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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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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수록범위 : 1권0호(1995)~61권0호(2019) |수록논문 수 : 707
온지논총
61권0호(2019년 10월) 수록논문
최근 권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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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영색시(詠色詩)에 나타난 색채관과 특징

저자 : 이선이 ( Syun-yi Lee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40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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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시격과 체는 당시 문인들의 시론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규보의 시는 화려하게 운을 활용하는 구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목에 있는 색명으로는 시문(詩文)에서 색명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색명인청(靑)자로 운을 사용하여, 제목과 함께 백 - 청, 흑 - 청, 황 - 청, 홍 - 청, 청 - 청의 대비효과와 방향성을 가지게 하였다. 평면에서 공간구조로 전한시킨 것이 영색시의 구조적 특징이다.
황홍청을 노래한 시의 공통점은 동식물이 자라고 뛰노는 자연에서 색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영홍시에는 적은 청과 대응하는 것은 뜻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홍을 쓴 이유를 밝혔다. 기존의 사유와는 다른 면이며, 빛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규보의 영색시는 전통 오방색 청·황·적·백·흑이 아닌 청·황·적·백·흑의 오색을 쓴다. 홍은 빛을 상징하며, 적은 청과 무늬를 이룰때 쓰인다. 때문에 홍과 적은 서로 의미가 다르고 색의 운용방식도 달라진다. 고려청자의 색은 청색 또는 비색이 아니라, 녹색으로 인식되었다. 옥석과 같은 돌의 색을 현재는 청색계열로 분류하지만, 고려는 백색계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청과 녹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청자가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던 결과이다. 이것이 영색시를 통해서 나타난 이규보의 색채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Forme poetique and adonien in the Goryeo Dynasty were among the Poetics, and Lee Kyu-bo's poems have structural features that utilize their luck with splendor. The color name in the title is not used as the color name in the verse. Using rhyme as the color name "靑(blue)", the contrast effect and direction of 白 (white)-靑(blue), 黑(black)-靑(blue), 黃(yellow)-靑(blue), 紅(magenta)-靑(blue), and 靑(blue)-靑(blue) were given along with the title. Translated from a plain into a spatial structure is a structural feature of Colored poetry.
The common thing about poems that sing about 黃(yellow)-紅(magenta)-靑 (blue), and 靑(blue) is that animals and plants are trying to find color in nature, where they grow and run. Magenta(紅) poetry revealed why he used magenta because he said it was not right to react to red. It is different from conventional reasons and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light.
Lee Kyu-bo's poetry sang the five color(blue(靑), yellow(黃), magenta(紅, or orange), white(白) and black(黑)) in five colors(blue, yellow, red, white and black). Hong(紅) symbolizes light, and is used to make blue patterns. Because of this, the magenta(紅) and the blue(靑) have different meanings and different ways of operating colors. The color of Goryeo celadon not recognized as blue or celadon green(翡色), but It was recognized as green(綠). Although the colors of stones such as jade are now classified as blue, Goryeo tended to recognize them as white. It was in the daily life of the celadon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blue and green was made. This can be said to be the colorimetric characteristics of Lee Gyu-bo through a poem sung in col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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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우학자(江右學者)의 지리산(智異山) 대원동(大源洞) 유람과 공간인식

저자 : 강정화 ( Kang Jeong-hwa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41-67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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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의 '대원동'은 지리산 大源寺가 위치한 그 洞天을 일컫는다. 南冥曺植(1501-1572)에 의해 처음 세상에 이름을 드러낼 때는 獐項洞이었고, 1685년 雲卷大師가 그곳에 있던 사찰 이름을 大源庵이라 바꾼 이후 대원동으로 일컬어졌다. 인근의 남명 유적지 德山洞에 묻혀서 인지도가 크게 없었고,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경관이 빼어난 壺中別天地로만 인식되어 河受一·河弘度·鄭栻등 몇몇 강우학자의 발길이 닿을 뿐이었다. 그런 대원동이 19세기에 들어와 '道의 큰 근원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그 의미가 변화되었으며, 특히 '덕산-대원사-천왕봉' 유람 코스가 열리면서 수많은 강우학자가 대원동을 찾아왔다. '도의 큰 근원이 흘러나온다'는 문구는 중국 漢나라 때 董仲舒가 한 말인데, 朱熹가 이를 『中庸』에 인용함으로써 조선조 성리학자에겐 경전 구절이나 진배없이 받아들여졌다. 동천의 이름 뜻이 바뀌면서 대원사 전각과 누각의 명칭도 불교 용어가 아니라 朱子의 「觀書有感」에 보이는 '天光'과 '雲影'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도록 지속되었다.
