽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심우장이라는 장소에서 3.1운동에 버금가는 문화실천운동을 꿈꾸며 신문 연재를 통해 장편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심우장은 한용운에게 있어 승려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 일제의 폭압적 환경 속에서 어떤 응전의 자세로 민족의식을 고취해야 하는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주체성 회복의 장소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심우장이라는 공간과 장소를 통해 자기이해를 위한 그의 의연한 자세를 기억하고 공감하며 전승할 필요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examine Han, Yong-woon's later life and thoughts and fully remember them by looking at 'Simwoojang' centering on memory, space and place concepts. Cultural memory is a collective memory, formed and passed down through space and relics, or places. In the process of advancing to modern times, Manhae continued to agonize over the two challenges of Buddhist belief and national independence. His life and thoughts in Simwoojang were the discourse of the combative self-interest of those who faced setbacks. Simwoojang was a place of contemplation and practice of cultural ideology to seek new directions for the people's progress amid the oppressive situation of Japan in the wartime general mobilization system, which is represented by unstable encounters between tradition and modern times. In addition, Manhae wanted to move toward national independence based on Buddhist beliefs, which he saw as a promotion of national consciousness, or popular enlightenment. Thus, he continued to publish novels in a series of newspapers, dreaming of a culture practice movement comparable to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in a place called Simwoojang. Simwoojang is a place for practicing cultural ideology and restoring self-reliance, which makes Manhae return to its original status as a monk and rekindle the sense of national consciousness with what kind of attitude to counteract in the oppressive environment of Japanese colonial rule. Therefore, we need to remember, empathize and be handed down his a resolute attitude for self-understanding through a place called SimWoojang.

KCI등재

10성별에 따른 구어 종결 어미 '-잖아'의 화용 전략과 억양의 기능* -대학생 자유발화 분석을 통하여-

저자 : 조민하 ( Jo Min-ha )

발행기관 : 민족어문학회 간행물 : 어문논집 88권 0호 발행 연도 : 2020 페이지 : pp. 223-247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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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자유발화를 대상으로 성별에 따른 구어 종결 어미 '-잖아'의 화용 전략을 분석하고 이에 기여하는 억양의 기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논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첫째, 성별에 따라 담화 기능과 정보 구조의 양상이 다르다. 남성은 환기의 의미, 종결 구조 사용, 구정보 제시와 같이 '-잖아'의 기본 의미와 기능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은 동의 유도 전략, 연결 구조 사용, 신정보 제시와 같이 적극적인 화용 전략을 구사한다. 둘째, 성별에 따라 억양의 사용 양상이 다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운율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연결의 'HL', 설명의 'LHL', 암시의 'L:'와 같이 간접적이고 유연한 억양을 사용한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운율 요소를 소극적으로 사용하며 'L'와 같은 무표적인 억양과 반응 유도의 'H', 단언의 'LHL'와 같은 직접적이고 강한 억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성별에 따른 화용 전략 의도가 다르다. 여성은 발언권 유지전략과 공손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반해, 남성은 이에 대해 소극적이다. 여성은 주도권 확보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있고 대립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높은 반면, 남성은 주도권 확보에 대한 어려움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며 대화의 대립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를 통해 여성 집단과 남성 집단에서 공유되는 화용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pragmatic strategy of the spoken language final ending '-janh-a' and the role of intonation according to gender. For that, the spontaneous speech of 30 university students from Seoul were analyzed. First, male use more basic meaning and function than female. female actively use pragmatic strategies to maintain their right to speak and politeness. Second, female use intonation more actively than male. They also use indirect and flexible intonations 'LHL', 'L:'. male are relatively passive in using intonation. They also use more 'L' of the statement. direct and stronger intonation 'L', 'H', are also used more. Third, the intention to use pragmatic strategies differs according to gender. female more use the function of maintaining the lead in speech actively than male. Also for female the intention to realize politeness is more aggressive than for male. These results, we can understand the shared strategies by the female and male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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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안해역에서 석유오염물질의 세균학적 분해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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