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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update

THE JOURNAL OF NORTHEAST ASIA RESEARCH

  •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 : 사회과학분야  >  정치/외교학
  • : KCI등재
  • :
  • : 연속간행물
  • : 반년간
  • : 2005-44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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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29권2호(2014) |수록논문 수 : 12
간행물 제목
29권2호(2014년) 수록논문
권호별 수록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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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문화사회, 한국의 통일: 정체(政體)의 통일에서 생활(生活)의 통합으로

저자 : 이용재 ( Young Jea Lee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5-37 (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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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드러내고, 민족국가의 국경은 낮아짐에도 민족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다문화사회통합에 대한 논의는 민족적 동질성이 아니라 다양성과 이질성에 기초한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북통일에 대한 국민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통일정책은 정치체제의 대립과 갈등에 기초한 공약(公約)으로 존재한다. 오늘날 국제사회와 국민의식, 민족문화에 대한 성찰은 통일정책이 정체적 통일이 아니라 다문화 생활세계의 통합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것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과 이념보다는 생활 속의 안전과 안정에 더 민감한 현실은 새로운 통일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글은 그것이 이념의 대립과 극복이 아니라 다문화사회통합의 방식에서 제시하는 생활세계에서의 소통과 수용의 방식에 기초한 통일정책이라고 주장한다.


The reflection on Universality reveals the new desire for diversity. Despite the boundary of the nation state decreasing, the ethnic concept is still valid. Today, the debate about integration in a multi-cultural society will demand, not ethnic homogeneity, but the integration of solidarity is based on diversity and heterogeneity. And this phenomenon affects the perception of people about Korean unification. The change of the international situation, of the people's awareness for unification and of the social structure is toward a Multi-Cultural society, because the integration policy in their lives became more important. As the apathy of the young generation on the part does not affect his life, and the sensitivity of the young generation on the part of safety and stability in their lives, they do not care about ideological issues. The new unification policy is not the way of overcoming the conflict of ideology but the way of communication and acceptance in the life. Therefore, the Korean unification policy should be offered the new way of integration in the multi-cultur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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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라,고려의 통일요인과 한반도 통일: 대외환경을 중심으로

저자 : 정성임 ( Sung Im Jung ) , 김세라 ( Se Ra Kim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39-67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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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대외환경과 통일 간 연계성을 비교 고찰하고 이를 통해 현재 한반도 통일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방향을 도출하는데 목적이 있다. 대외환경 측면에서 신라와 고려 통일의 주요 요인은 친선정책을 일관되게 펼치며 유리한 통일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신라는 유일한 패권국가인 당나라와의 친당정책에 주력하여 군사연합을 이끌어내며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루었다면, 고려는 중원 국가들과 거란이 상호 견제하는 다극체제 하에서 후삼국 국가들과의 외교에 보다 주력하게 되며 통일을 완성한 것이다. 최근 동북아는 미국 중심의 단극질서가 다극질서로 변화하며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경제협력 증진을 통해 우호적인 대외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남북관계에 보다 주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선 신뢰'의 정책으로 적극적인 대화와 교류에 나서야 한다.


This study aims to derive policy directions in fostering the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by comparative method of the relations between the unification and the external environment in the Three Kingdom period and the post-Three Kingdom period. One of the key factors which made Silla and Goryeo achieve unification is to pursue the Good Neighbor policy as well as build a favorable environment. The main parts of the Good Neighbor policy differed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ternational system. Silla practiced the Good Neighbor policy towards the Tang Dynasty under the Tang Dynasty-centered unipolar system. This policy made Silla promote the military alliance with the Tang Dynasty and it led Silla to unify the Korean Peninsula. In contrast, under a multipolar system, Goryeo reunified the Korean Peninsula focusing on practicing the Good Neighbor policy toward countries within the Korean Peninsula. Recently, mutual cooperation and conflicts are coexisting in Northeast Asia, changing from the US-centered unipolar world order to a multipolar order. This study suggests that Korea needs to create an amicable international environment through promoting economic cooperation with China and Russia, while simultaneously maintaining the Korea-US alliance. And the Korean government especially has to practice a 'trust-first' policy for making significant progress on South-North Korea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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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한국군 베트남 파병의 과정과 평가