주지하듯 지리산권역에서 '남명'으로 대표되는 공간은 덕산과 천왕봉이고, 대원동은 이 둘 사이에 위치한 별개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덕산-대원사-천왕봉' 코스를 선호하게 되고, 특히 어느 코스로 천왕봉에 오르던 '덕산'을 심하게 애호하면서 인근의 대원동 또한 남명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시기 대원동을 유람한 강우학자들이 始終남명을 찾는 것에서도 변화된 공간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대원동은 오랜 시간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인식되어 오다가 조선후기 성리학의 발달로 인해 도학의 근원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인식이 변하였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러 강우지역의 특수한 상황과 국내외의 급변하는 시대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남명정신 구현을 염원하던 강우학자의 덕산동 유람이 많아졌고, 이에 힘입어 남명의 발자취가 남아있던 대원동도 덕산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Daewondong(大源洞)” referred in this study is Dongcheon(洞天) where the Daewon Buddhist Temple(大源寺) is located in Mt. Jiri. It was first called Janghangdong(獐項洞) when it was first introduced to the world by Nammyeong(南冥) Jo Shik(曺植). It has been called Daewondong since Buddhist Master Woongwon(雲卷大師) named a Buddhist temple there Daewonam in 1685. It was overshadowed by nearby Deoksandong(德山洞) where Nammyeong's relics were, thus enjoying no recognition by people. For hundreds of years since then, it was merely regarded as a different world in a gourd bottle with magnificent landscapes. Only a couple of Gangwoo scholars(江 右學者) visited it including Ha Su-il(河受一), Ha Hong-do(河弘度), and Jeong Shik(鄭栻).
Entering the 19th century, Daewondong started to have different meanings as a “place where the huge source of truth came out.” After the course of “Deoksan - Daewon Buddhist Temple - Cheonwang Peak(天王峰)” opened up, in particular, a good number of Gangwoo scholars started to visit Daewondong. Tung Chungshu(董仲舒) said “The huge source of truth comes out” in Han Dynasty, China. Zhu Xi(朱熹) cited the expression in his The Doctrine of the Mean, which made Neo-Confucian scholars accept it just like a phrase in scriptures in Joseon. As the meaning of the Dongcheon name was changed, the titles of main buildings and pavilions at Daewon Buddhist Temple were changed from Buddhist terms to “Cheongwang(天光)” and “Woonyeong(暈影)” found in Thoughts from Reading by Zhu Xi. This phenomenon continued on until the middle 20th century.
As it has been known, the main places representing “Nammyeong” in the zone of Mt. Ziri are “Deoksan” and the Cheonwang Peak. Daewondong was a separate place situated between them. In the 19th century, however, people began to prefer the course of “Deoksan - Daewondong - Cheonwang Peak” and made heavy use of “Deoksan” in whichever path to the Cheonwang Peak, which made nearly “Daewondong” reborn as a place of Nammyeong. During this period, Gangwoo scholars that made a journey to Daewondong tried to find Nammyeong there throughout their journey, which reflects changes to their perceptions of the place.
In short, Daewondong had long been considered as a place with wonderful landscapes before the latter part of Joseon when it was regarded as the source of truth came out thanks to the development of Neo-Confucianism. In the 19th century, the combination of the unique situation faced by the Gangwoo region and the rapid changes to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home and abroad increased the number of Gangwoo scholars wishing for the implementation of Nammyeong's spirit and making a journey to Deoksandong. Boosted by this, Daewondong, which had traces of Nammyeong, emerged as a scenic spot visited by many people just like Deok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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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사귤(楂橘)』의 시사적(詩社的)의의와 저자

저자 : 박종훈 ( Park Chonghoo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69-98 (3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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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楂橘』의 작품을 일람하고 그작품의 의미를 조선 후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詩社활동과 연계한 것이다. 『사귤』에는 총 220題392首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51題161首작가로 총 56人이 거론되어 있다. 이들 중 박제가를 제외한 55인은 당대 시단을 조직하여 시사활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지금까지 시사 동인의 전모가 상세히 밝혀진 경우는 드문데, 『사귤』을 통해 당시 시사 동인의 편폭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선행 연구 성과를 통해 살펴보면, 『사귤』은 南社혹은 東社동인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귤』에는 선행 연구에서 언급한 인물들보다 훨씬 많은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어, 동인들의 전체적인 규모를 짐작하게 해 준다. 이 역시 『사귤』만의 의의라 할 수 있다. 또한 『사귤』에서 작가가 밝혀진 작품이 대부분 개인 문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았기에, 개인 작품의 편폭을 더하는 자료라 하겠다. 개인 문집에 실린 경우에도, 그 작품이 시단 활동을 통해 지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바로 『사귤』이다.
다음으로 『사귤』의 편집자 혹은 저자에 대해 살펴보았다. 작가가 거론된 40%의 작품을 제외하고 230여 수 중에 100여 수가 남사의 동인이었던 이만용의 개인 문집인 『동번집』과 『동번시초』를 통해 이만용의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제목이나 실제 작품에 다소의 글자 출입이 있지만, 이만용의 작품이었고 특히 『동번시초』의 경우에는 작품의 배열순서도 거의 동일했다. 이로 본다면, 작가를 확인할 수 없었던 여타의 작품 역시 이만용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사귤』에는 시사 활동의 현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귤』에 실린작품이 각 개인 문집에도 실려 있지만, 각 개인 문집에서 해당 작품을 대하고서 시사 활동과 연계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사귤』을 통해 그 작품이 시사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지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각 개인 문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들이 산재해 있어, 조선 후기 시사 활동은 물론 각개인 작품의 편폭을 확인하는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This article reviews the works of 『Sagyul』 which is in HONAM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and examined the significance of them. 『Sagyul』 is related to poetry society, which was active in the late Joseon period. 『Sagyul』 contains a total of 392 works, of which a total of 56 are mentioned as 161 authors. These are all people who participated in the Poetry Society activities. Until now, the reality of the Poetry Society has rarely been revealed, and 『Sagyul』 can confirm the poetry society's polarization at that time.
Looking at various previous research results, 『Sagyul』 seems to be the work of Namsa lovers. However, 『Sagyul』 has many more characters than the ones mentioned in the previous researches, which makes us guess the overall scale of Namsa. In addition, most of the works in 『Sagyul』 where the artist was revealed were not included in the personal collection. So it is the data that expand the bias of individual works. Even if it was published in a personal collection through 『Sagyul』, it was confirmed that the work was created through the activities of the Poetry Society.
Next, I looked at the editor or author of 『Sagyul』. Except for the 40% of the artist's work, over 100 out of 230 were identified as Lee Man-yong's works through 『Dongbeonjib』 and 『Dongbeonsicho』, personal essays by Lee Man-yong, a member of Namsa. There were some letters in the title or actual work, but it was the work of Lee Man-yong. Particularly in the case of 『Dongbeonsicho』, the arrangement sequence of works was almost the same. As a result, it is highly likely that Lee Man-yong's work, which can not identify the artist.