저자 : 이정우 ( Jeong Woo Lee ) , 정재흥 ( Jae Hung Chung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69-94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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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인 1964년 9월 11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해외 파병이 실행되었다. 이 '역사적행위'는 한국군의 군사(軍史)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발전역사에서도 중대한 역할을 한 전환점이기도 하였다. 탈냉전의 국제정치에서도 한국이 처한 위치와 상황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구조적 제약과 상대적 약소국이라는 한국의 위치가 외교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있을 수만은 없다. 비록 상존하는 북한의 군사위협과 미·중관계의 변화에 따른 여파, 국내정치적 동력 등이 한국의 선택을 폭넓게 하지 못하지만, 베트남 파병 시기보다 훨씬 성장한 한국의 국력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다양한 정책의 가능성을 보여 왔다. 역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경험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안보환경과 변화의 가능성은 또다시 한국의 '결정적' 선택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The first ROK army dispatch abroad executed 50 years ago in Vietnam. This was the turning point, not only the history of Korean army's overseas footprint, but also in South Korea's dynamic history of economic development. The policy of a certain country is not formatted or developed only according to a regime's intention. Decision-making is built up through various elements that are caused by domestic and international factors. In this context, the ROK army dispatch to Vietnam is thought of as the result of a complete mixture of the Park Jung Hee administration's judgements on its interests domestically and national interests internationally in the lens of the US-ROK relationship and alliance. The current situation is not that different from 50 years ago for South Korea. North Korea's military threat still exists, the US and China's relationship is unstable, and South Korea is still quite dependent on US for security. In this circumstance, South Korea could soon face a 'crucial' choice as it did in the Vietnam War era. Therefore, the ROK army dispatch to Vietnam 50 years ago and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choice should be a good lesson on making a wise choice whether positively or nega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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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아웅산 사건의 발생과 영향: 1980년대 초 북한과 동북아 정세

저자 : 박아름 ( Ah Reum Park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95-126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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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아웅산 사건의 전말과, 발생원인, 그 당시의 동북아 정세, 그리고 실제 북한이 받은 영향에 대해 분석하였다. 아웅산 사건에 대한 기존 추론 중 북한이 전두환 정권을 배제하고자 한 의도가 가장 타당한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1981~1985년 시기, 동북아의 양자간, 다자간, 진영간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 본 결과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큰 흐름을 보였다. 따라서 1980년대 초반 북한이 처한고립적인 동북아 정세로 아웅산 사건 발생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른다. 마지막으로 아웅산 사건 이후 북한의 대외관계와 경제적인 부분에서 변화를 찾기 어려웠으며, 국방부분의 변화는 오히려 북한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아웅산 사건으로 북한이 남북한의 체제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는 평가는 적절하지 못하다. 연구결과 아웅산 사건에 대한 기존의 평가들이 다소 수정되어야 함을 발견하였으며, 1980년대 초반 역동적인 동북아 정세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The terrorist explosion at Aung San Cemetery in Myanmar, which occurred on October 9, 1983, reflected the divided Korean peninsula in the Cold War. In this paper, the content of Aung San events, causes, and the situation at the time in Northeast Asia, and the actual impact of North Korea was analyzed. The most relevant analysis suggested that the cause of the Aung San event was the elimination by North Korea of the Chun Doo-hwan regime. The 1981-1985 period in the Northeast showed a large flow of reconciliation and peace. Therefore evaluation of the Aung San event as an inevitable event is not appropriate. After the Aung San event, it is difficult to find evidence that North Korean foreign relations and foreign trade, had any benefit from the military part of North Korea. The Aung San case as a case study suggests that existing understanding should be slightly modified to show that in the early 1980s, specifically to the dynamic situation in Northeast Asia, further understanding has been achi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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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Sociotropic Perceptions, Immigration, and Immigrants: East Asian Attitudes toward Immigration and Immigrants