『Sagyu』 contains the field of poetry society activity. Although the works in 『Sagyu』 are also included in each individual collection, it is not easy to link them to poetry society activities in individual collection. However, through 『Sagyu』, we can confirm that the work was from poetry society activities. In addition, there are works that are not published in individual works of literature, so it is helpful to confirm each individual work as well as poetry society activity in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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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쌍천기봉>에 나타난 적극적 행동주체로서의 시녀

저자 : 김민정 ( Kim Min-jeo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99-122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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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에서 여성인물은 갖은 수난에 놓인다. 여성들은 수난에 굴복하기도 하고 항거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그들의 방법으로 이 과정을 겪어나간다. 수난을 당하는 여성을 객체로, 대상이 되는 인물이라 본다면 그 이면에는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서사를 이끄는 주체적 여성 또한 존재한다. <쌍천기봉>에는 주체적 여성인물이 대거 등장하는데, 특이점은 그 주체적 여성인물에 하층 여성인 시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월혜의 측근 시녀인 홍아와 운교, 소월혜의 아들 영문의 유모인 성교는 적극성을 가진 주체적 여성인물에 해당한다. 그들은 주인의 행동에 간언을 올리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하며 자신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주동 인물의 전달자로, 남성인물의 성적 서비스 대상자로 활용되던 이전의 시녀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글에서는 이런 시녀들과 시녀들이 보호하고자 한 상층 여성에게 봉건주의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한다. 봉건사회에의 동조는 사대부 여성뿐만이 아니라 하층 여성에게도 표출되어 있는데 이는 사대부 여성과 친밀함을 유지했던 시녀들에게 그들의 시각이 대리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은 대하소설의 장르적 특성 때문으로 보이는데, 상층민이주요 향유층이었던 대하소설은 여성인물에게 유교적 이념을 다른 장르에서보다 충실히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월혜와 같은 여성 주동인물은 봉건주의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를 대신하는 인물로 선택된 홍아나 운교, 성교와 같은 시녀 역시 그 사회에 얽매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of resistance in feudal system they are living in based on the behavioral patterns of Hong-a(홍아), Ungyo(운교) and Seonggyo(성 교), lower-class women, featured in Ssangcheongibong(쌍천기봉). We therefore explore the influence and the meaning of the modality in the history of fiction.
In Korean Classical Long Novels, female characters are usually the subjects facing many difficulty. They either yield to or resist. A variety of hardship constantly happens to the women. The characteristic of independent women who lead the narrative as self-directed subjects behind is also existed, if we think they are characters acting as objects in trouble. A large number of self-directed female characters appear in Ssangcheongibong(쌍천기봉). Notable aspect is maids represented as the characters.
Hong-a(홍아), Ungyo(운교) and Seonggyo(성교), maids, correspond to the self-directed female characters with initiative. They raise their voice to advise and lament about their master's actions. They as well as speak out to revenge their death. It is quite different from general maids who were used as messengers of main characters and sexual services of male characters.
The maids are the carriers of the social women of the day and agents of the aristocratic women. The situation seems to be due to the genre characteristics of the epic novel. This is because the novel which upper-class people were the main enjoyers at that time was faithfully demanded to have female characters in Confucian ideology than other genres. Under these circumstances, female leaders like So Wol-hye(소월혜) were bound to be subordinate to feudalism. And women like Hong-a(홍아), Ungyo (운교) and Seonggyo(성교) were described as the maids to replac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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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기 대청 북경사행 기록과 사행 노정 검토

저자 : 김일환 ( Kim Il-hwan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23-157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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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년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대청사행의 최종 목적지는 심양에서 북경으로 연장되었다. 1637년 대명사행 이후 8년만에 북경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육로 북경 사행의 부활이었다. 그 첫해에 갔던 사절들은 개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1645년 사행에 참여했던 정세규, 성이성 등은 풍부한 개인 체험과 감회, 그리고 명실상부한 명청교체의 외교적 현실을 사행록에 담았다. 대청 북경 사행은 이동 경로를 비롯하여 외견상으로는 대명 북경 사행과 닮아 있으나, 청나라의 일방적인 요구와 제도로 조선 사절단의 당혹감과 반발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특히 사신들의 이동과 숙소 체계는 복원이라기 보다는 갱신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장기간에 걸친 명청교체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지역에 제국 경영을 위한 만주족의 이주와 조선 포로들의 정착, 한족들의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사행 노정이 지나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편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세규와 성이성은 만주족, 한족, 조선인포로들로 이루어진 현지 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해 슬픔, 분노, 혐오, 동정, 체념 등 여러 감정을 표출했다. 뿐아니라 사행단의 정사인 인평대군, 귀환 길의 봉림대군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어, 후대에 대명의리론이나 숙종 이후 격화된 당쟁으로 고착화된 이미지와 다른본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When the Qing Dynasty moved its capital to Beijing in 1644, diplomatic envoys to Shenyang went to Beijing. It was the first time for a diplomatic envoy to visit Beijing since his return to the Ming Dynasty in 1637. The envoys who went that first year did not leave personal records. However, the practice, which started in 1645, left a rich personal record and reported abundant diplomacy with the Qing Dynasty in Beijing. On the surface, the process was carried out in the same format as that of the Ming Dynasty, but internally, the one-sided demands of the Qing Dynasty and the embarrassment and backlash of the Joseon diplomatic mission against it were exposed. The envoys' mobility and accommodation system has been completely renewed at the zero base. The existing humanistic geographical knowledge and other new historical relics have been created, mainly those related to the unification war of the Qing Dynasty. Various emotions were exposed as the defeat of the ill-fated ship overlapped with the dispatch of the Joseon army. This period was when the Qing Dynasty and Joseon established a new relationship. With the restoration of the diplomatic mission's travel route, the envoys' questioning has expanded. Contact with Joseon envoys and residents in the Qing Dynasty has also increased. The residents consist of not only the Manchurians, but also Koreans who were taken prisoner, Han Chinese who voluntarily surrendered to the Qing Dynasty and Han Chinese who surrendered as they lost the battle regardless of their will. Different emotions such as sadness, anger, disgust, sympathy, and resignation were expressed depending on which of them the Joseon envoys met. The diplomatic records written by Jeong Se-kyu and Sung Yi-sung during their trip to the Qing Dynasty illustrate these characteristic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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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본(日本) 존경각(尊經閣) 소장(所藏) 『양휴당집(養休堂集)』의 판본 고찰

저자 : 全丙哲 ( Jeon Byung-chol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59-178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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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차적으로 그동안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養休堂集』이 日本의 尊經閣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양휴당집』의 체제와 구성내용이 중간본인 『玉溪集』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밝혀 판본적 의미를 구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양휴당집』 3권과 『옥계집』 원집 5권을 대조해본 결과, 중간본을 간행할때 초간본에서 삭제한 내용은 寄金都事書라는 편지 1통 뿐이다. 그리고 詩32수, 賦3편, 表1편, 祭文18편, 墓誌銘1편, 墓碣記1편, 疏1편, 啓2편, 書1통이 새롭게 증보되었다. 이처럼 『양휴당집』은 『옥계집』에 비해 寄金都事書라는 편지 1통이 더 수록되어 있을 뿐, 작품의 수량이나 내용의 측면에 있어서는 중간본보다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러한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간본과 중간본을 편찬한 사람들 간의 학통 의식에 변화가 있었다. 초간본인 『양휴당집』은 1585년에 간행되었으므로, 남명학파의 위상이 퇴계학파에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중간본인 『옥계집』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해 남명학파가 정치적으로 몰락한 이후인 1632년에 중간되었으므로, 퇴계를 높이고 남명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만사의 제목을 수정한 것이다. 둘째, 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 DB화 되어 있는 『옥계집』 원문에는 상당 부분 빈칸으로 표시되어 있다. 