저자 : 김미경 ( Mi Kyung Kim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27-172 (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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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국가들이 새로운 이민국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인들의 이민과 이민자에 대한 태도를 비교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연구는 많지 않다. 이 연구는 PEW Global Attitudes Project의 2002년과 2007년 여론조사 데이터를 사용해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에서의 이민과 이민자태도를 분석한다. 이 연구는 동아시아인들의 이민과 이민자에 대한 태도가 개인의 경제 이익에 관한 고려가 아닌, 이민과 이민자가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 혹은 경제적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사회변화적 관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분석결과는 사회변화적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존연구들의 결론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 연구는 동아시아인들이 이민문제에 대해서는 문화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이민자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반응한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하였다. 즉, 동아시아인들은 이민문제가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해 우려하는 동시에, 이민자들이 자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기여를 기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향후 이민과 이민자태도의 분석적 구분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더불어, 이민과 이민자 태도의 이중성에 대한 보다 심화된 연구가 필요하다.


There are little studies to analyze public attitudes on immigration attitudes in East Asia from a comparative perspective despite the fact that East Asia has been an emerging immigration destination. This study provides a comparative analysis of immigration attitudes in three East Asian countries including Korea, China, and Japan, using cross-national survey data collected by the Pew Global Attitude Project in 2002 and 2007. This study finds that people's attitudes on immigration and immigrants in three East Asian countries have been driven by their sociotropic concerns of either cultural or economic impacts of immigration and immigrants on their nations as a whole. This finding is consistent with sociotropic explanations of immigration attitudes. Furthermore, this study finds that while East Asian people perceive the immigration issue in terms of cultural threats, they perceive immigrants in terms of economic benefits of immigrants. This finding suggests that people might have ambivalent attitudes between their cultural concerns about immigration and their expectations of immigrants' economic contributions to their nations. This finding challenges a pervasive assumption that immigration attitudes are closely linked to immigrants attitudes. Therefore, a further study needs to investigate such ambivalent attitudes toward immigration and immigrants, developing a more refined analytical distinction between immigration attitudes and immigrants attitu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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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Implication of the EU in East Asian Regionalism as a Global Actor in a Multipolar World

저자 : 정한범 ( Han Beom Jeong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73-198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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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시기 한동안 유지되던 미국의 패권체제가 약화되면서 부상한 다극적 국제체제는 유럽연합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극적 국제체제 하에서 유럽연합은 한편으로 군사적역량을 개선해야 할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규범적 리더십을 강화할 수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규범적 리더십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정치행위자들에게는 효과적이지만, 강제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대립되는 이해관계에 놓여있는 행위자들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군사력에 의한 지원이 없다면, 유럽연합은 미국의 쇠퇴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다소 공격적인 특성을 지닌 정치적 힘을 길러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성장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국제적 역할은 동아시아에서도 군사력이나 경제적 협력을 촉진하는 아세안이나 아세안지역포럼과 같은 지역주의적 제도들이 발전하는 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럽연합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그 동안 군사적 협력이 부재했고,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서 이 지역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이 동아시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안은 이 지역에서 지역주의를 촉진시켜서 지역 간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될 것이다.


A post-hegemonic multipolar world provides opportunities for Europe to enhance its normative leadership, while also providing a challenge to improve its military capability. Normative leadership may be effective vis-a-vis political actors that share similar characteristics; however, with the limitation of lacking coerciveness, it is difficult to be effective vis-a-vis actors that have contradicting interests. Without backing by America's military power, it will need not only normative leadership but also leadership that carries some traits of coercive and political power to fill the vacuum left by the withdrawal of American power. The EU's increasing role is expected to promote regionalism in East Asia similar to the ASEAN and the ASEAN Regional Forum, which can promote military and economic cooperation. With little military cooperation and geographical hurdles to exerting direct influence in this region, inter-regional cooperation by promoting regionalism is the most promising path for the EU to make influence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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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한 미국공사의 독립협회운동 인식과 대응