『옥계집』의 원본 자체가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는 글자들을 빈칸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양휴당집』에는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없으므로, 여기에 근거해 『옥계집』의 원문을 보완할 수 있다. 셋째, 『양휴당집』의 글씨체는 『남명집』 초간본과 매우 유사하다. 『남명집』 초간본의 경우, 許從善(1563-1642)이 글씨를 썼다. 두 문집의 글씨체를 대조하는 작업을 통해 남명학파 학자들의 문집 판본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넷째, 『양휴당집』에는 판목을 새긴 刻手를 표시하는 글자나 문양으로 판단되는 것들이 있다. 이 글자와 문양에 대한 고찰을 진행하여 조선 중기에 활동한 각수들에 대한 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This thesis was written to report to the academic world that Yanghyudangjip, which was previously known to be in existence, has been preserved at Jongyeonggak in Japan. Further, it aims to bring light to the significance of its text by revealing the differences between the structure and organizational content of Yanghyudangjip and Okgyejip, which is the revised edition. Comparisons of the 3 Yanghyudangjip books and the 5 Okgyejip books showed that when the revised edition was published, the only deleted content from the first edition was a letter called the Gigimdosaseo(寄金都事書). Also, 32 poems, 3 poetic writings (賦), 1 table, 18 funeral orations, 1 epitaph, 1 letter to the king (疏), 2 government letters to the king (啓), and 1 book were supplemented. Like this, Yanghyudangjip only had an additional letter included compared to Okgyejip and in volume or content, there was nothing new compared to the revised edition. However, despite these subtle differences, a few important meanings exist and they can be organized as follows.
First, there were changes in the scholastic mantles of the people who compiled the first edition and the revised edition. The first edition was published in 1585 when the status of the Nammyeong school was comparable to that of the Taegae school. However, as the revised edition of Okgyejip was published in 1632, after the Nammyeong school had politically fallen due to the enthronement of InJo in 1623, the titles of everything were edited to raise the status of the Taegae school and lower that of the Nammyeong school. Second, there is a considerable number of blank spaces in the original text of Okgyejip, which is currently databased at the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The original copy of the Okgyejip was worn so texts that could not be read were marked as blank spaces. However, as there are no texts in Yanghyudangjip that cannot be read, the original text of Okgyejip can be supplemented based on it. Third, the writing style of Yanghyudangjip is very similar to the first edition of the Nammyeongjip. The first edition of the Nammyeongjip used the writing of Heojongseon. More in-depth research on the collected works of Nammyeong school scholars should be made through comparisons of the writings of the two collections. Fourth, the Yanghyudangjip includes things that are judged to be letters or patterns that mark the engravers that worked on the woodblocks. Examinations of these letters and patterns should be progressed with to expand research on engravers who were active in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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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대 병화(甁花)·분경도(盆景圖): 강남 문사들의 자기표현과 취향

저자 : 유순영 ( Yoo Soonyoung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179-220 (4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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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장식과 길상을 목적으로 하던 甁花·盆景圖가 吳派를 기점으로 문인들의 자기표현과 문화적 행위를 드러내는 장르로 부각되는 점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한 것이다. 명대 강남 화단의 병화·분경도는 문인들의 화훼애호풍조의 일환인 병화·분경을 완상하는 문화와 관련되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각각의 작품이 제작된 맥락, 작품 자체에 대한 분석과 조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문인취향의 감상용회화로서의 의미와 성격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필자는 병화·분경도가 문인들의 心懷를 기탁하고 취향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기능한 문인화훼화로서의 면모를 고찰하고자 한다.
오파 화가들은 문인들의 우아한 생활공간을 꾸미는 장식물과 완상물로서 병화와 분경을 표현했으며, 창작자의 心懷와 시적 흥취, 회화관을 드러내고 문학의 텍스트를 도해하는 시각 장치로서 병화·분경도를 그렸다. 詩書畵가 어우러진 화축 형식이 주를 이루었고, 화면의 1/3이상을 차지하는 畵題는 개성적인 서체와 어우러져 작품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작용했다. 명대 말기에는 창작자와 향유층의 범위가 확대되어 자기표현의 방편이자 불특정한 회화수요자를 위한 상품으로 유통되었으며, 長卷의 두루마리와 화첩 형식이 많아졌다. 또한 호사풍조와 탐미적인 완상문화를 보여주었으며, 병화·분경의 물질성과 시각효과가 중시되었다.