저자 : 현광호 ( Kwang Ho Hyun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199-234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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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공사 알렌은 독립협회 지도부가 미국을 모델로 서구화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알렌은 독립협회를 수준 높은 정치단체로 규정했고, 내각 교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파워를 가졌다고 평가했다. 알렌은 독립협회운동은 여권 의식을 고취시켰다고 평가했다. 알렌은 독립협회가 황제와의 타협을 지지했으므로 황제권 도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알렌이 외부대신에게 무력 진압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미국인들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알렌은 친러파의 지도자인 조병식을 부패한 인물이라고 인식했다. 알렌은 미국인 선교사 및 한국인 개신교도들의 만민공동회 참가를 강력 저지했다. 알렌은 미국 정부의 훈령을 받자 독립협회의 강제 해산을 지지했다. 고종은 알렌의 조언을 중시했으므로 알렌의 조언은 고종의 독립협회 해산 조치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Russian diplomat Ministers to the Great Han Empire supported disband of Independence Club. But the U.S. Ministers to the Great Han Empire expressed sympathy with Independence Club. The U.S. Ministers to the Great Han Empire Allen rated high that Independence Club Western Reform. Allen recognized that Independence Club high quality political body and he rated political power of Independence Club. Allen Independence Club inspired suffrage. Allen expected that Independence Club reached the goal by agreement with emperor. Therefore Allen expressed negative angle to defiance of Independence Club against royal authority. King Kojong mobilized for disband of the nation assembly. Allen objected use of force against the whole nation assembly. It was for protection of American citizen that Allen objected use of force against the whole nation assembly. Allen regarded Cho Pyung Sik, leader of the pro-Russian group as notorious man. Allen checked strongly that American missionary and korean Protestants joined the whole nation assembly. U.S. Government gave instruction for disband of Independence Club to Allen in December 21. He supported disbanof Club. King Kojong took advice of Allen usually. Therefore hardline stance of Allen toward Independence Club affected King Ko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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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미세먼지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지역협력방안: "인지공동체"구축을 중심으로

저자 : 원동욱 ( Dong Wook Won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235-259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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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는 특정한 국가의 영토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곳에서 발생된 오염은 점차 주변으로 확산되고, 심지어 국가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주변국가들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산성비, 황사, 황해오염 등이 동북아지역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환경문제, 즉 월경성 오염문제에 해당한다. 특히 최근 심각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는 월경성 대기오염 문제의 하나로서, 그 책임문제를 둘러싸고 동북아의 새로운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 동북아 환경협력체제의 형성에 소극적이던 중국은 최근 국가의 부상에 따른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 증대에 대한 대응, 역내 오염제공국이라는 오명에서의 탈피, 환경문제 해결을 통한 친환경산업의 육성과 지속가능한 발전 모색 등의 차원에서 역내 환경협력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속력있는 협정의 체결에는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과학적 불확실성'이 그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미세먼지와 같은 월경성 오염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협력의 주요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역내다양한 행위자들 간 복합적 네트워크의 구축과 함께 동북아 환경협력체제 형성의 관건이 되는 '인지공동체'의 측면에서 새로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Environmental problems are not limited in the territory of a certain country. The pollutant, which is generated in one point of a certain country, gradually spreads to its surroundings and has an effect on neighboring countries jumping over boundaries. Acid rain, yellow dust and the Yellow Sea pollution make up the transboundary pollutions in Northeast Asia. In particular, fine dust as a transboundary pollution which has been continuously generated in China, is becoming a new conflict factor. However, this transboundary pollution is also functioning as an agenda which is promoting regional cooperation between neighboring countries. China, which has taken a passive stance in constructing the environmental regime, is turning to a positive stance. Because it wants to cope with international pressure to play the role of “responsible big power”, to escape from a dishonor of regional polluter, and to find a way towards sustainable development through promoting green industries. Nevertheless, it still adheres to a negative stance on a binding agreement, because of “scientific uncertainty”. In this regard, this paper discusses the necessity of constructing a complex cooperative network between various regional actors and “epistemic communities” which is a matter of building an environmental regime in Northeast Asia to solve fine dust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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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주북한 소련 군사고문단 연구