This thesis develops its discussion by focusing on the point where the Píng Hua·Pen Jing paintings of Ming dynasty that used to function mostly as decorative and auspicious art work, turns into the self-expressing, and culturally revealing genre since the appearance of the Wu School. The Píng Hua·Pen Jing paintings in the art scene of Jiangnan, Ming dynasty has always been discussed related to the Píng Hua·Pen Jing enjoying culture which was one of the various aspects of the floricultural trend of the era. However, not only the contextual production history and the analysis of each art work, but also the meaning and character of it as the art work appreciated by the literary artists of the time have not been sufficiently spotlighted and studied. Thus, I would like to contemplate on its function as the still-life painting for the literary artists of the time, which has worked as an emotional shelter and an device to express the taste for the literary men of the era. 
The artists of the Wu school expressed the flower vase and bonsai as appreciation object or things to decorate elegant living space in the paintings. Simultaneously they drew it as the explanatory diagram to express the painter's emotions, poetic vibes, and point of views about painting as well as to interpret a literary text. Therefore this art trend has mainly developed in the form of vertical scrolls which is comprised of poetry and painting together, and the writing part which was more than one thirds of the scroll had to work as the important explanatory diagram for the poem with unique calligraphy. At the end of the Ming dynasty, it has become one of the market products with both the extended painters and consumers, and trending forms have turned into longer scrolls or picture books. In addition, it has shown the extravagant and esthetic appreciation culture, the materialism and visual effect for the vase and bonsai as well.

KCI등재

8조선시대 감로탱화 하단(下段) '죽음도상' 유형연구

저자 : 박미례 ( Park Mi Rea )

발행기관 : 온지학회 간행물 : 온지논총 61권 0호 발행 연도 : 2019 페이지 : pp. 221-269 (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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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탱화는 불교 의식 중 수륙재나 49재 등 천도재에 필요한 사찰법당하단(下段)의 영단(靈壇)에 거는 의식용 불화이다. 감로탱화의 전체 화면 구성은 상단(上段), 중단(中段), 하단(下段)으로 나누어지며 본고에서는 천도대상이 되는 하단(下段)에 나타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죽음도상'에 주목한다. 하단의 '죽음도상' 유형 연구를 고찰하기 위해 Ⅱ 장에서는 감로탱화의 도상구성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Ⅲ 장에서는 조선시대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감로탱화 66여점에 등장하는 '죽음도상' 유형을 종류별로 묶어소의경전, 수륙의식문과 연관하여 시대별 특성을 고찰하였으며 Ⅳ장에서는 수륙의식문과 감로탱화의 전거(典據) 관련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감로탱화는 수륙재의 소의경전인 『盂蘭盆經』 『目蓮經』 『妙法蓮華經』 『地藏菩薩本願經』 『父母恩重經』 등의 경전류(經典類)와 수륙재(水陸齋)의 이론적 원류가 되는 『瑜伽集要焰口施食儀』 『瑜伽集要口阿難陀羅尼焰口集儀經』 『佛說救護燄口餓鬼陀羅尼經』『佛說面燃餓鬼神呪呪經』 등과 같은 密敎類경전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하단 '죽음도상'의 여러 유형들은 『妙法蓮華經』 「觀世音菩薩普門品」게송과 수륙의식문인 『法界聖凡水陸勝會水陸儀軌』, 『天地冥陽水陸齋義纂要』와 연관성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감로탱화 '죽음도상' 유형은 16~17세기 수륙의식문이 활발히간행·보급되면서 하단(下段) '죽음도상' 유형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알수 있다. 감로탱화가 그려지는 초기인 16~17세기에는 '죽음도상' 유형이 다양하지 않지만 18세기는 방제(傍題)가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하고 수륙의식문에 근거한 풍속과 재난구재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죽음도상' 유형도 많은 변화양상을 보이며 정형화를 이룬다. 19~20세기 초에는 '죽음도상' 유형이 형식적으로 흘러 방제가 중복되거나 재현되는 특징을 보인다.