저자 : 심헌용 ( Heon Yong Sim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261-289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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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주북 소련 군사고문단의 조직과 활동내용에 대한 국내외 연구경향과 연구성과를 검토하는 데 있다. 해당 주제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한데, 그 이유는 자체 조직에 대한 종합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소련은 대외 군사협력의 수단이자 주체로 군사고문단을 운용해 왔다. 소련 군사고문단은 광복된 북한에서도 북한군 건설과 무장력 증강 그리고 군사간부 양성에 힘썼다. 특히 6·25전쟁에서는 전쟁기획과 수행단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소련이 한국전에 개입했다는 또 하나의 사례다. 1951년 2월 16일자 라주바예프의 보고서에는 북한군 내 '전투활동사 기술(記述)' 임무를 띤 장교가 33명 존재한다고 밝혔다. 군사고문단 조직에 대한 종합평가서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조속한 발굴로 연구촉진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This article is to review the research trend in South Korea and reorder the historiography on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Soviet military advisory Group who had been dispached to the DPRK. Little is known about the Soviet military advisory Group because there is a limit to the research by the disclosure of a comprehensive report on the organization itself. The Soviets has been sending military advisers as a means of foreign military cooperation. After the liberation of North Korea, the Soviet military advisory Group worked on the 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military, reinforcement, military cadres training and didn``t spare support for the Korean-war 1950-1953 from the planning stage. This is going to be another case of the Soviet Union intervening in the Korean War. Thus, research on the organization reality itself and activities of the Soviet military advisory Group to North Korea is still at a standstill. Razuvaev's document shows that 33 Officer charged to each North Korean corps with the duty of ``Officer describing combat activities``. It means possible presence of a comprehensive assessment of the initial military advisers. If this original material is excavated, it is expected to open the horizons of a comprehensive study on the organization and activity substance of the Soviet military advisory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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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Activities of the First Russian Diplomat Karl I. Waeber in Korea during the Establishment of Russo-Korean Relations (1885-1888)

저자 : 박벨라 ( Bella Borisovna Pak )

발행기관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간행물 : 동북아연구(구 통일문제연구) 29권 2호 발행 연도 : 2014 페이지 : pp. 293-328 (3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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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한러시아공사 베베르의 초기 활동을 사료 및 공간자료에 근거하여 연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베베르공사가 한러관계 수립, 한국에서 러시아의 지위 강화 및 1884년 한러수호조약 체결과 그 준비를 위한 한러교섭의 증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주고자했다. 이 연구는 러시아문서관에서 발굴한 사료를 활용함으로써, 수호조약 체결을 둘러싼 교섭과정과 수호조약의 주요조항들 그리고 한러수호조약(1884.7.25) 체결이전에 러시아령으로 이주해간 한인들의 권리와 러시아 시민권 획득을 결정할 당시 봉착한 어려움 등에 대한 역사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에 한러관계와 19세기말 러시아의 대한정책에 대한 새로운정보들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This paper studies diplomatic activities and views of Russian diplomat Karl Ivanovich Waeber during the early stages of his service in Korea based on archival and published sources. It shows his personal contribution to the establishment of the Russo-Korean relations, strengthening of Russia's position in Korea, expansion of Russo-Korean contacts during the preparation and signing of the Russo-Korean treaty of 1884. Retrieved from the records obtained from the Russian archives, this paper describes in detail the history of Russian-Korean negotiations upon the conclusion of the treaty, the main provisions of the signed treaty and the difficulties faced by K.I. Waeber when deciding on the rights of Koreans who migrated to Russia before the signing of the first Russian-Korean Treaty June 25, 1884 and took Russian citizenship. It provides us with unique information about the development of Russo-Korean relations and Russian policy in Korea at the end of the XIX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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