Gamno Taenghwa (a Buddhist painting of Buddha giving a sermon, 甘露幀畵) is a ceremonial feud that hangs on the lower altar of the temple court. The painting is used for “Suryukjae (Celebration of the lonely spirits and hungry ghosts both in water and on the land, 水陸齋)” or the “49th-day ceremony” which is needed for Cheondojae (Consolation ceremony for the spirit of the dead) among Buddhist rituals. The composition of Gamno Taenghwa consists of three stages (upper/middle/lower). In this paper, I will focus on the forlorn wandering spirit's “death” iconography that appeared in the bottom part. Those forlorn wandering spirits are the subjects of the prayers.
In order to research deeply regarding the type of “death” iconography in this study, in chapter II, I will take a close look at the composition of the iconographys in Gamno Taenghwa. In chapter III, I will classify sixty-six pieces of the death images on Gamno Taenghwa from the 16th century (the Choson dynasty) to the early 20th century (the Japnese colonial period). The types of “death” iconography were grouped by type, and the characteristics of each period were examined in relation to "Soyuigyeongjun (The main text of Buddhist schools),” and “Suryukjaeyuisikmoon (Ceremony of Suryukjae).” In chapter IV, I will demonstrate the relationship between Suryukjaeyuisikmoon (Ceremony of Suryukjae) and the authority of Gamno Taenghwa.
"Gamno Taenghwa (a Buddhist painting of Buddha giving a sermon, 甘露幀畵)” in the Choson dynasty is influenced by Soyuigyeongjun of Suryukjae and esoteric Buddhist scriptures (密敎類), which theoretically become origins of "Suryukjae (Celebration of the lonely spirits and hungry ghosts both in water and on the land, 水陸齋)." Soyuigyeongjun of Suryukjae includes "Uranbun-gyeong (Ullambana Sutra, 盂蘭盆經)," "Mokryeon-gyeong (Moggallana Sutra, 目連經)," "Myobeop Yeonhwagyeong (The Saddharmapundarika Sutra, 妙法蓮華經)," "Jijang Bonweongyeong (The Sutra of the Original Vow of Ksitigarbha Bodhisattva, 地藏菩薩本願經),"and "Bumoeunjung-gyeong (Sutra of Filial Piety, 父母恩重經)." Also, esoteric Buddhist scriptures (密敎類) include "Yugajibyoyeomgusisikyui (瑜伽集要焰口施食儀)," "Yugajibyoguanandaraniyeomgujibyuigyeong (瑜伽集要口阿 難陀羅尼焰口集儀經)," "Bulsulguhoyeomguaguishinjugyeong (佛說救護燄口餓鬼陀羅尼經)," and "Bulgumyunyeonaguishinjugyeong (佛說面燃餓鬼神呪呪經)." Lastly, I will highlight the “death” iconography in the bottom part of Gamno Taenghwa. Strikingly, the various types of death images are closely related to Buddhist songs such as “Myobeobyeonhwa-gyeong (Lotus Sutra, 妙法蓮華經),” “GwanseumbosalBomunpum (the teaching of Guanyin Bodhisattva, 觀世音菩薩普 門品)” and "Chunjimyungyangsuryukjabmoon (An edition of a Buddhist ceremony published in 1581, 天地冥陽水陸雜文),” "Bubgyesungbumsuryukseunghuisujaeyuigyue(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which are parts of "Suryukjaeyuisikmoon (Ceremony of Suryukjae)."
The type of “death” iconography of Gamno Taenghwa in the Choson dynasty is influenced by Suryukjaeyuisikmoon which was actively published and distributed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When Gamno Taenghwa first emerged in the early 16th and 17th centuries, the type of “death” iconography was a small number of forms. In the 18th century, when the captions for the cause of death started to be recorded and scenes illustrating customs and jeopardy based on the ritual book appeared, the “death” iconography went through changes and eventually became standardized. During the 19th and early 20th centuries, the captions for the cause of death were repeated or replicated through the formalization of the death icon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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